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고진현전문기자] 물 들어올 때 배 띄우고, 바람 불 때 연 날리라고 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선 외부의 힘과 도움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배 뛰우고 연날리는 데도 그럴진대 정책과 관련해서는 말해야 뭐할까…. 그런 점에서 체육계는 신바람을 낼 만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체육의 든든한 지원군을 자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14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열린 ‘2023년 대한민국 체육비전 보고회’에 참석해 국가적 차원의 체육지원을 약속했다. 이날 보고회에는 국가대표 선수와 지도자, 각 지자체 체육회장, 생활체육 동호인 등 약 1600여명이 자리를 함께 하며 ‘스포츠 프렌들리’를 표방한 대통령의 철학과 약속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체육을 향한 대통령의 의지와 철학은 정책적 방향성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지난 정권은 솔직히 그랬다. 체육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과 열정이 별로 없어 체육은 힘이 빠졌다. 더욱이 정치적 과잉신념에 침범당한 체육은 시계(視界)제로 상황으로까지 후퇴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정부의 체육정책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기는커녕 편향된 가치에 휘둘리며 체육인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과잉신념에 경도된 정책은 봇물터지 듯 터져 나왔다. 그것도 톱타운 방식으로 강행되면서 체육시계는 거꾸로 갔다는 볼멘소리도 덩달아 터져 나왔다.

그랬던 체육시계가 윤석열 정부에선 원점으로 돌아가 새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엘리트체육의 힘을 빼는 스포츠혁신위원회의 잇따른 권고안을 원점으로 되돌린 게 새 정부 체육정책의 신호탄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서 지난 정권의 체육 실정(失政)을 겨냥한 듯 엘리트체육 육성에 방점을 찍는 정책 전환을 선언해 체육인들의 열렬한 박수를 이끌어냈다. 대통령의 체육철학은 더이상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확고 부동한 것 같다. 그렇다고 모든 게 해결됐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책이 정치적 선언에 그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정책이 실효성을 획득하기 위해선 다양한 방식의 액션플랜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한 정책 흐름을 자연스레 유도하는 환경과 제도변화도 잇따라야할 게다. 만약 액션플랜과 제도변화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대통령의 장밋빛 약속은 무용지물이 될 게 뻔하다. 대통령이 선언한 정책이 체육인들의 부픈 희망에 찬물을 끼얹는 립서비스에 머문다면 그건 불행이다. 체육정책이 겉만 번지르한 립서비스에 그친 경우는 허다했다.

지난 정권에서 체육은 쑥대밭이 됐다. 정치가 휘두른 채찍은 매서웠고, 체육은 거친 소용돌이 속에 방향을 잃고 표류했다. 대통령은 체육에 별 관심이 없었고 일부 정치인들이 정치공학적 셈법으로 체육을 쥐락펴락하면서 체육의 국제 경쟁력은 눈에 띄게 저하됐다. 윤 대통령이 체육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은 체육을 담당하는 중앙부처의 입장에선 부담이 크다. 체육에 관한 대통령의 관심과 열정이 알찬 열매를 맺기 위해선 체육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우선이다. 정책이 뿌리내릴 수 있는 환경 마련과 다양한 유인책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체육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 체육을 이끄는 대한체육회가 상생의 협력관계로 돌아서는 게 중요하다. 그동안 두 조직은 으르렁대면서 서로를 향해 대립각을 세웠다. 하기야 지금도 문체부와 대한체육회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냉랭하기 그지 없지만 새로운 터닝포인트를 맞이했으면 좋겠다. 체육발전을 위해 손을 잡아도 모자랄 판에 소모적 감정싸움은 유치하기 그지없다.

대통령이 체육에 관심이 있다는 건 분명 든든한 힘이다. 그러나 체육을 향한 대통령의 열정과 철학을 실효적 정책으로 묶어내기 위해선 체육계의 혁신이 요구된다. 체육계에 만연한 시대착오적 관행과 켜켜이 쌓인 적폐(積弊)를 스스로가 걷어내지 못하면 체육시계는 언제든지 거꾸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에서 체육은 한참이나 후퇴했다. ‘스포츠 프렌들리’ 깃발을 치켜 든 윤 대통령의 철학에 발맞춰 이제는 체육계가 응답할 때다. 체육의 새로운 르네상스는 누가 열어젖혀야 하는가. 물은 들어왔고, 배까지 잘 띄웠다. 그렇다고 배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노(櫓) 젓는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노는 대통령이 젓는 게 아니라 체육인들의 몫이다. 체육계가 더욱 분발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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