
[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영화 ‘야당’의 대사는 유난히 또렷하게 잘 들린다. 근래 나온 한국 영화와 비교해 봐도 그렇다. 이유가 있다. 전체 후시(後時) 녹음을 했기 때문이다. 330만 관객을 돌파하며 올해 가장 흥행한 영화이기에 새삼 주목받고 있다.
‘야당’을 연출한 황병국 감독은 28일 스포츠서울과의 통화에서 “마약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영화다 보니 초반에 마약 정보를 다루는 대사가 많이 나온다. 이걸 하나라도 놓치게 되면 관객들이 영화를 따라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영화 90% 이상 후시 녹음을 했다”고 밝혔다.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은 최근 진행한 GV토크에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대사가 이렇게 다 잘 들릴 수가 있을까. 기술적으로 너무 좋았다”고 칭찬할 정도였다.
박용기 녹음감독과 토론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손이 많이 가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단순히 대사만 녹음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대사를 제외한 주변 사운드와의 조화도 필수였다.


박용기 녹음감독은 스포츠서울에 “대사를 위해서 모든 소리를 희생하면 안 된다. 다른 소리를 없애거나 볼륨을 작게 하기보다 대사의 주파수를 방해하지 않는 종류의 소리로 사운드 디자인을 했다”며 “음악과 이펙트가 한꺼번에 큰 볼륨으로 들려야 하는 경우 후시 녹음에 더 신경을 썼다. 대사 방해 요소를 줄이고 대사의 음정과 세기도, 듣기에 적당하도록 전부 조정했다”고 말했다.
후시 녹음을 위해서는 감독과 배우가 의지와 끈기를 갖고 매달려야 했다. 강하늘, 유해진, 박해준, 류경수, 채원빈 등 배우들이 의지를 갖고 열심히 노력한 덕분이다. 배우가 마음에 들 때까지 반복해서 계속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장과 후시녹음의 감정선이 이어지게 만드는 것 또한 중요했다. 특히 감독이 현장과 다른 톤을 요구했을 때 배우가 감독을 믿고 따르는 게 중요했다. 배우와 감독의 의지를 북돋고, 현장의 동시 녹음 소스도 대사가 잘 들리는데 왜 녹음을 해야 하는지, 녹음의 이유와 목표치를 정확하게 공유하며 설득 작업도 거쳤다. 그랬기에 어느 배우도 볼멘소리 없이 후시 녹음에 흔쾌히 동참했다.

박 감독은 “대사가 큰 볼륨의 음악과 액션을 하는 와중에도 잘 들렸다면, 배우와 감독의 지치지 않는 강한 의지, 마음에 들 때까지 얼마든지 녹음해도 된다고 시간을 드리는 녹음실의 여유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황 감독 역시 “후시 녹음을 하면서 감독도 지치지만 배우도 지칠 수 있다. 우리 배우들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현장에서 찍을 때는 몰랐는데 후반 작업을 하면서 톤 조절을 해 만회한 부분도 많다”고 말했다.
후시 녹음을 비롯해 무려 1년 6개월 간 후반 작업에만 꼬박 매달렸다. 그 덕분에 올해 최대 흥행작에 등극할 수 있었다.
황 감독은 “한국 영화가 유독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예전에는 그걸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깨달을 바가 크다”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배우들을 힘들게 했지만, 대사 전달은 영화의 기본이라는 점을 새삼 되짚은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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