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한 아파트에 꽤 오래 살았어요. 평소 주민들과 인사도 자주 나누는 편인데 ‘닥터 차정숙’ 방송 뒤 주민들이 새삼 ‘여기 사셨어요?’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평범한 아파트 주민인 줄 알았는데 동네에 연예인 산다고 소문난 걸 보며 로이킴이 뜨긴 떴구나 싶었죠.”

지난 4일 종영한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이하 ‘차정숙’)’에서 훈남 의사 로이킴 역을 연기한 배우 민우혁은 최근 높아진 인기를 실감한다고 고백했다. 최종 시청률 18.5%(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종영한 ‘차정숙’에서 그는 유일한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이었다.

190㎝에 가까운 큰 키와 떡 벌어진 어깨, 조각같은 외모에 스위트한 목소리, 거기에 의사라는 직업까지. 모든 걸 갖췄지만 어린 시절 해외로 입양된 남모를 아픔도 지닌 로이킴은 자신이 수술한 환자 차정숙(엄정화 분)과 의사와 레지전트로 다시 만나며 호감을 품게 된다.

초반 민우혁이 ‘차정숙’에 캐스팅됐을 때만 해도 주변에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뮤지컬계에서는 주연 배우로 활동했지만 TV에서는 인지도가 낮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연출자 김대진 PD는 민우혁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며 응원했다.

“주변에서 반대가 많았지만 김 PD님께서는 ‘내가 뽑은 민우혁이라는 배우가 역할을 잘 소화했으면 한다’라고 믿음을 주셨어요. 저도 믿음에 보답하고 우려의 목소리를 바꾸고 싶어서 리딩부터 시작해서 철저히 준비해 갔죠.”

대본상 로이는 차정숙의 남편 서인호(김병철 분)와 정반대 이미지여야 했다. 김 PD는 무조건 멋있어야 한다며 그에게 멋짐을 요구했다.

“촬영 때마다 ‘아련한 눈빛 오케이!’, ‘멋있어 오케이!를 외쳐주시니 현장에서 자존감이 높아졌죠. 극 중반부부터 PD님이 ‘다들 로이킴에 빠졌다’고 말씀해주셨을 때 정말 기뻤어요.”

동네 주민들과 연출자 뿐만 아니라 그의 할머니도 손자의 활약을 자랑스러워했다. 기혼여성들 사이에서 “내게도 남편이 아닌 나만의 로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엄정화는 민우혁의 ‘책받침 스타’였다. 민우혁은 “엄정화 선배는 내가 고교 시절 슈퍼스타였다. 뮤지컬계에서 오랜 무명을 거쳐 홍보를 위해 처음으로 출연한 TV프로그램이 KBS2‘불후의 명곡’이었는데 당시 전설이 엄정화 선배님이었다”라고 인연을 전했다.

그는 “함께 호흡을 맞출 때마다 ‘이럴 때 로이는 어떨 것 같아?’라고 늘 내 의견을 물어봐 주시는 선배님 덕분에 연기란 게 호흡을 주고받는 일이라는 걸 새롭게 깨닫게 됐다”라고 말했다.

다만 민우혁은 차정숙의 조언으로 로이킴이 다른 여성을 만나는 결말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움을 표했다. 민우혁은 “로이가 정숙의 친구로 남거나 미국으로 돌아가 자신을 친자식처럼 키운 양부모에게 효도하길 원했다”라며 웃었다.

그럼에도 그는 드라마의 메시지에 깊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민우혁도 과거 프로야구 LG트윈스 신고선수로 입단했지만 부상으로 은퇴한 아픔을 갖고 있다. 평생 운동만 했던 그에게 뮤지컬 배우의 길을 권한 건 그룹 LPG 출신인 아내 이세미다. 이세미는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민우혁을 물심양면 뒷바라지했다.

현재 이세미는 민우혁의 소속사 이음컴퍼니의 대표이기도 하다. 부부는 인터뷰 전날 마트에서 직접 장을 봐 정성스럽게 손수 포장한 과자와 캔디 주머니를 선물로 전달하기도 했다.

“‘차정숙’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주부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경력 단절의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가닿은 거죠. 우리 대표님(이세미)도 남편인 저를 위해 하던 일을 그만뒀거든요. 제게는 아내가 ‘차정숙’인 셈이죠.”

로이킴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주변에서 이세미에게 “로이랑 같이 살아 좋겠다”라며 부러움을 전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한다. 민우혁은 “아내는 그럴 때마다 ‘내 남편은 민우혁이지 로이는 아니다’라고 하지만 나를 자랑스러워한다. 가족에게 인정받는 것. 그게 가장 행복하다”라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의 눈빛에서 아내를 향한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최근 주가가 높아지면서 친정 LG트윈스에서 시구 제안이 올 법도 하다. 민우혁은 “야구공을 손에서 놓은 지 10년 정도 돼서 만약 제안이 온다면 한 달 정도 몸을 만들고 나가야 한다”라고 웃었다.

시구는 안 했지만 지난 2018년 한국시리즈 6차전 당시 자신의 홈구장이던 잠실 야구장에서 애국가 가창자로 나선 경험도 있다.

민우혁은 당시 기억에 대해 “야구선수로서 단 한번도 잠실 야구장 마운드에 선 적이 없었는데, 배우로 성공해 정장을 입고 동료들이 지켜보는 마운드에 섰던 그 순간은 평생 기억에 남는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운동선수들은 어렸을 때부터 운동만 하기 때문에 성인이 된 뒤 운동을 그만두면 막막해진다”라며 “지방 출신, 신고 선수였던 나도 그 어렵다는 연예계 생활을 하고 있다. 운동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성공하기 위해 악착같은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야구선수 출신인 만큼 가장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은 JTBC ‘최강야구’다. 민우혁은 “불러만 준다면 악착같이 몸을 만들어서 나가겠다”라고 자신감을 표했다. 하지만 당장은 연말까지 잡힌 공연을 소화해내야 한다.

민우혁은 올해 3월 서울에서 막을 올린 창작뮤지컬 ‘영웅’에 출연 중이다. ‘영웅’은 천안, 고양에 이어 수원, 전주, 부산 공연을 앞두고 있다.

그는 “객석에 빈자리가 눈에 띄게 줄어서 아이돌 부럽지 않다. 올해 연말은 공연장에서 인사드리겠다. 차기작도 응원해달라”라고 당부했다.

mulgae@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