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③]'도올 종손자' 원썬, "죽을 때까지 대중적 성공 못해도 오직 힙합!"

[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지난 11일 오후 6시, 서울 서교동 힙합 클럽 ‘인투딥’에서 요즘 화제의 래퍼인 원썬을 만나기로 했다. 원썬은 약속 30여분전 쯤 ‘5~10분쯤 늦을 것 같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원래 만나기로 한 시각, 클럽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6시 5분께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클럽 앞에 나타났다. 화려하고 값비싼 기종과는 거리가 먼 종류의 ‘생활 밀착형’ 오토바이였다. 헬멧을 벗으며 원썬은 “아침에 비가 오는 바람에 낮에 배달이 밀려서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원썬이 비밀번호를 누르자 굳게 닫힌 철문이 열렸다. 그의 삶의 터전인 클럽 내부가 곧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와 올해 화제의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이하 쇼미)에서 원썬은 단연코 최고의 ‘신 스틸러’였다. 워낙 광속 탈락해 출연 분량이 많진 않았지만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패스하면 올패스에요.”, “늙은이는 안된다는 건가?”,“렛 미 두잇 어게인” 등 주옥같은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20여년 간 힙합계에 몸담아온 1세대 래퍼이지만 지난해 그는 쇼미5 출연 직후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조롱이 호감으로, 비웃음이 박수갈채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최근 종영한 쇼미6의 최대 수혜자 중 한명으로 꼽힌다. 이미 CF 3편을 촬영했고, 쇼미 참가자 중 유일하게 메신저 프로그램 이모티콘이 출시됐다. 최근엔 tvN 코미디 프로그램 ‘SNL’에도 출연하며 주가를 한창 높이는 중이다.

그리고 그는 여러 측면에서 ‘반전 매력’을 갖고 있다. 낮에는 퀵서비스 기사, 밤에는 자신의 클럽 운영 및 바텐더. 래퍼까지 ‘쓰리잡’을 뛰는 그는 요즘 얻은 ‘우스운 이미지’와 달리 도올 김용옥 선생의 종손자인 동시에 한국을 대표하는 인문학자를 대거 배출한 학자 집안의 ‘별종’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나눠본 그는 웃기긴 했지만 우스운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20년간 음악적으로 조명을 받은 적은 거의 없지만 음악, 힙합에 대한 태도는 그 누구보다 진지했다.

-집안에 유명한 학자가 많다.

예전 소속사가 있을 땐 자꾸 그 부분으로 이슈를 만들려 했는데 내가 계속 막으려 했다. 사실 꺼려지고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굳이 얘기하자면 학자가 많은 집안이긴 하다. 박사만 11명이다. 친할아버지는 고려대 화공과 교수셨던 김용준 박사다. 종교와 과학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하셨던 분으로 유명하다. 작은 할아버지는 도올 김용옥 교수이고, 고모할머니가 김숙희 전 교육부 장관이다.

-아버지도 대학교 교수(숭실대 사학과 김인중 교수)다. 그런데 원썬은 부모님께 딱히 경제적 도움을 받진 않는 것 같다.

중학교 때 신문배달부터 시작해 안해본 일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힙합 CD 등을 사기 위해서는 아르바이트가 필요했다. 우리집이 나를 경제적으로 지원해줄 만큼 딱히 잘 살지 않는다. 어머니는 가정주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하실 때 180만원으로 시작하셨다더라. 대출을 받아가며 힘겹게 집을 옮겨다니셨고, 환갑이 다돼서야 겨우겨우 아파트 한채를 장만하셨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는데 인문학 교수들은 돈이 별로 없다.(웃음)

-형제 관계는 어떻게 되나.

남자 친동생이 있다. 의사다.

-집안에서는 거의 ‘이단아’다. 콤플렉스는 없나.

집안의 ‘꼴통 끼’는 내가 다 물려받았다.(웃음) 콤플렉스는 없다. 워낙 내가 긍정적이어서. 동생네 부부가 낳은 조카가 2살인데 너무 예쁘다. 오늘 낮에도 용달 일을 하다 잠깐 짬을 내 조카를 보고 왔다.

-래퍼가 된 뒤 작은 할아버지인 도올 김용옥 선생이 해준 말이 있나.

만났어야 말을 나눌텐데.(웃음) 자주 뵙진 못한다. 작은할아버지는 집필을 하느라 하루종일 나가질 않으신다. 아마 내가 음악하는 것도 나중에 아셨을 거다.

-집안에 내로라하는 인문학자가 많다. 랩 가사를 쓸 때 그런 유전적 영향을 느끼는 적은 없나.

고등학교 때 이과였고, 공대(숭실대 기계공학과)를 나왔지만 나는 전형적인 문과생인 것 같다. 글을 쓰는데 특별히 떨어진다고 느끼진 않고, 생각도 나름대로 잘 전달하는 편이다.

강단에 설 땐 편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2000년대 국악과 힙합을 접목해 주목받을 때 서울대, 연대, 고대, 성균관대, 숙대에서 교양 강의 특강을 몇번 했고, 지난해 1학기엔 세종대 실용음악과 전공 강사를 했다. 앞으로도 흑인 음악과 관련된 강연 등의 일이 있으면 할 생각이다.

-원썬의 지금 이미지만 생각하는 사람에겐 의외로 여겨질 수 있지만 2개 외국어(영어, 프랑스어)가 가능하다.

예전에 영어, 프랑스어 학원 강사 생활도 잠깐 했다. 93년에 프랑스에서 1년 정도 산 적이 있다. 아버지가 프랑스 근현대사를 전공하셨는데 학자를 후원하는 기업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으셔서 그때 가족이 모두 갔었다. 프랑스를 다녀온지 오래 됐는데 다행히 언어를 잊지 않았다. 지금도 프랑스 친구들과 꾸준히 교류한다. 프랑스 뮤지션들과 소통할 때도 있다. 고급 프랑스어를 구사하는게 아니라 현지에 1년산 사람이 구사하는 정도의 프랑스어를 한다.

미국 문화인 힙합을 하고, 한국에 사는 외국인, 교포 친구들과 소통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 말문이 트이더라. 잘하는 영어는 아니고 생활 영어가 가능한 수준이다.

-뉴욕 양키스 모자와 흰 티셔츠가 트레이드 마크처럼 굳었다.

모자는 이것 밖에 없어서 쓰다보니 그렇게 됐다.(웃음) 사실 자주 쓰는 모자가 두개였다. 여름엔 LA다저스, 겨울엔 뉴욕 양키스였는데 이젠 LA를 못 쓰게 됐다. 모자를 파는 후배가 있다. 그가 가끔 여러 모자를 선물로 주는데 이젠 쓸 수 없다. 지금은 다른 걸 쓰면 내가 아닌 것처럼 돼버렸다. 평생 뉴욕 모자만 써야 할지도 모른다.(웃음) 흰색 티셔츠를 고집하는 건 나름대로 패션 철학이다. 어릴 때부터 흰색 티셔츠만 입어도 멋있어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래퍼 원썬.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최근 원썬이 활약할 당시 1세대 힙합 뮤지션들이 과소평가되는 흐름이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힙합 역사가 짧다. 방송이나 미디어에서 힙합이 제대로 다뤄진 적도 없다. 시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미국에선 80년대 NWA나 런DMC의 랩을 듣고 ‘구리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 그때 대중음악은 드 당시를 반영한 거고 거기에 대한 존경심이 반영돼야 한다. 듀스의 ‘나를 돌아봐’를 지금 듣고 ‘구리다’고 하면 안된다는 의미다. 그건 시간의 중요성, ‘짬’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태도다.

쇼미6에선 디기리가 첫방송에서 부정적인 캐릭터로 보였다가 이내 명예회복하는 과정을 거쳤다. 꾸준히 이 바닥(힙합신)에 있던 사람, 계속 발 붙이고 있었던 사람들은 절대 ‘한방’에 갈 수 없다. 보내고 싶어도 절대 안간다. 그들이 잡고 있는 밧줄의 두께가 있다.

-2000년 공개한 ‘꼬마 달건이’가 데뷔곡이자 최고 히트곡이다.

내가 어떤 ‘자격’을 갖추지 못했을 때 운좋게 나온 곡이다. 물론 그 당시 낼 수 있는 최대의 소리를 담았다. 그런데 트랜드는 뮤지션이 만드는 게 아니다. 뮤지션은 하고 싶은 것, 잘할 수 있는것, 좋은 소리를 내는 데만 집중해야 한다. 그중 대중이 선택하는 게 트랜드인데, 얻어걸리는 거다. 히트하기 위해 고른 노래는 절대 히트할 수 없다.

-원썬이 추구하는 ‘좋은 소리’는.

지난달 공개한 새 싱글 ‘삐오니에 뒤 게임’(Pionnier Du Game)은 내 생각에 멋있는 소리와 뮤직비디오가 만들어졌다. 그런 바이브를 가진 음악, 콘텐츠를 20대부터 꿈꿨는데 지금 마흔살이 돼서야 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됐다.

‘짬’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나처럼, 멋있게 랩할 줄 모르고 탤런트더 없는 사람도 그동안 쌓은 것들로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같다. 적어도 이번 노래는 안 쪽팔린 정도의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짬에서 나온 바이브의 결과물이다.

-원썬에게 ‘힙합’이란.

힙합 음악을 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그런 과정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힙합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 장르인데, 우연찮게 그렇게 됐다. 생각해 보니 힙합은 참 나쁜 자식이다. 나를 20년간 이렇게 살게 만들었으니.(웃음)

-한국 나이 마흔이다. 힙합 음악을 20년 동안 했지만 음악적으로 인정받은 적은 없다. 그에 따른 불안감은.

아직 전체 인생에서 절반도 살지 않았다. 나는 건강하게 오래오래 잘 살 거 같다. 그리고 나는 절대 안 굶어죽는다.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돈벌이 정도는 언제든 무엇으로도 할 수 있다. 요즘 후배들에게 가끔 하는 말이 있다. “생각만 안하면 된다. 생각하면 현실화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움직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안해보고 위축되면 안된다.” 나에게 “어떻게 해요?”라고 묻는 이들에겐 “해보고 나서 다시 물어라. 그럼 ‘어떻게 해요?’는 결코 네 질문이 될 수 없다”고 말해준다.

20년간 대중적 인기를 얻은 적은 없지만 특별히 거기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모든 건 과정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내 음악으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힙합 음악을 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이다. 이렇게 모인 ‘짬’들이 뭐 하나는 만들어 주지 않겠나.

monami153@sportsseoul.com

<래퍼 원썬이 자신이 운영하는 서울 서교동 힙합클럽 ‘인투딥’(IN2DEEP)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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