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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정하은기자]‘설강화’를 둘러싼 논란이 눈덩이처럼 커지며 향후 방송에 험로가 예상된다.
방송 전부터 역사왜곡 논란이 불거졌던 JTBC 토일드라마 ‘설강화: snowdrop(이하 설강화)’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베일을 벗으면 ‘오해’도 벗겨질 것이란 제작진의 기대와 다른 모양새다. ‘설강화’는 ‘SKY캐슬’ 이후 3년만에 다시 뭉친 유현미 작가와 조현탁 감독의 만남으로 주목받았지만, 그보다 민주화운동을 왜곡했다는 비판에 직면하며 난항을 겪고 있다.
1987년 대선 정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정치적 음모와 첩보전을 다루는 ‘설강화’는 제작단계에서 미완성 시놉시스의 일부가 온라인에 유출되면서 ‘남파간첩이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다’, ‘학생운동을 선도했던 특정 인물을 캐릭터에 반영했다’. ‘안기부를 미화한다’ 등의 의혹이 제기됐다. 이같은 잡음에 지난 16일 제작발표회에서 조 감독은 논란의 내용은 첫방송에서 직접 확인해달라며 “방송 이전부터 (추측성 이야기가) 나오는건 창작자로서 고통이고 압박이다”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작진의 기대와 달리 ‘설강화’는 방송 2회 만에 운동권 학생으로 오인되는 간첩 남자 주인공, 진짜 간첩을 쫓는 사연있는 안기부 묘사 등으로 민주화운동을 왜곡했다는 반발에 직면했다. 여기에 ‘설강화’ 폐지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이틀 만에 30만 명을 돌파했다. 고(故) 박종철 열사 측도 유감을 표했다. 간첩을 쫓는 안기부 팀장의 행동이 희생자로서 등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같은 우려에도 JTBC는 ‘설강화’ 방영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JTBC 측은 “드라마 속 인물과 기관, 설정 등은 모두 가상”이라며 “앞으로의 전개를 지켜봐 달라”고 다시 한번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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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해명은 오히려 논란의 불씨에 기름만 부은 모양새가 됐다. 운동권 학생으로 오인받은 간첩 남자주인공과 안기부 요원을 사연있는 인물로 그린 점 등 역사왜곡 논란의 핵심 사안에 대해서는 명쾌한 해명을 내놓지 안았다.
드라마 광고·협찬사들도 줄줄이 ‘손절’에 나섰다. 3대 제작지원사가 모두 ‘설강화’에 대한 지원을 철회했다. 중소규모 협찬사들도 ‘설강화’ 측에 방송 자막 삭제와 제품 노출 중단을 요청했다. 주인공 정해인이 모델로 있는 치킨 브랜드까지 ‘설강화’의 광고를 중단하고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지난해 3월 역사논란으로 인한 제작지원사들의 손절로 단 2회만 방영하고 폐지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이어졌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엄혹한 시대에 빛을 비추겠다면, 그 주인공은 독재정권의 안기부와 남파간첩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피와 땀, 눈물을 흘렸던 우리 평범한 시민들이 되어야 한다”며 “창작의 자유는 역사의 상처 앞에 겸허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세계인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우려된다”며 “제작진과 방송사의 역사 인식에 대한 각성을 촉구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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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설강화’ 역사왜곡 논란은 법적 판단을 받게 됐다. 청년 시민단체 세계시민선언은 22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설강화’에 대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특히 해당 작품이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전 세계로 유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우려는 가중된다고 비판했다.
과연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이목이 쏠린 가운데, 업계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의도가 없었으니 괜찮다’는 식으로 넘기는 건 주의해야 한다”며 “‘사건과 배경이 실제와 관련 없다’는 자막만으로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만큼 제작진이 좀 더 책임의식을 가져야 했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픽션이라도 아픈 역사를 가진 국가와 민족이란 국민적 고민을 무시할 순 없다는 것이다.
다만 ‘조선구마사’와 같은 사례가 반복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드라마 설정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 창작의 자유를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콘텐츠가 시작단계부터 협찬이 끊기도 방영 중단이 요구되면서 ‘조선구마사’와 같이 방송 폐지로 이어지는 사례가 계속된다면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한 콘텐츠가 더 이상 나오긴 어려워질 것”이라며 창작자가 자기검열에 빠지는 상황을 우려했다.
jayee212@sportsseoul.com
사진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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