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註 : 50년 전인 1973년 4월, ‘선데이서울’의 지면을 장식한 연예계 화제와 이런저런 세상 풍속도를 돌아본다.

[스포츠서울] 분분한 낙화의 계절, 벚꽃 뉴스가 TV와 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여의도, 석촌호수, 남산 순환로, 양재천 등 서울의 벚꽃 명소를 앞다투어 거의 매일 보도한다.

제주에서부터 서울까지 벚꽃 개화 시기를 알려주고, 올해는 예년보다 벚꽃이 일찍 피었다고, 개화 시기가 빨라지고 있는 것은 지구온난화 영향이라고 친절한 설명도 더해진다. 이즈음 벚꽃 정보는 풍성하다.

50년 전 이맘때도 서울은 벚꽃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전국 모든 극장에서는 영화 상영 전에 만드시 대한뉴스가 나왔다. 문화공보부(오늘날의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영화제작소가 만든 뉴스로 이즈음이면 늘 벚꽃 소식이 전해졌다. 아나운서 멘트의 시작은 으레 “벚꽃이 만발한 창경원입니다” 였다.

조명을 받아 더욱 화사해 보이는 벚꽃, 활짝 핀 벚꽃을 즐기는 사람들, 오가는 인파 등 창경원 영상은 영락없는 축제장 분위기였다. ‘선데이서울’ 236호(1973년 4월 22일)는 컬러 화보로 봄 풍경을 전했다. ‘활짝 핀 창경원의 봄’이라는 타이틀로 벚꽃 나무 아래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화사한 벚꽃만큼이나 빛나는 청춘들의 모습이 담겼다.

또 다른 해의 대한뉴스는 “향기 그윽한 창경원에 벚꽃이 만발했습니다… 벚꽃 놀이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로 창경원의 현장 분위기를 묘사한다.

이렇듯 50년 전에는 벚꽃놀이라면 서울에서는 창경원, 지방에서는 군항도시 진해가 빠지지 않았다. 그중 단연 화제는 창경원 밤벚꽃놀이 개장 소식. 즐길만한 마땅한 장소나 기회가 부족했던 그 시대 창경원 밤벚꽃놀이는 연례행사로 주목받았고 화제였다.

더구나 창경원에는 1984년 경기도 과천으로 옮기 전까지 동물원이 있었다. 벚꽃 구경에다 코끼리나 물개, 홍학 등 진기한 동물까지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으니 한번 가보기를 소원하는 사람이 많았고, 다녀온 것이 자랑거리였다니 그때를 짐작게 한다.

시대와 세월이 달라져도 정말 많이 달라졌다.

◇여행은 즐겁게, 지불은 천천히. 제주도 여행을 월부로…

어려웠던 시대, 샐러리맨의 가장 큰 슬픔은 월급이 쥐꼬리(?)만하다는 것이었다. 왜 우리는 적은 월급을 늘 쥐꼬리에 비유했을까. 궁금하다.

1970년대 샐러리맨들의 월급 이야기이다. 많지 않은 월급에서 미리 당겨쓴 가불이라도 있을 양이면 받아 갈 돈은 더 줄어든다. 월부(외상)로 들여놓은 물건이 있다면 월급봉투는 더욱 얇아지기 마련.

1970년대까지만 해도 월부가 흔했다. 맞춰입은 양복도, 집에 들여놓은 전자제품도, 책도 월부로 마련하는 집이 많았다. 필요하다고 해서 일시불로 척척 구매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월부는 분할 상환하는 외상이었다.

‘선데이서울’ 235호(4월15일)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관광도 월부로–10개월에 나눠 갚는 제주 3박 4일’

여행을 편안하게 먼저 다녀오고 여행비는 천천히 매달 내라는 것이 핵심,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제주이지만 1973년 무렵에는 신혼여행이나 특별한 계기가 아니고는 가기가 쉽지 않았다. 생활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주도 한 번 다녀온 걸 평생 자랑하던 시대였다.

기사 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이렇다. 한 관광회사가 ‘여행은 즐겁게 지불은 천천히’라는 친절한 광고로 제주도 여행 희망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여행 월부 시대의 개막인 셈이었다.

일단 3850원을 내면 제주도 여행을 떠날 수 있고, 여행을 마친 다음 달부터 아홉달 동안 매월 일정액을 내는 아주 간단한 방식이었다. 그 회사 말로는 신청자가 몰리고 있어 1973년 목표인원인 1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했다.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지만 잘 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제출할 서류가 있다고 했다. 주민등록등본, 인감증명 보증인 1명이 필요하고, 보증인은 직장인의 경우 경리 책임자의 지불확인서를 내야했다. 월부로 여행 한 번 가는데 이런 걸 내야하다니 오늘날 상식으로는 헛웃음이 나올 일이다. 그런데 그땐 이런 일이 통하는 시대였다.

이처럼 엄청난(?) 양의 서류를 요구한 배경에는 한때 국제관광공사(오늘날의 한국관광공사)가 월부 관광을 도입했다가 수금이 잘 안돼 실패로 끝난 때문 아닌가 싶다.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였을게다.

당시 이웃 일본에서 ‘동남아 일주’ ‘하와이’ ‘유럽’ ‘세계 일주’ 등 다양한 해외여행 프로그램을 이미 월부로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도 제주도부터 월부여행을 시도해 보자는 구상이었던 것 같다.

그 후 ‘선데이서울’ 236호 (4월 22일)에 ‘여행은 즐겁게 지불은 천천히 3850원으로 삼다의 섬 제주도여행!’ 이라는 전면 광고가 실렸다. 이렇듯 광고도 하면서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그 후 이어지지 않은 걸 보면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 후 급격하게 확산된 신용카드 영향도 있었으리라. 신용카드의 할부 결제는 50년 전 흔했던 월부 제도와 도긴개긴이기 때문이다.

자유기고가 로마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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