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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이대호가 지난 4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안타를 때려낸 뒤 타구를 바라보고 있다. 제공=롯데자이언츠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만루홈런과 적시타, 전력질주로 만든 내야안타까지. ‘빅보이’ 이대호(39·롯데)는 온몸으로 말했다. “후배들아, 나 좀 벤치에 앉아있게 해 다오.”

빅보이가 공약 이행 의지를 드러냈다. 이대호는 올시즌을 앞두고 맺은 프리에이전트(FA) 계약에 팀 우승 옵션을 추가했다. 자의로 선택한 이 옵션은 롯데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 1억원을 받는 형태다. 돈보다 팀 우승이 더 절실하다는 이대호의 진심이 담긴 계약이다.

시즌 개막 직전 만난 이대호는 “선수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계약 때 우승 옵션을 넣었다. 진정성을 갖고 평생 소원인 팀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며 “올해로 롯데 입단 20주년을 맞는데, 가슴 한켠에 내 몸처럼 롯데 자이언츠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고향팀이고, 내가 성장한 팀이니 당연히 우승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한다. 20년간 한 번도 한국시리즈에 못올라갔으니 은퇴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트로피를 들 수 있다면 여한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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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이대호가 타격하고 있다. 제공=롯데자이언츠

불혹의 4번타자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2019년 16홈런 88타점, 지난해 20홈런 110타점을 했지만 3할 타자 등극에는 실패했다. 대놓고 ‘에이징 커브’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대호는 “나이와 성적이 비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후배들이 실력으로 가치를 증명해 내가 벤치에 앉아 편안하게 야구를 보는 모습도 상상한다. 기꺼이 벤치에 앉아서 후배들을 응원할 준비도 돼 있다”고 말했다. 프로 세계는 실력 우선이 맞다.

이대호가 올시즌 붙박이 4번타자라고 정의내릴 수도 없다. 롯데 허문회 감독은 “당일 컨디션이 좋고, 실력이 좋은 선수를 선발로 기용하는 게 감독의 역할이다. 이대호가 아닌 다른 선수가 더 컨디션이 좋으면 4번타자도 바뀔 수 있다”고 공언했다. 이대호도 “4번을 내려놓고 6, 7번 타순에 들어가면 나도 부담감을 내려놓고 타격에 집중할 수 있다. 빨리 이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후배들과 경쟁에서 봐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개막 두 번째 경기였던 지난 6일 창원 NC전에서 시즌 1호 그랜드슬램을 폭발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낙동강 더비’로 명명된 라이벌전에서 딕슨 마차도가 헤드샷으로 후송돼 어수선한 분위기를 단숨에 바꿔놓은 인상적인 한 방이었다. 그는 5회초 적시타로 팀의 5득점을 모두 책임지더니 동점을 내준 9회초 3유간 깊은 타구를 날린 뒤 전력질주해 내야안타를 만들어내는 근성을 보였다. 이 내야안타는 9회 빅이닝의 서막이 됐고, 디펜딩챔피언과 시즌 첫 대결에서 완승이라는 결과를 끌어 왔다. SSG와 개막전 석패를 완전히 털어내는 의미있는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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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이대호가 적시타를 뽑아내고 있다. 제공=롯데자이언츠

이대호는 메이저리그 시애틀에서 롯데로 돌아온 2017년 “NC에 계속 당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롯데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 뒤 NC와 시즌 개막전에서 홈런을 뽑아냈다. 서전을 승리로 장식한 롯데는 2017년 NC와 상대전적에서 9승 7패로 앞서 이른바 ‘NC 공포증’에서 벗어났다.

4번타자의 존재감은 이런 것이다. 이날 이대호가 보여준 만루홈런과 적시타, 전력질주는 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에 나이는 상관없다는 무언의 시위였다. 더불어 후배들과 경쟁에서 여전히 우위에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활약이기도 했다.

이대호는 7일 오전 박지훈 변호사가 제기한 프로야구선수협회장 재임 시절 배임 의혹에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어깨를 누르던 짐 하나를 벗어내고 우승 사냥에 집중할 또하나의 동력을 얻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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