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양산=장강훈기자] 골프는 인내의 스포츠다. 적응해야 할 요소가 많아서다. 바람이나 경사뿐만 아니라 잔디 특성에도 적응이 필요하다.

적응하려면 경험을 쌓아야 한다. 무작정 경험하는 것이 아닌 자기만의 감각을 체득해야 한다. 감각을 체득하면 자신감 향상으로 이어진다. 자신감만큼 무서운 무기도 없다. ‘양잔디 강자’로 스스로를 평가한 백석현(33·휴셈)이 생애 첫승 경험을 발판삼아 ‘조선잔디(중지) 트라우마’를 벗어던졌다.

백석현은 8일 경남 양산에 있는 에이원 컨트리클럽(파71·7138야드)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최고 권위 대회인 KPGA 선수권대회(총상금 15억원) 첫날 이글 1개와 버디 4개로 ‘예비역’ 이형준(31·웰컴저축은행)과 공동 선두로 나섰다.

에이원CC는 페어웨이를 중지로 조성했다. KPGA 선수권자를 가리는 대회여서 코스 레이팅도 과감함과 전략을 고루하도록 신경썼다. 지난달 SK텔레콤 오픈에서 생애 첫 코리안투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백석현은 “우승한 뒤 체력은 바닥까지 떨어졌지만, 자신감은 향상됐다. 우승했는데 두려울 게 있나 싶더라(웃음). 두려움이 사라지니 내 골프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굳이 잔디를 가릴 이유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2년간 코리안투어 무대를 밟을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이 백석현의 트라우마를 날려보냈다. 물론 전략이 없는 건 아니다. 그는 “중지에서는 공을 띄우려고 한다. 띄우려고 노력했더니 볼이 날아가는 방향이나 거리가 일정해졌다”고 말했다. 양잔디는 볼이 지면에 붙어있는 편이어서 이른바 공을 눌러 쳐야한다. 반면 중지는 볼이 지면에서 살짝 떠 있다. 눌러치면 클럽 페이스 스위트 스폿에 정확히 맞히기 어렵다. 그래서 ‘양잔디는 찍어치고, 중지는 쓸어쳐야 한다’는 설(說)이 있다.

스윙을 단숨에 바꿀 수는 없지만, 공을 누르는 것과 띄우는 것은 감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우승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없으니 더 가볍게 스윙할 수 있게 됐다. 백석현은 “샷과 퍼트 모두 나쁘지 않았다. 컨디션이 상당히 좋은 편”이라며 “매치플레이 조별리그 탈락 후 주말에 휴식을 취했더니 컨디션을 회복했다. 이번대회는 후원사 대표께서 캐디를 해주시는데, 호흡이 잘 맞는다. 좋은 경기력이 나올 수밖에 없는 하루”라며 웃었다.

우승경쟁도 해봤고, 트로피도 품에 안아봤다. 이 과정이 처음이던 백석현에게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파도를 넘어야 했던 일대 사건을 겪은 셈이다. 그는 “체력이 떨어지니 집중력도 낮아지더라. 집중력이 떨어지니 퍼트가 말썽을 부렸다”고 돌아봤다. 브룸스틱 대신 ‘노룩 퍼트’를 병행하는 등 컨디션에 따라 다양한 시도를 하며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이번대회도 경험치 향상 일환이다. 그는 “목표를 성적으로 잡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우승)기회가 오면 꼭 잡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어느새 ‘대회를 즐길 수 있는 선수’가 된 셈이다.

경쟁자가 만만치 않다. 통산 6승을 따낸 이형준이 재기 가능성을 높인 탓이다. 이형준도 이날 이글 1개를 잡았고, 버디 6개와 보기2개를 바꿔 6타를 줄였다. 지난해 10월 현대해상 최경주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을 차지해 재기를 기대했지만, 올해 출전한 8개 대회에서 공동 43위에 오른 게 최고성적일만큼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첫날이지만, 공동선두로 출발한 것만으로도 동기부여가 된다.

이형준은 “명확하게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보이지 않아 많이 답답했다. 안 된다는 생각을 계속하면 깊은 슬럼프에 빠질 것 같아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꿨다”며 “페어웨이를 지키자는 생각만 했더니 초반부터 버디가 나오는 등 성적이 좋았다. 방어적으로 경기를 치를 것”이라고 다짐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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