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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사령탑으로 한국을 떠나는 김판곤 감독.제공 | 대한축구협회

[스포츠서울 | 정다워기자] ‘포스트 김판곤’ 시대에 접어들었다.

지난 4년여간 한국 축구는 꾸준히 성과를 올렸다. 2018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시작으로 2019년 20세 이하 월드컵 준우승, 올림픽 8강, 그리고 2022 카타르월드컵 본선 진출 조기 확정까지. 여기에 여자축구대표팀도 월드컵 3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큰 불안감 없이 남녀 A대표팀과 연령대대표팀이 순항하고 있다.

배경에는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의 존재가 있다. 김 위원장은 협회에 전무했던 인사 시스템을 구축한 인물이다. 이 전까지 한국 축구는 개인의 직관이나 경험, 혹은 인맥에 의존해 인사를 해왔다.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 위원장은 양식 없이 인사를 단행하는 구태한 과거 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지도자를 평가할 포트폴리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감독 후보라면 자신의 축구 철학과 스타일, 목표 등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점을 인사의 기준으로 삼았다. 선진 축구의 흐름에 맞게 ‘사단’의 힘을 믿으며 파울루 벤투 감독과 그의 코치들을 함께 영입한 것도 눈에 띄는 변화였다. 인사를 개인의 판단에 맡긴 것도 아니다.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 위원들과의 치열한 논의를 통한 집단 지성을 결정에 반영했다. 그렇게 한국 축구는 적재적소에 알맞은 지도자를 배치했고, 알토란 같은 결실을 맺어왔다. 인사가 전부는 아니었다. 감독과의 소통과 교류를 통해 전술, 선수 기용 등에 대해 논의하며 발전을 꿰했다. 때로는 벤투 감독의 동업자이자 견제자로 많은 역할을 했다. 김 위원장은 이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했고, 필요에 따라 대중에게 공개하기도 했다. 성공여부와 관계 없이 과거와는 확실히 다른 행보를 보인 면에서 축구계 호평을 받았다.

현재 K리그에서 지도자로 일하는 한 축구인은 “개인적으로 김 위원장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부분은 지도자의 포트폴리오라는 개념을 우리나라에도 확실하게 심어줬다는 점”이라면서 “사실 한국 지도자들 대다수가 지금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해왔다. 자신의 철학이 무엇인지, 어떤 축구를 추구하는지 자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한국 지도자들도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갖춰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라고 말했다.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던 한 축구인도 “인사는 실패할 수 있지만 그 과정만은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과거와 달리 투명하게 이뤄졌고 위원들의 의견도 충분히 반영됐다. 요식행위가 아니었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했던 김 위원장은 이제 협회를 떠난다. 그는 말레이시아축구협회의 강력한 러브콜을 받고 말레이시아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됐다.

한국 축구는 이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당장 김 위원장의 빈 자리를 걱정하는 축구인들이 많다. 김 위원장처럼 행정가로서 확실한 청사진과 결과를 내는 프로세스를 이해하는 축구인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 축구인은 “김 위원장이 있을 때 그 시스템을 더 강하게 구축했어야 하는데 지난 1년간을 보면 오히려 반대로 갔다. 김 위원장의 이탈로 걱정되는 것은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라며 우려했다. 또 다른 축구인도 “사실상 대안이 없다고 본다. 슈틸리케 감독을 선임했던 그 시절로 돌아갈까 걱정이 많이 된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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