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 포스터

[스포츠서울|조은별기자]또 ‘국뽕’(맹목적으로 자국을 찬양하는 행태)인가 싶었는데 좀 다른 ‘국뽕’이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은 2014년 개봉한 영화 ‘명량’의 속편이자 내년 개봉예정인 ‘노량:죽음의 바다’로 이어지는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프로젝트 중 두 번째 작품이다.

8년 전 개봉한 전편이 1700만 관객동원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한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만큼 ‘형보다 나은 속편’을 자신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의 위업을 내세우며 애국심을 자극했던 ‘명량’과 달리 ‘한산’은 스크린을 압도하는 스펙터클한 해상전투신으로 한국영화 자체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영리한 차별화 전략을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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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일보한 K기술의 결정체! ‘신의 한수’ 51분 해상전투신

한양을 떠난 임금 선조는 평양성마저 버리고 의주로 도피했다. 경상우수사 원균(손현주 분)은 사사건건 각을 세우며 대립한다. 설상가상 왜군은 염탐을 보내 구선(거북선)에 불을 내고 설계도를 훔친다.

전편 ‘명량’이 1597년 명량대첩이 배경이라면 ‘한산’은 이보다 5년 앞선 1592년, 한산도 대첩을 앞둔 절체절명의 순간을 긴박하게 표현했다. 모든 것이 불리해보였던 전장에서 성웅 이순신은 지혜와 끈기,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해전을 승리로 이끈다.

이를 51분에 걸쳐 해상전투신으로 표현해낸 건 전작과의 비교에서 피할 수 없었던 ‘한산’의 신의 한수이자 올 여름 꼭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다.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장인 강릉 스케이트장에 세운 초대형 세트에서 물 없이 촬영한 이 전투신은 진일보한 K기술의 결정체다.

철저한 고증과 세심한 표현력으로 빚어낸 구선의 자태와 학이 날개를 펼치듯이 적을 포위하는 학익진 전법은 할리우드 전쟁영화에 버금가는 전장을 스크린에 펼친다.

56척의 배로 73척의 왜선 중 47척을 격파한 한산대첩의 위용은 한국 전쟁영화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는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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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사 열전 없지만...존재감만으로 빛나는 배우들의 열전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회자되는 ‘명량’의 명대사다. 배우 최민식은 이 한마디로 묵직한 중량감을 뿜어냈다. 젊은 이순신 역을 연기한 박해일의 유약한 이미지에 우려가 앞선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박해일은 대사보다 강인한 눈빛과 절제된 표정으로 성웅의 고뇌와 지략을 표현했다. 직전에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보여준 유혹에 흔들리는 형사연기는 잠시 잊어도 좋다.

왜군이 코앞까지 들이닥친 순간, 좀처럼 말이 없는 이순신의 입에서 “발포하라”는 명이 떨어졌을 때, 한산도 대첩을 승리로 이끈 뒤 “우리에겐 더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하다”며 부산으로 진격할 때 관객 역시 쾌감으로 전율하게 된다.

말이 없는 이순신과 달리 왜군장수 와키자카 역의 변요한은 유창한 일본어 실력으로 ‘한산’의 오디오를 채운다. 무제한으로 체중을 증량하고 사극톤 일본어 검수까지 받은 그는 조선의 영원한 적을 소화해내며 ‘미움받을 연기’를 온몸으로 실천한다.

요즘 대세로 꼽히는 배우 박지환은 구선의 설계자 나대용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완벽하지도, 완성되지도 않은 구선의 활용을 놓고 고뇌하는 이순신에게 “조금만 시간을 달라”는 결연한 표정에서, 구선 안에서 머리만 내놓고 이순신 장군에게 발포하라며 중얼거리는 간절한 표정에서 ‘범죄도시’의 장이수와 ‘우리들의 블루스’의 정인권을 찾기 힘들다.

노련한 장수 어영담 역의 안성기와 원균 역의 손현주, 항왜 군사 준사 역의 김성규 등도 제 몫을 해낸다.

이름값을 앞세우기보다 연기력을 내세운 젊은 배우들은 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이순신을 따르는 장수 이억기 역의 공명, 탐망꾼 임준영 역의 옥택연, 기생으로 분한 첩자 정보름 역의 김향기 등이 적재적소에 배치돼 적은 분량으로 빛을 발한다. 이들의 열연은 마치 임진왜란 당시 이름없이 전투에 참여한 의병같은 느낌마저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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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 메시지 줄이고 철저한 고증으로 임해

‘명량’은 12척의 배로 330척 왜군과 맞섰다는 기록을 토대로 승리한 전투를 이분법적 선악구도로 그려 지나친 애국심 고취라는 비판을 받았다.

8년 만에 선보인 ‘한산’은 전작의 단점을 딛고 ‘국뽕’ 메시지를 최소화했다.

이순신의 대사를 통해 ‘나라와 나라의 전투’에서 “의(義)와 불의(不義)의 대결”로 임진왜란을 규정했다. 한산도대첩이 벌어졌을 때 육지에서 일어난 웅치전투에서 활약한 의병장 황박, 황진을 내세우며 위대한 장수 뒤에는 민초들의 역할이 컸음을 두루 강조했다.

최근 한국영화들이 해외로 잇달아 판매되는 상황에서 침략의 역사를 가진 아시아 국가에서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mulgae@sportsseoul.com

사진제공|롯데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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