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방학을 맞아 독일 분데스리가 2부 리그에 속한 장크트 파울리(St. Pauli) 경기 관전차 함부르크에 왔다. 지난 50여 년간 팬이 중심이 된 반인종주의, 반파시즘 등 진보적 문화가 구단 핵심가치로 자리 잡은 장크트 파울리는 컬트적 인기를 자랑한다.

또 프로축구의 진정한 주인은 구단도, 자본가도 아닌 팬임을 강조하는 정신은 우수한 성적을 내려는 열망보다 축구로 뜨거운 열정을 지닌 공동체를 만들려는 의지로 발전했다. ‘동네클럽(Kiezkicker)’을 자처하는 장크트 파울리가 때론 ‘괴짜클럽’으로도 불리며 국제적 팬덤을 이루는 데 밑거름이 됐다.

이번에 현장에서 눈길을 끈 장크트 파울리의 또다른 결단은 유소년 육성 정책이다. 장크트 파울리는 지난 9월 구단 미디어를 통해 유소년 선수의 에이전트, 개인 트레이너와 협업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유소년 축구의 구조적 개혁을 촉구하며 제시된 이 정책은 선수와 대화는 오로지 선수 본인, 부모를 대상으로만 진행한다는 것이다. 선수 수급 범위를 연고 지역인 함부르크 및 근교로 제한하는 근본적 변화에 기반한다.

더 좋은 선수를 선점하고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현재 유소년 축구 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현대 유소년 축구를 관통하는 근본적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구단 의지를 나타낸다.

국가를 막론하고 현재 유소년 축구는 부모, 구단, 에이전트, 외부 트레이너 등 많은 이해당사자가 동행한다. 유소년 스포츠가 거대 산업으로 발전하면서 유망주 조기 발굴은 매력적인 투자로 인식되고 있다.

전문적 육성 과정은 성공의 필요조건이다. 이미 초·중학교 운동장에 유망주 선점을 위한 구단과 에이전트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팀 훈련과 별개로 진행하는 전문적인 피지컬, 멘탈, 기술 트레이닝을 배제하고는 현대 축구를 논하기 어려워졌다.

물론 에이전트와 개인 트레이너를 통한 건설적 조언은 유망주에게 기회 요소다. 경기 분석, 전문성을 강조하는 다양한 피지컬, 멘탈, 기술 훈련은 유소년 축구의 ‘프로화’를 강조하며 더 강한 선수와 빠른 템포의 경기를 만들어내는 데 이바지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더 좋은 선수를 육성하고 건강한 생태계를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육성 주체가 돼야 할 구단이 선수 선점을 어려워하는 환경, 기타 이해 당사자의 기준에 따라 나은 팀과 그렇지 못한 팀이 구분되는 현실, 유소년 축구에서 개인의 성장 대신 팀 성적이 더 중요한 척도가 되는 현상이 과연 옳은 것일까.

장크트 파울리는 이런 유소년 선수의 조기 프로화 여파가 오히려 기본적인 축구 능력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한다. 유소년 선수가 ‘해야 할 것’과 ‘가져야 할 것’이 늘어나는 환경에서 정작 축구를 잘할 근본적인 바탕에 대한 논의는 배제된다는 이유에서다.

장크트 파울리의 행보에 지지와 회의적 시선이 공존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축구에서 경쟁력을 잃는 처사라는 목소리가 있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현재 유소년 축구가 겪는 근본적 문제를 개선하고 건강한 생태계 조성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건 분명하다.

장크트 파울리의 유소년 육성 정책이 선수가 성장하며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실수와 학습을 통한 성장이 보장되는 환경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되기를 바란다.

함부르크 | 워싱턴주립대학교 스포츠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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