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2 다비드의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
다비드의 명화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

[스포츠서울 박현진기자] 말은 예로부터 ‘영물’로 대접을 톡톡히 받아온 동물이다. 역사적으로 이름을 떨친 숱한 영웅들 곁을 지키며 그들을 돕는 조력자로서 구실을 톡톡히 했다. 동서고금을 통해 영웅과 함께한 수많은 명마들의 스토리는 여전히 가슴을 울리는 힘이 있다.

기획2 부케팔로스 금화
부케팔로스 금화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와 그의 애마인 ‘부케팔로스’의 이야기가 소개돼 있다. 마케도니아의 왕자였던 알렉산드로스는 사나워서 그 누구도 태우려 하지 않았던 ‘부케팔로스’를 길들였고 이후 둘은 그리스, 이집트, 인도 북서부에 이르는 원정길을 함께 하며 대제국을 건설한다. 알렉산드로스는 애마가 죽자 그를 추모하며 지금의 파키스탄 북동부에 알렉산드리아 부케팔로스라는 이름의 도시를 건설하기까지 했다. ‘부케팔로스’는 수많은 그림과 조각, 심지어 화폐에까지 등장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한 무제(재위 기원전 141~87)는 장건을 통해 현재 투르크메니스탄의 ‘아할테케’ 품종으로 알려진 서역의 ‘한혈마’에 대한 정보를 듣고 대완을 정벌해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는데 성공한다. ‘한서’(漢書)에는 ‘말이 악와수(渥와水)에서 나와 천마지가(天馬之歌)를 지었다’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무제에게 하늘이 천마를 선물해 그에게 정복전쟁과 권력의 정당성을 주었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물에서 나왔다는 무제의 천마는 중국의 전통 시화에서 끊임없이 다뤄진 소재 가운데 하나다.

기획2 팔준도첩 중 유린청,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팔준도첩 중 유린청.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역성혁명으로 새 왕조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도 백성들이 자신을 타고난 왕이라 믿도록 도와줄 ‘하늘의 뜻’이 필요했다. 그래서 주나라 목왕이 여덟 마리의 준마가 끄는 마차를 타고 곤륜산으로 들어가 불멸의 삶을 살았다는 전설에 착안해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횡운골(橫雲골), 유린청(游麟靑), 추풍오(追風烏), 발전자(發電자), 용등자(龍騰紫), 응상백(凝霜白), 사자황(獅子黃), 현표(玄豹)라는 비범한 이름의 여덟 마리 명마가 등장하게 된다. 오랑캐, 왜구와의 전투에서 화살을 세 발이나 맞은 유린청은 태조가 각별히 아끼던 말로 무덤에 돌구유까지 만들어 넣어주었다. 태조를 도와 영웅이 된 팔준 역시 칭송하는 글과 그림으로 남겨졌다.

19세기 초 프랑스 화가 다비드가 제작한 초상화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에는 명마 ‘마렝고’가 황제를 태우고 강렬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나폴레옹이 북부 이탈리아를 침략할 때 알프스를 넘었던 사실을 기념한 이 작품 덕분에 순종의 아랍말 ‘마렝고’는 덩달아 이름을 떨쳤다. 프랑스에도 군사용으로 적합한 아르드네나 페르슈롱 등 다양한 품종의 토종말이 있는데 아마도 전리품으로 소유했던 잘생긴 아랍말을 과시하고자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실제로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을 때 타고 갔던 것은 말이 아니라 추위에 강한 나귀였다고 하니 영웅에게 ‘애마’의 위용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불세출의 영웅에게는 그에 걸맞은 명마가 있었다. 말의 충성스러움은 ‘견마지성’(犬馬之誠)이라 하여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전한다. 생사를 오가는 전장에서 영웅과 한 몸처럼 싸웠기 때문에 단순히 말과 주인이라기보다 ‘전우’ 또는 ‘조력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동서양 영웅들의 애마가 그 주인과 함께 오래도록 이름을 떨치는 것도 같은 이유다.

j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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