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현역시절의 이만수. <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야구에서 포수는 매우 중요한 포지션이다. 투수와 함께 호흡을 맞춰 경기를 끌어가고 상황에 따라 벤치의 사인을 전달하고 야수들의 위치까지 잡아준다. 9명의 야수 중 유일하게 반대 방향을 보고 경기를 하는 포수는 ‘그라운드의 사령관’으로 불린다. 프로야구 출범 시절부터 지금까지 야구 발전과 함께 포수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프로야구에서는 공수겸장의 대형 포수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삼성 현역 시절 최고의 포수로 주목받았고 미국 메이저리그 지도자 연수를 거쳐 KBO리그 SK의 사령탑까지 맡았던 이만수 전 SK 감독을 통해 포수라는 포지션에 대해 심도있게 파헤쳐본다.<편집자주>

요즘 국산 야구장비가 굉장히 잘 나오지만 예전에는 국산 장비의 품질이 크게 좋지 않았다. 배트나 글러브, 스파이크 등은 주로 일본제품을 사용했다. 좋은 품질의 장비를 쓰기 위해선 사비를 들여서라도 어렵게 외국에서 구입했다. 선수시절 포수 미트를 매일 손질하는 것이 내 하루 일과 중 중요한 부분이었다. 가죽품질이 좋지 않아서 뻣뻣하면 길들이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포수 미트를 물에 담구었다가 바람이 통하는 그늘에 말려서 바셀린을 발라가며 몇 달이고 내 손에 맞도록 손질했다.

그러면 한국보다 역사도 훨씬 오래됐고 연봉도 훨씬 많이 받는 메이저리거들은 장비를 어떻게 대할까? 지금도 기억에 남는 선수가 한 명 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내야수 토니 그래파니노다. 이 선수는 자신의 글러브를 경기 종료 후 손질하지 못하면 다음날 글러브 손질을 위해 일부러 좀 더 일찍 나와 운동장 한 켠에서 열심히 기름칠을 하고 깨끗하게 닦으며 자신의 장비를 애지중지했다. 다른 선수도 마찬가지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연봉을 받아도 야구장비 손질을 참 열심히 한다. 스파이크 같은 경우는 라커룸에 속해 있는 전문가에게 맡기기도 하지만 글러브와 배트는 본인들이 굉장히 아껴가며 손질한다. 어떤 선수는 배트의 탄성에 좋다며 소뼈를 가지고 와서 배트를 닦기도 했다.

이만수

최근 한국프로야구의 스타급 선수들에게는 야구장비를 만드는 회사에서 용품지원을 해주는 경우가 많다. 초창기 프로야구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장비의 품질도 좋아졌고 풍족하게 공급도 해준다. 그래서인지 선수들이 글러브나 스파이크를 아끼고 잘 관리하는 것을 보기 어렵다. 선수들을 눈 여겨보니 매끈하게 길들여진 글러브를 가진 선수가 많지 않았다. 운동선수에게 몸이 재산이다. 팬에게 멋진 플레이를 보여 주는 게 우선이라면 서포터 착용이나 장비관리부터 철저히 해야한다.

포수에게 미트는 가장 중요한 장비다. 예전에는 포수 엄지 보호대라는 게 없었다. 그러나 요즈음 포수에게도 야수들처럼 손가락 보호대가 있다. 자기 엄지에 맞게 보호대를 만들어서 훈련할 때부터 자연스럽게 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꽉 쪼여진 미트를 엄지 보호대에 맞게 줄을 풀어 맞추어 제 2의 손처럼 익숙해질 때 까지 계속 두드려줘야 한다. 장비를 자기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아끼는 선수일수록 경기력이 좋을 확률이 높다.

비싼 브랜드의 장비나 화려한 외모보다 친구처럼 가까이 두고 내내 아껴주는 장비로 멋진 경기력를 보여주는 선수가 훨씬 팬에게 오래 기억되고 멋지지 않을까.

이만수 전 SK감독·헐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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