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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고진현전문기자] 이쯤되면 꺼내기 힘든 불편한 진실이 아닐까. 유소년 클럽이나 초등학교에서 뛰어난 경기력을 뽐내다가도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발전은커녕 오히려 뒷걸음질을 친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 한국 체육의 숨기고 싶은 미스터리,문제는 정확한 진단이다. 그래야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는 건 의미있는 인과관계가 숨어 있다는 얘기다. 한국 체육에는 천재와 신동이 차고 넘친다. 그만큼 재능과 피지컬이 좋은 재목이 많다. 또래의 실력을 훌쩍 뛰어넘는 될성부른 떡잎들의 등장은 그리 낯설지 않지만 과연 결과는 어땠는가? 기대감이 무색하게 거품처럼 사라지거나 아니면 그저 그런 선수로 전락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세상 일이 타고난 능력에 뼈를 깎는 노력,그리고 운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절 인연 등이 두루 따라야 성공할 수 있겠지만 재능이 중요한 체육이라는 분야에서 그 많던 신동과 천재들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사라지는 건 어쩐지 좀 그렇다. 주머니 속 송곳처럼 출중한 기량을 뽐내던 어린 천재들이 중학교에 진학한 뒤부터 약속이나 한듯 뒷걸음질친다면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그냥 넘겨버려서는 안될 나쁜 변화로 그 원인을 규명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단절과 퇴행을 불러일으킨다는 학교체육의 아킬레스건을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엘리트 선수에게 학교라는 시스템은 문제가 좀 있는 것 같다. 중·고·대학교,그것도 개인종목보다는 단체 구기종목에서 학교라는 시스템이 경기력 향상의 걸림돌로 작동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여러가지 이유가 거론되겠지만 이러한 기현상은 진학과 지도자의 직업 안정성에 기인하고 있다는 분석은 꽤 설득력이 있다. 엘리트체육은 입문~육성~완성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각 단계가 물 흐르릇 이어져야 하고 최종 완성의 단계까지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진리다. 그러나 학교라는 시스템은 기다리는 인내심보다 성마른 조급증을 부채질하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선수나 지도자 모두 성적을 내야만 진학과 자리보전에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성적을 내지 못하면 선수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상급 학교에 진학할 수 없게 되고,지도자 역시 재계약에 실패해 자리를 지키지 못할 공산이 크다. 그래서 지도자는 성적을 내기 위해 ‘이기는 경기’에 집중하고 선수들은 지도자의 ‘이기는 경기’에 몸을 내맡기게 된다. 그 결과 육성 단계에서 필요한 기본기나 세계적인 흐름에 맞는 선진적인 플레이와는 담을 쌓고 오로지 승리에 포커스를 맞춘 퇴행적 플레이에 길들여지는 게 학교 엘리트 선수 육성의 현주소다. 차곡차곡 쌓인 기본기의 바탕 위에 기술과 체력 그리고 멘털이 더해져야 제대로 된 성장이 가능하다. 직업 체육인으로 성공하려면 양질전화(量質轉化)의 법칙을 잊어선 곤란하다. 질적인 도약은 양적인 축적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이 법칙은 육체를 정교하게 단련시켜야 하는 체육에선 금과옥조와도 같다. 기술과 체력이 반복된 훈련을 통해 축적돼야 경기력에서 질적 도약을 꾀할 수 있다는 게 검증된 체육이론이다.

학교체육에서 단절과 퇴행을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축구의 예를 한번 들어보자. 2022카타르월드컵에서 한국과 일본은 똑같이 16강에 진출했지만 객관적인 경기력에선 일본이 한발 앞섰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유소년 클럽에선 누가 뭐래도 한국의 경기력이 일본을 압도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한국 선수들의 경기력이 급전직하하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저변의 두께도 무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경기력의 후퇴를 부채질하는 결정적 이유는 ‘이기는 축구’가 학교축구의 주요 흐름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기는 축구’는 어릴 때 몸이 기억했던 창조적 플레이에 제동을 걸면서 경기력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지금 세계 축구의 흐름은 기술과 압박이 강조되는 빌드업 축구가 대세다. 어릴 때부터 이러한 빌드업 축구에 대한 이해도를 키운 이들이 학교에 진학한 뒤에 어떻게 바뀌는지를 살펴보면 이해가 빠르다. 한 골을 넣으면 곧바로 탄탄한 수비축구로 전환해 상대의 공격을 자물쇠처럼 단단히 걸어잠그는 전술을 택하는 게 학교 축구의 보편적 전술로 자리잡았다. 위기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정교하고 빠른 패스를 통해 상대의 압박을 풀어내는 빌드업 축구를 구사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기는 축구’를 하기 위해 단번에 볼을 걷어내는 ‘뻥축구’로 일관하는 게 우리 학교축구의 풍토다. 강한 압박과 이를 돌파할 수 있는 개인기가 필수적인 빌드업 축구가 적어도 학교 축구에선 자리를 잡기 힘들다는 전문가들의 자조섞인 고백은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진단이 나왔으면 처방도 뒤따라야 할 게다. 학교체육의 고질적인 아킬레스건인 경기력의 단절과 퇴행 현상은 현장과 정책 결정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할 문제다. 원론적으로 학교체육의 경기력 퇴행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선 진학과 성적에 목을 매는 ‘이기는 경기’ 풍토를 바꾸는 길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자율적인 스포츠 문화도 중요하겠지만 성적과 진학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필요하다. 체육 선수들의 진학에 있어서 규제와 관리보다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하는 게 더욱 효과적인 솔루션이 아닐까 싶다. 인내심을 갖고 멀리 내다보는 지도자의 의식 전환은 반드시 필요하다. 지도자가 바뀌지 않으면 선수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체육에 드리운 단절과 퇴행의 검은 그림자를 걷어내지 않으면 한국 체육의 밝은 미래는 기대할 수 없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건 누가 뭐래도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니까 그렇다.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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