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최규리 기자] “심봤다!” 심마니가 산삼을 발견했을 때 세 번 외치는 소리로, 산삼이나 약초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도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다.
최소 20년 이상 산삼을 캐고, 삼의 상태를 제대로 볼 줄 알아야 비로소 심마니로 등극할 수 있다. 그 이하는 천둥마니, 소장마니라고 한다. 그런데 심마니의 왕인 ‘어인마니’도 있다. 어인(御人), 사람을 거느리는 대장인 뜻인 만큼 어인마니가 되려면 산삼 캐기에 능숙하기는 물론 경험이 많아야 한다.
“어인마니들은 산의 지형만 봐도 어디에 산삼이 있는지 안다. 온 산을 뒤지지는 않는다. 개체 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좋은 상태의 산삼을 찾고 잘 캐는(돋는) 게 중요하다.”
40년 이상 산과 동고동락한 천생 약초꾼 임동균(64) 씨는 1989년부터 산삼을 캐온 어인마니다. 임 씨는 1990년 강원도 인제에서 중대장일 당시 전역을 앞두고, 지역 심마니였던 친구들과 강원도 산을 돌아다니며 처음 산삼 캐기에 접했다. 이후 임 씨는 한평생 심마니·산야초 약선발효 명인으로 살고 있다.
임 씨는 “평일엔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에는 산에서 살 정도로 산삼에 열정을 쏟아부었다”라며 “휴가가 따로 없었다. 산삼을 캐는 것. 그게 나에겐 휴가”라고 회상했다.
산에 몸을 담은 지 어언 40년이 되면서 강원도부터 제주도까지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다. 그 덕에 100년에 한 번 난다는 하늘이 점지해 준다는 산삼도 캐봤다.
“어느 날 돌아가신 아버지가 꿈에 나와 산에서 웬 멧돼지를 한 마리 줬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계속. 다음날 아버지가 멧돼지를 줬던 그 자리를 기억하고 찾아가 봤다”
임 씨는 2015년 아버지가 멧돼지를 주었던 그 장소에서 100년산 천종삼을 캤다. 천종삼은 자연에서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고 스스로 발아하고 만들어진 ‘최상급’ 산삼이다. 당시 임 씨가 캤던 천종삼의 감정가는 약 1억 원에 달한다고.
“혹독한 자연에서 오랜 시간 견뎌온 만큼 비쌀 수밖에 없다. 보통 천종급 산삼을 발견하면 일확천금했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우리 심마니들은 캐는 것만큼 판매하는 것도 쉽지 않다”라고 털어놓는다.


임 씨는 천종삼을 캔 후 산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보이는 것들도 많아졌다. 그는 “산에 올라가 보면 자연에서 주는 선물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산도라지, 더덕, 잔대, 하수오, 각종 야생 버섯 등 정말 종류가 많다. 이것들을 잘 보관해서 반찬이나 약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라고 한다.
이후 임 씨는 ‘약초싸부’로서, 발효교육원을 운영하며 이에 몰두하고 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고 했는데 임 씨는 발효와 전통 장류, 약재 수출 등을 전문적으로 공부해 약용식물관리사,전통 장류 제조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이 아프면 산에서 난 재료로 치유 음식을 해주거나, 면역력을 키울 수 있도록 자연 치유법을 공유한다. 특히 당뇨, 류머티즘 환자들이 효과를 봤다는 얘기를 들어, 유해균과 유익균의 중요성에 관한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임 씨가 전문적으로 만들고 있는 전통 장류는 실제 자연 치유 종류 중 하나로, 통합의학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는 현재도 자연치유에 대해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최근에는 K-푸드에 열광하는 외국인에게도 한국 전통 음식의 이점을 알리겠다는 사명감까지 생겼다.
“먼저 미국에 자연 치유 센터를 차릴 계획이다. 미국 동부 현지에 지속 가능한 기술 지원을 하면서 발효센터를 세웠다. 현재는 약초를 접목해 제조한 발효음료와 커피를 개발 중이며, 곧 선보일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렇다고 심마니 활동을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다. 임 씨는 “곧 ‘황절’이다. 9월 말 때쯤이면, 노란 단풍이 드는 데 그때가 가장 좋은 시기. 아마 올가을엔 강원도 산속에서 살다시피 하지 않을까”라며 웃어 보인다.
가을은 심마니들이 학수고대하는 계절이다. 여름 장마 기간을 거친 가을 산에는 보물이 묻혀있다고 한다. 임 씨도 일명 ‘고생보따리’라고 불리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고 있다. “주말마다 비바크 산행을 하려고 한다. 3일 이상 비가 온 덕에 야생 버섯을 캘 수 있게 됐다. 참싸리, 보라싸리루, 노루궁댕이버섯 등 야생 버섯이 얼마나 맛있는지”라며 눈을 반짝였다.
산이 숨겨둔 보물을 찾으러 떠날 채비를 하는 임 씨의 얼굴이 벌써 설렌다. ‘천생 약초꾼’의 새 시즌이 시나브로 돌아오고 있다. gyuri@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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