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수원=윤세호기자] 사령탑도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해 최고구속을 캠프 초반에 찍었는데 단순히 구속 뿐이 아닌 모든 부분에서 향상된 모습이었다. 그래서 이례적으로 2월 중순에 개막전 선발투수로 낙점했다.

기대는 고스란히 결과로 이어졌다. 포스트시즌 만큼이나 관심이 집중되는 개막전에서 상대를 압도하며 승리투수가 됐다. 지난해 4이닝 3실점으로 고전했던 상대에게 6이닝 1실점(비자책) 호투로 승리를 이끌었다. 최고구속은 지난해보다 2㎞ 높은 시속 151㎞. 구위에 앞서 제구 또한 완벽했다. 단 하나의 볼넷도 범하지 않으면서 완벽한 코너워크를 자랑했다. KT 새 에이스로 올라선 좌투수 웨스 벤자민(30) 얘기다.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지난해에도 나쁜 모습은 아니었다. 작년 6월 KT에 합류한 벤자민은 17경기 96.2이닝 5승 4패 평균자책점 2.70으로 KBO리그 첫 시즌을 보냈다. 실전을 거듭하며 상승곡선을 그렸고 포스트시즌에서도 호투했다. 당연히 재계약 대상자로 분류됐다.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이다. 일찍이 KT와 재계약한 벤자민은 겨울에도 공을 잡았다. 개인 훈련을 통해 기량을 연마했고 2월 미국 애리조나 투산 캠프에서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라이브피칭부터 150㎞에 가까운 강속구를 던지면서 상대 타자였던 강백호와 박병호를 제압했다.

KT 이강철 감독은 캠프 기간이었던 지난 2월 15일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한 번 크게 다뤄달라. 벤자민이 LG와 개막전에 선발투수로 나선다”고 발표하며 “미국에서 몸을 잘 만들었더라. 시즌 때 최고 구속이 벌써 나오고 있다. 그러면 시즌 때도 분명 이 모습이 나올 수 있다. 개막전 상대인 LG는 주축이 왼손타자들이다. 그래서 벤자민을 개막전 투수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이 감독의 선택은 적중했다. 이 감독이 그린 청사진대로 벤자민은 좌타자가 많은 LG를 상대로 더할나위없이 활약했다. 5회까지 퍼펙트 피칭을 펼쳤다. 6회초 문보경이 중전안타로 출루하기 전까지 16타자 연속 범타로 질주했다. 포수 포일로 문보경이 2루까지 진루했고 서건창에게 적시타를 맞았지만 실점은 거기서 끝이었다.

벤자민이 지난해 다승왕이자 LG 에이스 케이시 켈리와 선발대결에서 완승을 거두면서 KT 또한 LG를 11-6으로 꺾고 개막전 승리를 챙겼다.

경기 후 주인공도 당연 벤자민이었다. 이 감독은 승리 소감으로 “벤자민이 시즌 전 예상한대로 최고의 피칭을 했다. 첫 경기라 부담이 됐을텐데 잘 극복하며 1선발다운 면모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홈런 포함 3안타로 뜨겁게 배트를 휘두른 강백호도 벤자민에 대한 질문이 나오지 찬사를 보냈다. 그는 “올해 벤자민은 KBO 최고 좌투수라고 생각한다. 라이브피칭과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상대했는데 좌타자는 정말 쉽지 않은 공을 던진다. 모든 게 다 좋다. 구위, 제구, 코너워크가 완벽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덧붙여 “인성 좋고 한국어도 잘 한다. 흠잡을 데가 없다. 그저 같은 팀이라 다행”이라고 웃었다.

KT의 최대 장점은 선발진이다. 토종 선발이 특히 그렇다. 고영표, 소형준, 엄상백, 배제성 등 모든 팀이 탐내는 선발투수로 가득하다. 그래도 옥의티를 꼽자면 왼손이 없는 것이었는데 이 부분을 벤자민이 완벽히 채우고 있다.

벤자민이 도약하면서 왼손, 오른손, 사이드암까지 모든 유형이 수준급으로 선발진을 구축한 KT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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