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및 컷

[스포츠서울 | 고진현전문기자] 전모를 알면 막장 드라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미스터리 스릴러다. 화제의 중심에 섰던 성남시 직장운동부 쇼트트랙팀 코치직 공개채용이 지난달 31일 ‘합격자 없음’이라는 싸늘한 다섯 글자로 막을 내렸다. 공개채용에서 결과를 내지 못한 경우는 대개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게다. 합격자가 함량미달이거나 아니면 인사권자가 원하지 않았던 사람이 합격된 경우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번 케이스는 더 복잡하게 꼬인 것 같다. 인사 최종결정권자와 실무진이 서로 다른 사람을 염두에 둔 흔적이 감지됐고, 특정 후보와 결탁된 세력이 조직적으로 여론의 흐름을 주도한 정황도 엿보였다. 결정적으로 이 움직임을 간파한 선수들이 매스컴을 통해 자신들의 우려섞인 입장을 개진한 것도 심상치 않다. 여기다 중앙 정치권력까지 개입해 특정 후보에 대한 인사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얽힌 실타래는 더욱 꼬여버렸다.

빙상판의 이전투구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맥락적 흐름이 복잡하고 성남시의 체육 시스템이 워낙 망가져 있기 때문에 미주알고주알 까빌리는 건 오히려 사태의 밑그림을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다만 이 사태의 본질만은 정확하게 밝혀두는 게 필요할 듯 싶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다양한 해석과 추측이 차후 지도자 선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이번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는 첫 번째 열쇠는 무엇일까. 성남시 쇼트트랙 코치 공채가 왜 이렇게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는지를 따져보는 데서 그 답을 찾아야 할 게다. 누군가 특정인물을 떨어뜨리려는 의도로 언론 플레이를 펼친 정교한 흔적이 엿보인다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최초의 관심에 불이 붙어 더 큰 화제로 몸집을 키운 변곡점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뜬금없이 특정단체가 두 명의 후보자를 콕 짚어 부정적 이미지를 생산하면서 여론몰이를 시도했다. 이 같은 사실은 이번 사태의 숨어 있는 본질을 꿰뚫는 유력한 증거로 부족함이 없다. 이 단체는 보도자료 배포에서도 냄새를 풍겼다. 특정 매스컴에만 선별적으로 보도자료를 뿌려 의혹을 증폭시켰다. 이 두 가지 객관적 사실은 성남시 쇼트트랙 코치 공채에 누군가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를 강하게 시사했다.

여기에 성남시 소속 쇼트트랙 선수들이 마지막 불씨를 댕겼다. 에이스 최민정을 비롯해 6명의 선수들은 “코치 선발과정이 외부의 영향력에 의한 선발이 아닌,무엇보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면서 “지원자 중 코치 감독 경력이 가장 우수하고 역량이 뛰어나고 소통이 가능한 코치님이 오셔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민정과 선수들의 입장문이 지난달 31일 새벽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외부로 알려진 뒤 성남시청은 사회적 파장을 의식한 듯 서둘러 ‘합격자 없음’을 발표했다.

일부에선 최민정과 선수들이 감독 선임에 간여하는 것은 선수로서 월권이라는 비판을 내놓기도 했지만 이는 본질을 외면한 섣부른 비난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최민정과 선수들이 오해를 무릎쓰고 입장문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채용의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흐름이나 정보를 확인했기 때문일 게다. 지도자 선임을 둘러싸고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내부 시스템의 흐름과 채용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듯한 언론 플레이, 그리고 특정 후보를 미는 정치적 입김 등. 이 모든 객관적 팩트를 종합한 끝에 선수가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이 바로 입장문을 통한 의사 표명이 아닐까 싶다. 자칫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여겼는지 최대한 절제된 언어를 구사한 게 이 같은 분석에 설득력을 더해주는 근거다.

성남시의 체육 시스템은 저열한 정치에 망가진 지 오래다. 전임 감독이 성남시장 선거 등에 체육을 조직적으로 동원한 점,그리고 이번 공채에 응모한 후보 한 명은 빙상문제에 정치권력을 끌어들여 삼성을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사에서 쫓아낸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정치를 끌어들여 얼음판을 쑥대밭으로 만든 이들은 이번 사태에서도 깊숙이 개입돼 있다. 둘은 한 배를 탔다가 서로에게 칼을 들이대는 앙숙으로 돌아서 결국 이번 사태를 막장 드라마로 만든 원흉으로 지목된다.

정치권력의 교체,즉 시장이 교체됐다고 시스템이 바뀐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오염된 시스템의 잔재와 그 속에서 적응한 인적 자원이 아직 그대로 남은 탓에 새로운 정치 시스템과 균열을 일으키며 시끄러운 파열음을 낼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체육 시스템이 돌아가기 위해선 전문성을 갖춘 인적 자원이 새롭게 가세해 바뀐 정치 시스템과 조응하는 게 시급하다.

지금의 성남시 체육 시스템은 오염된 정치 시스템에 의해 가동되기 때문에 파열음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중앙 정치권력도 악수를 뒀다. 체육의 맥락적 흐름을 전혀 모르는 정치 권력이 이번 인사에 개입하면서 혼란만 가중시켰다. 오죽하면 선수들이 입장문을 쓰면서 반발했을까. 사상 최악의 체육 행정은 문재인 정권이라는 평가는 짜장 틀린 말이 아니다. 정치가 체육에 깊숙이 개입해 시스템을 망쳐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의 체육 실패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망가진 시스템과 그 시스템에 적응된 문제 인사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다. 이번 성남사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말도 안되는 막장 드라마를 연출한 쇼트트랙 코치 공채는 정치에 훼손된 체육 시스템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제발,새 정부에선 달라졌으면 좋겠다.

<jhkoh@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