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LA다저스 류현진이 18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의 캐멀백 랜치에서 열린 스프링캠프에서 훈련후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캐치볼을 하는데 한뼘(약 15㎝) 정도 휘는 것 같더라고요. 던질 수 있겠다 싶었죠.”

LA 다저스 류현진(31)이 설명한 투심 패스트볼을 신무기로 선택한 이유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와 캐치볼을 하면서 새 구종을 연구하다 무심코 던진 투심 패스트볼이 휘어지는 것을 봤다. 큰 폭이 아니라 겨우 5~6인치(약 13~15㎝)에 불과했는데 이 차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배트 지름을 7㎝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변화폭 15㎝가 결코 작은 움직임이 아니다.

바야흐로 ‘무빙 패스트볼’ 시대다. 9일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삼진 12개를 솎아내며 7이닝 무실점으로 역투한 LA 에인절스 오타니 쇼헤이도 스플리터 구속이 145㎞를 상회한다. 160㎞짜리 포심 패스트볼에 고속 스플리터와 커브 등을 장착해 많은 이들의 우려를 씻고 승승장구 중이다. 오타니가 던지는 스플리터는 투심보다는 그립을 조금 더 넓게 잡고 맞혀잡는다는 기분으로 던진다. 구속도 빠르고 실밥에 걸리는 손가락의 면적이 좁다보니 크게 떨어져 헛스윙을 유도한다. 스플리터로 불리지만 140㎞대 중후반까지 측정되니 빅리그에서도 무빙 패스트볼로 인식한다.

[포토] 한화 송은범, 여기까진가보오...
한화 이글스 송은범이 3일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진행된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11-10으로 앞선 5회 2사 1,2루 상황에서 교체되어 마운드에서 내려가고있다.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KBO리그도 움직이는 속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타고투저 현상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면 투수들이 버틸 기반이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이다. 지난 8일 수원 KT전에서 2이닝을 완벽히 틀어막은 한화 송은범이 변신의 선봉에 섰다. 그는 깨끗한 포심을 버리고 꿈틀대는 투심을 장착해 전혀 다른 투수로 변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삼진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스로는 “투심을 던진다고 던지는데 휘거나 떨어지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타자의 방망이에 맞은 투심은 내야 땅볼이 되고 효율적인 투구수로 아웃카운트를 늘리니 던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 포크볼에 비해 팔꿈치에 걸리는 부담도 적고 적은 투구수로 이닝을 막을 수 있으니 체력부담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SK 메릴 켈리는 지난해부터 컷패스트볼(커터)을 구사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까다로운 투수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KIA 최형우는 “켈리가 던지는 커터는 구속도 빠른데다 예리하게 휘기 때문에 칠 수 없는 공 같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자연 커터’ 탓에 제구 불안에 시달리던 KT 금민철도 “10년째 안되는 제구를 굳이 잡으려하지 말고 자신있게 던져 맞혀잡으라”는 KT 김진욱 감독의 조언에 전혀 다른 투수로 변신했다. 투구는 회전이 아닌 ‘전진운동’이라는 인식을 가진 것도 달라진 요인이 됐지만 컷패스트볼을 핀포인트 제구하려는 생각을 버린 게 안정을 가져왔다.

[포토]친정상대 등판 금민철
kt 선발투수 금민철이 4월 3일 2018KBO리그 넥센 히어로즈와 kt위즈의 시즌 첫경기 역투를 펼치고 있다.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김진욱 감독은 “KBO리그 투수들이 투심 장착에 실패한 이유는 삼진을 잡으려 했기 때문이다. 투심은 맞혀잡는 구종”이라고 강조했다. 류현진이 던진 투심처럼 15㎝ 가량 휘면 방망이 중심에 맞아야 할 공이 손잡이 쪽과 닿는다. 떨어지는 폭까지 고려하면 떠야 할 타구가 톱 스핀이 걸린 내야 땅볼이 된다. 송은범과 금민철이 삼진 대신 범타로 이닝을 먹어치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류현진도 좌타자 몸쪽에 투심을 던지는 이유로 “파울을 유도해 볼 카운트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무빙 패스트볼은 투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도구다. 인식만 바꾸면 다른 야구가 보이기 마련이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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