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척동 돔구장
고척동 돔구장. 2013. 9. 11.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국내 프로야구도 ‘돔구장 시대’를 맞게 될 전망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일 서울시청에서 대한야구협회 이병석 회장과 만나 ‘서남권 돔야구장(가칭) 사용 및 아마추어 야구발전을 위한 상호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고척돔구장이 완공되면 목동구장을 아마추어 야구 전용 경기장으로 사용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서울시는 고교와 대학야구 전국대회 준결승과 결승전, 야구대제전, 국제대회 등 주요 대회는 돔구장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선물을 안겼다. 이번 협약이 프로야구의 ‘돔구장 시대’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목동, 아마 전용구장으로 탈바꿈. 넥센은?
목동구장이 아마 전용구장으로 용도가 변경되면서 넥센의 행보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모일 수밖에 없다. 넥센은 2007년 창단 후 줄곧 목동구장을 홈으로 사용해 왔다. 일일대관 형태라 월세보다 못한 처우를 받고 있지만 창단 7년 만인 지난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뒤 올해 한국시리즈 패권을 노리고 있다. 2일까지 홈 55경기를 치렀는데 약 38만 명이 목동구장을 찾았다. 평균 6900여 명이 목동에서 프로야구를 즐겼다는 뜻이다. 서울시와 대한야구협회가 협약식 내용을 공개하자 넥센은 ‘희망’을 먼저 얘기했다. 구단 관계자는 “서울시가 전향적인 자세로 협상에 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돔구장 사용을 놓고 구체적인 협상을 진행하지 않았다는 게 공식적인 입장. 그는 “목동구장을 아마 전용구장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프로구단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현재 목동을 홈으로 쓰고 있는 구단에 형식적으로나마 언질을 주고 진행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일일대관 형식으로 구장을 사용하는 ‘세입자’의 설움인 셈이다.

◇시즌 도중 홈구장 이전? 세입자는 서럽다
‘세입자’의 설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목동구장에서 아마대회가 열리면 넥센은 원정을 다녀야 한다. 이전에도 그래왔다. 문제는 내년 개막과 동시에 홈구장을 옮길 가능성이 제로(0)에 가깝다는 점이다. 고척돔은 내년 8월에나 완공될 전망이다. 구장 시설공사만 끝난다고 개장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경기를 유치하려면 주변도로 정비까지 완료해야 한다. 서울시와 구로구는 돔구장 개장을 위한 주변 도로공사가 내년 2월까지 완공되기 어렵다고 한다. 고척교 확장공사나 안양천로 주차장 건립 등은 큰 문제가 없지만, 지하철 1호선 구일역 확장은 야간에만 공사가 가능해 시간이 필요하다. 돔구장 자체 완공도 2월 안에 어렵다. 시공사측은 “7월까지도 빠듯하다. 안전점검 등 마무리 공사까지 고려하면 8월은 돼야 완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넥센측도 “서울시와 돔구장 사용에 대한 의견합의가 이뤄져 우리가 들어간다고 하면, 개막 때부터 입성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올해처럼 상위팀에서 순위 경쟁 중이라면, 시즌 도중 홈 구장을 옮기는 게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구장 사용 승인 여부를 서울시에서 결정한다는 것. 집주인이 “오늘 당장 방 빼”라고 해도 일일 대관 형태라 거부할 근거가 없다.

대한야구협회-서울시 협약식 사진
이병석 대한야구협회장(왼쪽)과 박원순 서울시장은 2일 서울시청에서 ‘아마추어 야구 발전과 협력을 위한 협약식’을 가졌다. 제공 | 대한야구협회

◇서울시 세수확보 정책, 프로구단 못버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돔구장 사용 주체가 어디냐하는 부분이다. 이는 구단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히어로즈는 타이틀스폰서인 넥센타이어를 포함해 각 기업들의 광고로 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목동구장 광고권을 서울시가 회수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시도 할 말은 있다. 돔구장 건립에 2700여 억원을 쏟아 부었다. 아마야구의 산실이던 동대문 운동장을 철거한 대가였다. 서울시 스스로 자행한 일인데, 이제 와서 돔구장 건설비와 유지비 등을 프로구단으로부터 뽑아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세수 확보’가 목적인 셈이다. 최근에는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이 돔구장 운영권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프로축구 FC서울이 임대해 쓰고 있는 서울월드컵 경기장에 최근 공연을 위한 시설물을 세워 관중석 일부가 가려진 촌극을 연출했다. 한류콘서트 등이 프로경기보다 수익이 좋기 때문에 손해볼 것 없다는 게 서울시 입장이다. 재미있는 점은 국내 굴지의 엔터테이먼트 회사가 돔구장의 공연장으로서의 효용가치를 따져봤는데 ‘낙제’라는 결과가 나왔다. 주변에 호텔 등 일본, 중국 등 관광객 유치를 위한 부대시설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매년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프로구단이 세수 확보 정책의 희생양이 돼야 하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

◇40년간 400달러 내는 부자구단 양키스
미국 메이저리그 최고 인기팀인 뉴욕 양키스는 2009년부터 사용하고 있는 뉴양키스타디움 임대료로 뉴욕시에 40년 간 400달러를 낸다. 새 구장 건립에 소요되는 15억달러의 비용 중 8~11억 달러를 양키스가 내기도 했지만, 뉴욕시는 ‘양키스가 40년간 뉴욕을 떠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고 연간 10달러인 400달러에 사용권을 내줬다. 양키스는 주차장 관리권을 뉴욕시에 넘겨, 세수를 충당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야구 말고도 볼 것 천지인 뉴욕이 그만큼 양키스의 가치를 인정했다는 얘기다. 양키스는 세계에서 자산가치가 가장 높은 구단으로, 야구장 몇 개를 지을 수 있는 여력이 있다. 뉴욕시가 돈 때문에 양키스를 붙잡아 놓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넥센은 국내 프로야구 구단 운영에 혁신을 가져온 팀이다. 구단이 자생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선수단을 육성해 성적도 거머쥐었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역 고가를 철거하지 않고 뉴욕 로어 웨스트 사이드에 위치한 하이라인 파크를 벤치마킹 해 공원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1.6㎞에 달하는 폐철로 위에 공원을 조성해 인근 부동산 개발 붐을 일으킨 뉴욕시의 대표적인 도시환경 정비 사업이었다.
서울시가 돔구장 운영권을 쥐고 있으면, 수원 창원 광주 대구 등 신축구장을 구단에 무상으로 장기임대하겠다고 발표한 각 지자체들이 벤치마킹할 게 불 보듯 뻔한다. 이미 창원과 광주 등은 시민단체를 이용해 구단을 압박하고 있다. 박 시장은 뉴욕시의 야구단 운영방식을 벤치마킹 할 생각은 없는 것일까.

장강훈기자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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