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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송이는 황금 만큼 진귀한 음식이다. 울진에 지금 가면 송이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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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바다의 풍광이 아름다운 울진. 바다와 면한 길을 달려보니 송이 만이 보배가 아니었다.

[스포츠서울]‘송이 송이 하얀 송이 울진 햇송이.’

매월당 김시습은 금강산 등 송이의 주요 산지인 관동땅에 살며 “고운 몸은 아직도 송화향기 서렸네. 희고 짜게 볶아내니 빛과 맛도 아름다워 먹자마자 이가 시원한 것 깨달았네. 말려 다래끼에 담갔다가 가을되면 노구솥에 푹푹 쪄서 맛보리다”라는 송이 예찬시를 남겼다. 매월당 이전과 이후 목은 이색, 이인로 등 문인들이 한낱 버섯에 불과한 송이를 글로 남겼을 정도로 송이는 귀한 가을의 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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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괴석이 바다에 뚝뚝 박힌 울진의 바다.

송이(松茸). 누구나 그 가치를 인정하는 가을의 보석이다. 산에게는 뜨거운 여름을 견뎌냈다는 보상이며, 인간에게는 깊어가는 계절의 선물이 바로 송이다. 흔해 터졌다면 어디 그것에 진귀한 보석의 이름을 갖다붙이랴. 보석같은 송이가 ‘동해의 진주’ 울진에 한가득이다. 울진(蔚珍) 역시 보배로 빽빽히 가득한 곳이란 뜻을 가졌으니 서로 맞는 이치다.

오랜 세월을 견뎌내고 뜨거운 여름과 불어오는 차가운 해풍을 맞고 고개를 내민 새하얀 송이를 맞으러 울진을 다녀왔다.

◇송이, 숲속의 보석
먼저 송이에 대해 알아보자.

백로에서 10월 중순까지 해발 300~500m 산 7~8부 능선에서 수령 30~50년 생 남향 소나무(적송) 아래서 주로 난다는 송이(학명 Tricholoma matsutake). 거기다 낮기온 26도를 넘지 않고 밤기온이 1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까다로운 조건에서 자란다.

특히 바닷가와 가까운 쪽에서 해풍을 받고 자란 송이는 그 향이 좋아 다른 지역에서 난 송이 값에 비해 월등히 비싸다. 일능이 이표고 삼송이(맛이 좋기로 으뜸이 능이요, 두번째가 표고, 송이는 세번째)란 말이 있지만 실상 귀한 대접 받기로는 송이가 으뜸이다.

세계 3대 진귀한 식재료에 꼽히는 프랑스의 송로버섯(Truffe)에나 비할까. 이만한 식재료는 국내에 없다. 자연 그대로의 식재료 중 자연산 장어, 다금바리나 투플러스 등급 한우 쇠고기의 어떤 부위라 해도 1㎏에 70만원(2012년)에 이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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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는 그저 썰어서 회로 먹어도 맛있고 불에 구워도 맛있다. 특히 한우와 함께 곁들여 먹을땐 고기맛이 훨씬 좋다.

송이는 ‘활물기생균’(Biotroph·종속영양균 중 살아있는 생물로 부터 영양을 섭취해 발육하는 개체)인 까닭에 표고버섯처럼 인공재배가 어려워 더욱 귀하다. 워낙 눈에 띄지 않는 음지에서 자라 발견하기도 어려워 그냥 놓치고 지나 썩어버린 경우도 많다.

국내에서 송이에 관한 최고(最古) 기록은 삼국사기. 삼국사기에 신라 성덕왕 3년(704)에 송이를 왕에게 진상했다는 내용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송이는 1500년 전에도 귀한 음식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세종대왕이 원년, 명나라 황제에게 송이를 보냈다는 구절이 등장해 조선의 송이가 중국에까지 유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 문인 이인로는 파한집에 송지(松芝)를 ‘소나무와 함께 하고 복령의 향기를 가진 것’으로 소개했다. 려말 문인 이색은 목은집에 추석을 앞두고 친구로부터 송이를 받은 후, 감사의 뜻을 담은 ‘주필 사민지 후 혜송용(走筆 謝閔祗 侯 惠松茸)’의 예찬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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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를 국이나 탕에 넣으면 향이 훨씬 강하게 퍼진다.

또한 허준 역시 동의보감을 통해 송이를 “성질이 평하고 독이 없으며, 맛이 달고 향기롭다. 깊은 산 소나무 밑에서 솔 기운을 받으며 가을철에 돋아나는 것으로 버섯 가운데 제일”이라고 평했다. 영조 때 학자 유종림은 증보산림경제에서 송이는 채중선품(菜中仙品)이라며 “산나물 가운데 신선의 품격을 가진 것, 또는 신선 만이 감히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귀하고 맛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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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는 원래 동해 백두대간 쪽이 좋지만 소나무가 좋은 울진에 나는 것이 향이 좋기로 소문났다.

9월 말 현재 A급 기준 시세는 1킬로그램 당 50만원을 밑돈다. 그것도 최근 가물어서 많이 오른 것이며 이번 주 비가 오고나면 다시 떨어질 것이란 것이 현지의 예상이다. 몇년 전 같은 물건의 가격이 70만원을 호가했다.

워낙 귀한 까닭에 추석 선물로 주로 쓰이던 송이지만 올해 추석이 빨랐던 탓에 거품까지 벗어던졌다. 게다가 올해 예상 작황도 좋다. 그러니 지금은 송이를 구입하기 가장 최적기란 얘기다.

여차저차하다 올해를 놓치고 내년부터 송이가 다시 흉작이라면 몇년간 송이향을 맡기 버거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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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 숨어있는 보배, 가을 송이.

◇고래로 소문난 명품, 울진송이
울진은 송이 생산량 기준, 국내 최대 산지에 속한다. 강원도 양양과 삼척에서도 나고 경북 봉화나 영덕에도 나지만 울진에는 못미친다고 한다.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 등 소나무가 좋고 맑은 바다를 끼고 있는 천혜의 조건이 명품 송이를 잉태한다.

교통이 지금보다도 훨씬 좋지않던(지금도 서울에서 울진가는 길은 굉장히 어렵다) 동국여지승람에 언급될 정도로 울진은 옛날부터 송이 명산지로서의 명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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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차를 멈춰세우고 바위에 올라 낚싯대를 드리우고 싶은 울진의 바다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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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철이 지나고 갈매기만 점령한 바닷가 모래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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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같은 바다풍경. 송이와는 달리 가져올 수 없는 보물이로세.

울진금강송 송이는 곧게 뻗은 금강소나무가 공급하는 영양과 화강암 편마암, 석회암이 풍화된 토질(마사토)에서 자란다. 그 덕분에 타지역 송이에 비해 표피가 두껍고 단단할 뿐 아니라 저장성이 강해 오래 보관해도 그 향과 신선도가 길게 가는 덕분에 국내산 중에서 세계 최대 송이 소비국인 일본으로 가장 많이 수출하고 있다고 한다.

송이를 캐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온 식구를 동원해서 산을 헤뒤집는 것이다. 그것도 매일 가야한다. 어느 순간 송이가 쑥 나왔다가 갓이 펴버리거나(이러면 가격이 떨어진다) 썩어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돈이 썩는 셈이다.

물론 경험상 송이가 숨어있을 만한 곳을 알기도 하고, 몇년 째 ‘송이밭’이라 불리는 지역을 머릿 속에 숨겨두기도 한다. 하지만 보석을 캐듯 산을 뒤지는 것은 크게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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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에 남아있는 평해 황씨 해월종택. 뒤로 근사한 금강송 숲이 펼쳐졌다.

국유림이든 사유림이든 송이 산을 통째로 낙찰받아 한달이고 두달이고 산속에 천막을 치고 살며 송이를 캔다. 간혹 등산객이라도 나타나면 송이를 몰래 캐가는지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송이는 반쯤 흙속에 숨어있는 경우가 많아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흙을 살살 털어내면 희고 고운 송이가 그윽한 향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아! 감동이다. 가을의 보석과 마주 보기만 해도 벌써부터 엄청난 정신적 포만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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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괴석 사이로 난 해안 길.

◇울진, 동해의 보고(寶庫)
울진에서 볼 수 있는 것 중 송이만 진귀한 것이 아니다. 우선 옥색 바다를 끼고 도는 근사한 해안도로를 따라 진주같은 어항과 해변이 총총 박혀있다.

기성 망양해변과 후포 앞바다까지 이르는 해안도로는 달리기만 해도 기분이 즐겁다. 최근에는 철조망도 많이 걷어내 더욱 시원스레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한국의 아틀란틱 로드라고나 할까. 길과 바다가 너무도 가까운 나머지 큰 파도가 치면 도로에까지 넘실댈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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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달리면 파도의 선율에 따라 오징어가 춤춘다. 어깨가 들썩거리는 해안드라이브 도로.

대게 모양의 가로등과 그 아래로 줄에 널려 가을볕 선탠 중인 오징어가 휙휙 지난다. 아쉬우면 차를 세우고 바닷바람을 맞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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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일손을 놓고 바다를 바라보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은 그렇게 생겨났으리라.

두곳의 이름난 온천과 트레킹하기 딱 좋은 계곡들이 울진에 숨어있다. 국내 최대 생태경관보전지역(102.84㎢)으로 꼽히는 왕피천을 따라 걸으며 기암괴석을 눈으로 훑으며 걷다가 중간의 용소까지 다녀오는 왕복 1시간짜리 코스도 좋다. 계곡을 따라 난 생태탐방로를 이용해 걷다가 학소대에 올라 용소를 조망하고 쉬다 돌아오면 된다.

신선계곡도 좋다. 온천으로 유명한 백암산(1004m) 자락에 꽁꽁 숨은 신선계곡. 무릉계곡처럼 굉장한 이름을 가진 그야말로 비경(秘境)다. 최근 나무데크 탐방로가 만들어졌다. 길을 따라 가면 계곡과 소(沼)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멋진 계곡이 펼쳐진다. 요즘은 송이철이라 탐방이 제한된다. 단풍들 때 다녀오기에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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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인공적인 랜드마크는 없지만 이 멋진 길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패물함처럼 보석이 가득한 울진에서 많은 것을 보고 즐겼다. 그렇다고 덕구나 백암 중 어느 곳에서라도 온천욕을 하지 않은 채 돌아올 수 있나. 몇 곳만 둘러본대도 2박3일 정도 가지곤 힘든 곳이다.

울진 | 글·사진 이우석기자 demory@sportsseoul.com

◇울진여행정보
●둘러볼만한 곳=축제기간 중 오전 9시30분과 오후 1시30분에 남문 앞에서 각각 울진금강송으로 떠나는 숲 탐방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홈페이지에 26일까지 신청.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는 금강소나무숲길 홈페이지(www.uljintrail.or.kr)에서 예약탐방제(인터넷 사전예약)로 운영한다. 하루 80명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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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포 왕돌회수산의 우럭맑은탕. 시원하고 깊은 국물맛이 속풀이에 그만이다.

●맛집=울진읍 연지리 바다횟집은 광어를 썰어넣은 시원한 물회가 맛있다.(054)783-9966. 천년한우식육식당에선 울진군의 신선한 한우 쇠고기를 맛볼 수 있는 곳.(054)783-6818. 후포 왕돌회수산은 최근 조업이 재개된 붉은대게(홍게)를 이용한 홍개정식을 비롯해 맛있는 생선회와 우럭맑은탕(지리) 등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광어와 우럭은 물론이며 각종 가자미 종류까지 제대로 된 동해의 해산물을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홍게는 탕으로도 맛이 좋다.(054)788-4959. 근남면 산포리 망양정횟집은 흔히 서해안에서 맛보는 바지락 위주 해물칼국수와는 다른 가리비와 홍합을 잔뜩 넣은 ‘동해안 식’ 해물칼국수를 맛볼 수 있다.(054)783-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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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정횟집의 가리비 해물칼국수. 서울에서 흔히 보던 서해안식이 아닌 동해안의 조개가 가득 들었다.

●잘 곳=백암온천 지구 내 한화리조트 백암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유명한 백암온천을 즐기고 인근 후포항이나 신선계곡을 다녀오기 좋은 곳이다.(054)787-7001, 덕구온천호텔은 커다란 대욕장을 설치해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곳.(054)782-0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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