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흰색의 야구공은 어른 주먹보다 작다. 지름은 7cm 남짓하다. 말가죽이나 쇠가죽으로 싸여 있어 만져보면 차갑지 않은 느낌이다. 사람의 온기가 금세 통한다. 야구공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손가락으로 움켜쥐면 그 안에 다 들어오지는 않지만, 가죽과 가죽이 만나는 특유의 질감이 전해진다. 무게는 150g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 크지 않고 그리 무겁지 않다고 방심하면 안 된다. 단단하기가 돌멩이 못지않다.
타석에 서는 타자는 마치 중세기 검투사 같다. 머리엔 헬멧을 쓰고 있고 팔꿈치와 다리엔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다. 사타구니에 낭심 보호대를 차기도 한다. 포수는 더하다. 얼굴 전체를 가리는 헬멧에 가슴을 가리는 프로텍터를 착용하고 있다. 헬멧의 아랫부분엔 목보호대가 달려 있기도 하다. 다리도 발등에서 무릎 윗부분까지 덮는 보호대를 차고 있다. 낭심보호대는 필수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구석구석 보호장비를 차게 했을까. 바로 주먹 보다 작은 흰색 야구공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의 실험결과에 따르면, 시속 140㎞ 이상의 속도로 날아오는 야구공을 타자가 맞으면 순간적으로 약 80톤의 압력을 느낀다고 한다. 30㎏에 가까운 바윗덩어리가 1m 상공에서 지면에 떨어지는 충격이고 1초당 76m로 날아가는 고무탄을 10m 미만의 거리에서 맞는 충격과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이런 고무탄을 머리나 가슴에 맞으면 생명을 잃을 수 있다).
타자들은 타석에 서는 건 ‘두려움과의 싸움’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투수가 던지는 강속구는 자신의 머리로 언제든 날아올 수 있다. 아쉽게도 투수의 제구력은 늘 완벽하지 않다. 그리고 투수는 실제로 타자를 이기기 위해 몸쪽공 승부를 즐긴다. 그래서 타자는 언제든 맞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타석에 선다. 모 감독은 제구력이 떨어지지만 150㎞대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를 아끼는 이유에 대해 “타자를 압도하고 위압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 야구장에서 투수가 던진 공에 맞아 숨진 사례가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1920년 레이 채프먼이 빈볼을 맞고 두개골 골절로 사망했다(당시 타자들은 타석에서 헬멧을 쓰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1955년 선린상고 야구부 소속 최운식이 빈볼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1955년 7월 17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최운식은 경기고교와의 경기 중 사구를 맞아 다음날 절명했다. 3회말 공격에서 후두부를 맞고 졸도했는데, 소생해 6회까지 경기를 하다 다시 졸도했다. 경기를 계속한 최운식의 투지는 높이 사나 그의 부질없는 용감성을 만류하지 못한 지도자의 조치는 꾸짖을 수밖에 없다. 첫 졸도 때 의사의 치료를 받게 하고 시합을 못뛰게 말리고 감시했어야 한다. 학교의 승리를 위해 최운식의 재기를 오히려 환영한 것은 한심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팔다리는 생명에 지장이 없지만, 얼굴과 머리 쪽 사구(몸에 맞는 공)는 매우 위험하다. 한국프로야구에서 안면 쪽에 공을 맞아 큰 부상을 당한 선수들은 수두룩하다. 이종범, 김상현, 김선빈(이상 KIA), 심정수(현대), 조성환(롯데), 이종욱(두산), 배영섭(삼성)이 광대뼈 함몰 등의 부상을 당했고 이후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같이 검투사 헬멧을 쓰고 나왔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추신수(텍사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국내프로야구에서 2014시즌부터 타자 머리를 맞히는, 일명 ‘헤드샷’을 던진 투수는 즉각 퇴장조치 명령을 받게 되었다.
사구 뿐 아니라 타구에 맞아 사망한 경우도 있다. 2003년 두산에서 외국인 선수로 뛰었던 마이크 쿨바는 은퇴 후 메이저리그 콜로라도 산하의 마이너리그 더블A 털사 드릴러스의 1루 코치로 취임했는데, 2007년 7월 22일 지명타자 티노 산체스가 친 강한 파울 타구에 머리를 맞고 다음날 뇌출혈로 사망했다. 이 사고 이후 2008년부터 미국프로야구 베이스 코치의 헬멧착용이 의무화됐다. 국내프로야구 베이스코치도 현재 헬멧을 쓰고 있다.
마운드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투수는 자신이 던진 공에 간혹 맞기도 한다. 타자가 방망이를 휘둘러 그대로 돌려보내는 타구에 맞는 것이다. 사망에 이른 투수는 없었지만, 꽤 많은 투수들이 머리와 얼굴에 타구를 맞고 은퇴했다. 머리 뿐 아니라 사타구니 부근도 치명적인 급소다. 투수 윤희상(SK)은 4월 25일 사직 롯데전에서 1회 첫 타자 김문호의 타구에 사타구니를 맞고 그대로 쓰러졌다. 그는 주체할 수 없는 통증에 숨조차 제대로 못 쉬었다. 꼼짝 못하는 상태에서 코치의 유니폼 하의를 꽉 잡고 바들바들 떨던 그의 손이 극심한 통증을 대신 말해주었다.
그래서 삼성 류중일 감독은 포수 뿐 아니라 투수, 그리고 야수들에게 낭심보호대 착용을 권유한다. 류 감독은 사령탑 취임 후에는 하지 않지만, 삼성 코치시절에는 “선수들이 낭심보호대를 차고 있는지 직접 검사를 했다”라고 회상하며 “보호대는 팬티 안쪽에 넣는 것과 포수처럼 입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나는 선수시절 포수용 보호대를 사용했다. 든든하고 좋다. 포수는 당연히 해야 하고 다른 선수들도 해야 한다. 맞아 봐라. 얼마나 아픈지. 거의 죽는다. 한번 맞으면 일주일 내내 아랫배가 얼마나 당기는데... 윤희상의 고통을 나는 안다”라며 진저리를 쳤다.
급소 강타 사고 이후 윤희상은 안전장치를 잊지 않았다. “약간 불편하다”고 하면서도 낭심보호대를 차고 마운드에 복귀했다. 그런데 유사하지만 다른 불운을 또 겪어야 했다. 그는 5월 16일 대전 한화전에서 1회 송광민의 타구에 맞았다. 급소는 피했는데 오른손이 피하지 못했다. 이처럼 타자 뿐 아니라 투수도 강습타구의 두려움을 늘 안고 산다. 게다가 방망이에 맞고 튕겨 나온 타구는 투수가 던진 공보다 더 빠르다고 한다. 이래저래 야구장 내야 그라운드에서 안전지대는 없다.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기사추천
1

![[SS포토] 두산 민병헌, 악 소리 나는 광경!](https://file.sportsseoul.com/news/legacy/wyzmob/timg/l/20140916/l_201409160100078090004766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