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및 컷

[스포츠서울 | 고진현전문기자] 프로 스포츠의 프런트는 그야말로 달빛 같은 존재다. 태양처럼 눈부신 빛을 뿜어내지는 않지만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바로 은은한 달빛이다. 화려한 햇빛에 가려 있지만 칠흑같은 밤 길에 갈라잡이가 되는 그런 존재다. 프런트는 프로 스포츠에서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분야다. 프로 구단의 운영조직 전체를 아우르는 프런트 오피스(front office).우리 말로는 사무국이라고 번역하면 의미상 별 무리가 없다. 뜬금없이 프런트를 화두로 꺼집어낸 데는 최근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 사태 때문이다. 비상식적인 감독 경질의 배후에 윗선의 작전권 개입이 결정적 원인이었음이 드러나면서 프런트의 바람직한 역할에 대한 지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사실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프런트가 존재감을 인정받기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국내 프로스포츠가 아직 제대로 된 산업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탓이 크다. 가장 오랜 역사와 함께 그나마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게 성장한 프로야구에서나 프런트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고나 할까,아직 나머지 종목에선 선수단의 지원 정도쯤으로 여겨지고 있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프로배구의 역사가 짧은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다른 프로종목에 견줘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결정적 이유는 프런트의 전문성 결여 때문이다. 국내에서 가장 선진적인 프로종목인 야구와 달리 아직도 프로배구의 프런트는 모기업 업무를 보다가 차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스포츠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몸에 익은 기업경영과 문화의 섣부른 이식으로 현장과 불협화음을 노출하곤 한다. 전문성이 부족하다보니 현장과 명확한 경계를 잊어 버리기도 한다. 모기업 임원이 프런트의 수장인 단장을 겸직하면 간섭과 개입은 부지기수다. 이런 구단은 대체로 오너가 배구에 상당한 관심과 열정이 있다는 게 특징이다. 프런트의 수장인 단장이 오너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감독의 고유영역인 작전권을 침범해 미주알 고주알 훈수를 두다가 사달이 나는 경우가 많다.

이번 흥국생명 사태 역시 여기서 비롯됐다. 관심이 병이 된 오너의 문제인지,아니면 오너에 잘 보이기 위한 임원의 과도한 충성심의 발로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런트의 역할을 망각하고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 버린 게 불씨가 됐다. 문제는 금도를 넘은 흥국생명의 행태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흥국생명의 눈살 찌푸려지는 일련의 ‘흑역사’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프로 스포츠는 오너의 노리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 구단은 기업의 소유겠지만 흥국생명이 속한 V리그라는 무형의 가치는 그리 단순한 게 아니다. 그 속에는 리그의 실질적인 주인인 팬과 다른 구단의 연대적 협업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프로 구단의 공공재의 성격은 그래서 형성된 가치다. 자꾸 반복되는 실수는 다른 구단과 V리그 브랜드 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흥국생명도 이번 사태로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게다. 프로 구단이 오너가 맘대로 즐기는 인형놀이쯤으로 여겼다가 프로 스포츠의 주인은 팬이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팬의 요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탈한 궤도를 하루빨리 수정하는 게 옳다. 감독의 고유권한과 프런트의 역할과 경계를 명확히 결정짓기 위해선 전문 단장의 영입이 필요할 것 같다. 스포츠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는 물론 배구 전문성이 뒷받침된 단장이 들어와야 현장과 프런트의 가르마를 명확하게 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흥국생명은 구단이 자주 범하는 홍보전략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늘상 팬과 대중이 원하는 바를 잘못 짚어 반대로 가는 ‘청개구리 홍보전략가’ 대신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프런트를 홍보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때는 흔히 방파제와 수로의 역할을 슬기롭게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외부의 비상식적인 거센 공격을 막아주는 든든한 방파제의 역할과 함께 좋은 생각과 제안을 조직내로 끌어들이는 수로의 역할을 겸비하는 게 홍보전략 프런트의 가장 기본적인 능력이자 태도다. 흥국생명은 구단 홍보전략에선 낙제점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방파제와 수로의 역할을 거짓말처럼 엇박자로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든든한 방파제가 필요할 때는 어설픈 수로가 됐고, 원활한 수로가 필요할 때는 아둔한 방파제를 자처했다. 이를 바라보는 팬들의 속내는 과연 어땠을까. 물어봐야 입만 아프다.

<jhkoh@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