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무의 오디세이

[스포츠서울 | 김경무전문기자] 한동안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양대산맥’이었다. 그런데 이젠 ‘불편한 동행’을 하는 사이가 됐다. 최민정(24·성남시청)과 심석희(25·서울시청). 누가 그 불편함을 털어내줘야 하는가?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지난 9~11일(한국시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2022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 뒤, 심석희는 여전히 팬과 많은 언론으로부터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다. 시상대에서 다른 선수들은 웃고 있는데, 투명인간처럼 서 있었다는 가시가 돋친 보도가 나왔다.

심석희와 최민정
심석희(오른쪽)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2022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친 뒤 대표팀과 함께 12일 오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면서 힘든 표정을 하고 있다. 앞은 4관왕을 차지한 최민정. 연합뉴스

심석희는 최민정이 출현하기 이전만 해도,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스타였다. 그러나 최민정이 나타나면서 그의 독보적인 자리는 흔들렸다. 하늘 아래 두개의 태양이 없듯, 심석희는 최민정과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처지가 됐다.

그런 와중에 심석희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때 여자대표팀의 A 코치와 최민정을 비방하는 사적인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 내용이 지난해 특정언론에 의해 폭로되면서 현재까지도 매우 곤경스런 상황에 빠져 있다.

여러 팬들이 심석희를 향해 “인성이 나쁘다”고 비난했다. 결국 심석희는 대한빙상경기연맹 스포츠공정위원회로부터 지난해 12월 ‘빙상계 품위 손상’을 이유로 자격정지 2개월 징계를 받았다. 급기야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응분의 댓가를 치른 셈이다.

심석희는 최근 자격정지가 풀리며 세계대회에 출전했다. 여자 1500m에서는 파이널A까지 진출했다. 그동안의 마음고생과 훈련 부족을 딛고 5위를 차지했다. 여자 3000m 계주 파이널A에서는 최민정 서휘민 김아랑과 함께 한국팀의 금메달을 합작해냈다. 여자 개인종합 8위(6점)에도 이름을 올렸다.

우여곡절 끝에 나름 성과를 올렸으나 심석희는 마음대로 웃을 수 없었다. 4관왕에 오른 최민정과 동료들은 시상대에서 크게 웃으며 좋아했지만, 그는 옆에서 뻘쭘하게 서 있는 모습이었다.

시상대의 심석희
지난 11일(한국시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2022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여자 3000m 계주 시상식. 금메달을 딴 한국 선수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맨뒤 왼쪽에서 3번째가 심석희다. 몬트리올|EPA 연합뉴스

심석희는 어릴 적부터 자신을 지도해온 조재범 코치(징역 13년)로부터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을 당한 심각한 피해자다. 이후 그는 조 코치 가족과 측근들이 불법적으로 변호인 진술서 내용을 언론플레이를 통해 공개하면서 2차 피해까지 당했다. 그것 중 하나가 바로 대표팀의 A 코치와 나눈 사적 메시지다.

심석희는 징계를 받았지만, 팬들과 언론으로부터 ‘절대 끝날 것 같지 않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 와중에 선수생활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번 사태를 들여다보면, 심석희의 전적인 잘못은 아니라고 본다. 어릴 적부터 운동기계처럼 살아온 환경도 무시 못한다. 기술과 체력을 연마해주는 코치는 있어도,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해줄 진정한 스승은 없었다. 지도자들은 선수간 갈등을 오히려 조장했다. 심석희에게 닥쳐온 불행은 그런 점에서 더 심각하다. 선수간 지나친 경쟁과 오로지 메달만 강조해온 세계 최강 한국 쇼트트랙의 어두운 단면이다.

심석희는 아직 20대 중반의 쇼트트랙 선수다. 그에 대한 비판은 빙판을 떠나야만 없어지는 문제일까.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살면서 불편한 동행은 어느 조직이나 단체에도 있기 마련이다. 결국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라도 도와줘야 한다. 빙상계 어른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물론 또 한명의 피해자인 최민정한테는 힘겨운 일이다. 그래서 더욱 어려운 문제다. kkm100@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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