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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고진현전문기자] 계묘년, 체육계가 숨통을 텄다. 잘못 든 길에서 빠져 나오는 정책 수정이 단행됐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는 지난 19일 엘리트체육을 크게 위축시킨 문재인 정권의 학생선수 출석인정일수 축소 정책을 대폭 늘리겠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출석인정일수는 초등학교 20일,중학교 35일,고등학교 50일로 각각 늘어나게 됐다. 종전대로라면 초등학교와 중등학교는 0일,고등학교는 10일로 학생선수 출석인정일수가 각각 축소돼 학교체육이 위기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체육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됐다.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반성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수용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정책의 수정은 필연적이지만 적어도 한국에선 그렇지 못했다. 정책 수정은 관료들의 실패로 여겨지는 풍토가 강했고 그에 따라 자칫 정책결정자의 책임소재로 불똥이 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정책이 만들어지고 수정되기까지는 시스템 작동이 필수적인데 이러한 모습은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정책이 시스템에 의존하기보다 정치공학적 셈법이나 권력자의 입김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이러한 흐름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정책은 과정이 중요하다. 정책 도입의 필요성,즉 명분에 맞는 계획(PLAN)이 우선해야 하고 그 계획이 현실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는 실행(DO)이 뒤따라야 하며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분석(SEE)역시 결코 빠져서는 안된다. 분석은 정책 의도와 현실의 간극을 점검하는 것으로 정책 수정의 밑바탕이 되는 과정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분석의 과정이 무시되거나 생략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책 도입의 명분과 정책 결과의 간극이 크면 피드백을 통한 정책수정이 뒤따라야 하지만 우리 사회는 늘 이 과정에는 이상하리만큼 인색했다. 이번 학생선수 출석인정일수 확대는 정부의 탁상공론식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정책 변화라는 게 눈여겨볼 대목이다. 앞으로 윤석열 정부의 체육정책에 부픈 기대감이 쏠리는 이유다.

다만 제대로 된 길을 가기 위해선 여기서 안주해선 곤란하다. 잘못 든 길에서 빠져 나온 건 어찌보면 현상의 유지를 위한 전제조건일 뿐 발전을 위해선 또다시 새 길을 찾아 힘차게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체육정책은 냉정하게 말해 전체를 조망하는 밝은 눈이 없었고 미래를 향해 내딛는 빠른 발이 없었다. 눈이 가려지고 발이 묶인 건 정책적 관심이 엘리트체육에만 쏠려 있어서다. 정책에선 효과가 중요하다. 정책 결정자들이 엘리트체육에만 신경을 쓰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정책 효과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 결과 한국 체육은 균형과 조화 그리고 체육의 각 분야가 한데 어우러지는 생태계 구축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체육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에 변화를 꾀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체육을 전일적(全一的)으로 파악하는 눈을 기르고 그에 맞는 정책을 펼쳐야 할 때다. 그 첫 걸음은 전체학생 가운데 1%에 불과한 학생선수에 관한 정책이 아니라 99%에 달하는 일반학생의 체육활동 강화 정책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자. 엘리트체육의 가치를 폄훼하거나 엘리트체육의 국제 경쟁력을 포기하는 단선적인 논리에 빠져서는 안될 일이다. 체육을 인적자원(human resources)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철학과 태도는 균형잡힌 정책을 견인하는 중요한 열쇠로 부족함이 없다. 한국처럼 인구밀도가 높고 부존자원(賦存資源)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국가에선 인적자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구절벽에 따른 국가 경쟁력 감소는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더욱이 인적자원을 양이 아닌 질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때 체육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건강한 노동력,그리고 여기에 창조적 상상력까지 더해진 인적자원이라면 엄청난 경쟁력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학생 신체활동지수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다. 초등학교 1,2학년은 아예 체육수업 자체가 없다는 사실을 과연 국민들은 알고나 있는지…. 입시에 치여 고등학교 체육시간은 고작 주당 1~2시간에 불과하다. 고교 1,2학년이 주 2시간, 고교 3학년은 주 1시간에 각각 머물러 있다. 2024년에는 고교 2학년도 체육시간이 주 1시간으로 줄어든다고 하니 특단의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인적자원의 경쟁력 확보는 균형잡힌 인간의 육성에 다름 아니다. 육체와 정신의 조화로운 발전,이게 곧 체육의 가치가 아니고 무엇이랴. 체육활동을 하게 되면 창조적 상상력이 샘솟는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이 입증한 결과다. 지금부터는 일반학생들이 체육활동에 참여하는 시간을 늘리는 정책에 힘써야 할 때다. 윤석열 정부는 거꾸로 돌아가는 체육정책 시계를 멈춰 세웠다. 이제 시계를 똑바로 가게 하는 일이 남았다. 일반학생들의 체육활동 참여 확대,이게 바로 진정한 의미의 학교체육 정상화의 길이다.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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