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치바(일본)=장강훈기자] “스가노 선수가 약속을 지킨다는 말을 했나요?”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와 일본골프투어(JGTO)가 공동개최해 눈길을 끈 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총상금 10억원) 미디어데이가 열린 14일 이쓰미골프클럽 미디어센터. JGTO 영건들의 ‘기수’로 꼽히는 나카지마 게이타(23)에게 질문 하나가 날아들었다.

요미우리 계열인 스포츠호치 모에기 토미하리 기자는 “프로 첫승을 따낸 날 스가노도 첫승했다. 시구 약속을 한 것으로 알고있는데 관련 얘기를 나눴는가?”라고 물었다.

냉철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하던 나카지마는 수줍은 소년처럼 미소를 지었다. 그는 “내가 골프대회에서 처음 우승할 때 스가노도 프로 첫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같은 날 승리를 따내 서로 축하한다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기회가 된다면 도쿄돔 마운드로 초대하겠다는 얘기를 했다. 올해든 내년이든 고대하던 일이 일어날 것 같다”며 웃었다.

나카지마는 아마추어 시절 87주간 세계랭킹 1위를 달린 일본 최고 영건 중 한 명이다. 지난 11일 이주카 챌린지드 골프 토너먼트에서 프로데뷔 첫승을 따냈다. 일본 국가대표로도 활약하는 등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재목이라는 평가다. 차가워 보이는 이미지인데, 스가노 얘기가 나오자 어린아이처럼 수줍어해 눈길을 끌었다.

모에기 기자에게 스가노가 그 스가노인지를 물었다. 일본 대표팀 에이스였고, 요미우리 1선발로 맹활약한 스가노 토모유키(34). 일본 최고 투수 중 한 명인 스가노와 골프 영건인 나카지마는 어떤 친분이 있는 것일까. 모에기 기자는 “나카지마가 스가노의 팬이다. 스가노는 골프가 취미여서 인연이 생겼다. 스가노가 나카지마에게 ‘우승하면 도쿄돔으로 초대해 시구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마침 같은 날 승리와 우승을 따내 도쿄돔 시구를 할 수 있는지를 물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하고 요미우리 잔류를 선언한 스가노는 올시즌 개막을 앞두고 팔꿈치 통증으로 재활군으로 내려갔다. 2군에서 두 차례 선발등판한 뒤 지난 11일 소프트뱅크와 교류전에 선발등판했는데, 5이닝 동안 삼진 4개를 곁들여 4안타 2실점으로 승리(4-2)를 따냈다. 나카지마도 이날 프로데뷔 첫승을 따내 둘에게는 잊을 수 없는 하루였던 셈이다.

둘의 인연보다, 골프를 대하는 일본의 인식에 더 눈길이 쏠렸다. 스가노가 시즌 중에도 골프를 즐기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역 선수가 골프를 취미로 한다는 것을 스스럼없이 말하는 건 한국에서는 꽤 낯선 장면이다. KBO리그도 골프를 즐기는 선수가 꽤 있는데 “시즌 중에는 치지 않는다”거나 “좋아하는 선수를 시구에 초대하고 싶다”는 등의 얘기는 들은적이 없다.

실제로 꽤 많은 선수가 골프 선수들과 친분을 쌓고 있는데도,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는다. 골프는 여전히 ‘귀족 스포츠’라는 이미지가 있고, 현역 선수가 시즌 중에 라운드를 즐긴 사실이 알려지면 “그 시간에 야구 훈련이나 하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더 큰 게 사실이다.

스포츠 선수를 대하는 인식도 한국과 일본은 크게 차이난다. 일본이나 미국은 기본적으로 스포츠 스타를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돼 있다. 특정 분야의 장인으로 인정하고, 프로가 되기까지 이들이 기울인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니 대중도 선수들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도쿄돔 마운드에 서는 꿈을 가감 없이 드러낸 나카지마의 수줍은 미소는 한국에서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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