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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스포츠서울 전인수 기자]
최근 일본과의 경제마찰이 일어나면서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으로 큰 발자취를 남긴 강릉 출신 ‘김동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남국을 떠나온 식물 ‘파초’와 조국을 잃은 자신의 마음을 읊은 저항시 ‘파초’로 유명한 ‘초허 김동명’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리는 것은 물론, 선양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지난 26일 강릉시 사천면 샛돌1길에 있는 김동명문학관 학술세미나실에서 ‘2019 제6회 김동명학술대회’가 열렸다. 김동명학회가 주관하고 강릉시와 가톨릭관동대가 후원한 이번 학술대회에는 김한근 강릉시장과 지역 문인 등 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6명의 대학교수 등 인문학 전문가들이 발제를 한 이날 대회는 김 시인이 일제강점기인 지난 1930년에 쓴 첫 시집 ‘나의 거문고’를 비롯한 전반적인 작품활동과 정치활동 등에 대해 토론했다.
엄창섭 김동명학회 회장(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은 이날 발제를 담은 ‘김동명 문학연구’ 발간사에서 “암울한 일제강점기를 온몸으로 견뎌내며 현존재로서 강직한 삶의 표상인 초허는 시·소설·수필·평론에 걸쳐 다양성과 초장르적으로 그만의 독자적 입지를 구축, 사회정의를 올곧게 수행한 민족의 지성”이라며 “문학에서의 지사적 투혼을 당당히 지켜낸 초허의 자존감은 후대의 심도있는 연구가 지속되야하는 당위성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김한근 강릉시장은 축사를 통해 “민족시인으로서, 교육자이자 정치가로서 초허의 숭고한 정신과 아름다운 시혼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모두의 가슴속에서 생생히 빛나고 있다”며 “강릉이 낳은 한국현대문학의 큰 별인 초허의 올곧은 뜻과 담대한 정신을 이 시대에 올곧게 계승하고, 선생의 삶과 뜻을 널리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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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발제자로 나선 장은영 조선대 교수는 ‘김동명 시에 나타난 국가재건 시기 서울의 표정들’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여섯번째 시집 ‘목격자’를 통해 보면 초허가 지닌 국가재건에 관한 이상은 부패한 국가권력자들이 물러나고 사회적 약자로 길거리에 내몰린 사람들이 삶을 회복하는 것,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계승하는 정의롭고 민주적인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었다”며 “앞으로 초허의 정치평론과 시·산문에 대한 고찰이 함께 이루어는 연구가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정룡 강릉원주대 교수는 ‘김동명 산문의 대화체와 삽입시 서술양식’의 주제발표를 통해 ”산문에서 수필로 작성한 ‘세대의 삽화’, ‘지도자’는 희곡대화체 방식을 채용, 전개하여 문제의식의 전달력을 높였다”며 “절박한 상황에서도 시적 서정성을 전개함으로써 당시의 상황을 감동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분석했다.
심은섭 가톨릭관동대 교수은 ‘초허 시의 동일화 방법의 양상 수용’을 주제로한 연구발표에서 “초허는 세계(조국)와 갈등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가설로 설정해 놓고 그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투사와 동화의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했다”며 “은유로 말미암아 김동명은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이라는 화해의 길을 모색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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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택 강원대 교수는 ‘경계 너머의 지정학, 김동명 시의 경우’란 주제를 통해 “최후의 시집 ‘목격자’ 속에 ‘출발’을 알리는 작품이 있는데, 문학사적으론 시의적이지만 자신의 문학세계는 막을 내린다”며 “이후 정치에 입문하며 붓을 놓은 사실은 문학사적·강릉권 문학장의 입장에서 큰 손실이지만, 시적으로 취한 장소감각은 고향이라는 제도적 장소를 넘는 트랜스로컬 지평과 글로컬리즘의 비전을 유증하였다”고 말했다.
이미림 강릉원주대 교수는 ‘김동명문학관과 로컬리티 연구’란 주제를 통해 “문학관은 순수하게 문학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유지 보존 발굴돼야 하며 로컬리티 문화를 상징하고 표상해야 한다”며 “전국민의 관심도 중요하지만 공감과 공유·교류를 바탕으로 한 지역경제 활성화와 문화콘텐츠 개발을 통한 관광상품화와 산업화도 함께 발전할때 로컬리즘 시대의 지역문학관의 역할과 가치가 충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학술회에서는 심은섭 가톨릭관동대 교수의 사회로 발제자 6명과 이애리 가톨릭관동대 초빙교수가 종합토론자로, 강동우 가톨릭관동대 교수가 좌장으로 나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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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꼽히는 초허 김동명 선생은 가곡으로 널리 알려진 ‘내 마음’ 등을 발표해 한국 현대문학사의 대표적인 전원파 시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는 일제의 폭압에 굴하지 않고 절필을 택한 저항시인이었고, 군사정권에 항거한 종교인이었다. 또 평생 교단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한 교육자였으며, 정치평론가로 또 정치인으로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1900년 2월 4일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노동리 71번지에서 아버지 김제옥과 어머니 신석우 사이에서 외아들로 출생했다. 1908년 함경남도 원산으로, 1913년 다시 함경남도 흥남으로 이주했다.
함경남도 함흥시 영생고등보통학교를 졸업, 함경남도 흥남 등지에서 소학교 교원으로 활동한 뒤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아오야마 전문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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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개벽’지에 ‘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주시면’이라는 샤를 보들레르에게 바치는 시편을 가지고 문단에 등장했다. 1930년 첫 시집 ‘나의 거문고’, 1936년 47편을 묶어 두 번째 시집 ‘파초’를 간행했다. 일제에 항거하여 1942년 술노래를 끝으로 해방될때까지 붓을 꺾고 창씨개명을 거부한 민족시인이었다.
광복 이후에는 1947년 월남하여 이화여자대학교에 교수로 재직하면서 과거의 시풍과 서정성에서 벗어나 현실과 정치, 사회적인 풍자와 관념에 관한 글을 집필했다. 1947년 세 번째 시집 ‘하늘’을 발간, 1955년 시집 ‘진주만’으로 아시아 자유 문학상을 수상했다. 1955년 ‘적과 동지’라는 평론을 주로 ‘동아일보’를 통해 연재, 예리한 정치 평론을 했다. 1960년에는 초대 참의원에 당선돼 5·16 군사정변 전까지 정치활동을 했다.
그 후 1968년 1월 21일, 3년간 지병으로 앓고 있던 고혈압으로 6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유해는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묘소에 안장됐다. 그로부터 42년 후인 2010년 10월 10일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묘소에서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노동리 133-1번지 선영으로 유해가 이장, 봉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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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7월 3일 강릉시 사천면 샛돌 1길 30-2에 김동명문학관이 건립됐다. 김동명 시인의 삶과 글을 통해 문학에 대한 이해와 지평을 넓히기 위한 것이었다. 문학관은 김동명의 대표시 ‘내마음’에 나오는 호수와 돛단배를 형상화해 만들어졌다.
문학관 옆에는 어린시절 초허의 감성을 일깨웠던 시인의 언덕, 출생후 8세까지 살았던 초가집 생가가 있다. 전시실에는 김 시인의 자필원고를 비롯해 시집 초판본과 서재·회중시계·코트 등 유품이 전시돼 있다. 또 추모 백일장·문학콘서트 등 다양한 인문학 관련 행사가 열리는 학술세미나실도 갖추고 있다.
김동명문학관은 오는 11월 2일 오전 10시부터 학술세미나실에서 ‘제4회 김동명 시 전국 영어 번역대회’를 개최한다. 강원도내 초·중·고·대학생들이 당일 현장접수로 참가할 수 있다. 대상엔 상장과 함께 30만원의 상금도 주어진다. 최우수상(3명) 20만원씩, 우수상(7명) 10만원씩, 장려상(14명) 5만원씩 지급된다.
전인수기자 visionis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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