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예고된 이별었다. 가요계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산가족이다. 개개인의 서로를 향한 애정과 무관하게 반으로 뚝 잘려야 하는 생이별을 경험했다. 지난 3월, 제로베이스원 콘서트의 마지막 장면에 쏟아진 멤버들의 눈물은 서사의 끝을 알리는 마침표와도 같았다.

그리고 약 2개월이 흘러, 다섯 멤버들은 제로베이스원으로 다시 무대 위에 선다. 상처 위에 돋아난 새살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그 고통의 시간은 이들에게 청춘을 넘어 성숙이라는 묵직한 옷을 입혔다.

미니 6집 ‘어센드-(Ascend-)’ 발매를 앞두고 최근 서울 역삼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다섯 멤버(성한빈, 석매튜, 박건욱, 김지웅, 김태래)의 공기는 이전과 사뭇 달랐다. 화려한 아이돌의 생기보다는, 거친 폭풍우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살아남은 자들의 결연함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팀의 변화에 대한 질문부터 나올 수밖에 없었다. 리더 성한빈은 굳건하게 그리고 거침없이 답했다. 성한빈은 “팀의 변화가 있었다 보니 마음가짐이 완전히 새롭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면 우리 안의 독기와 열정이다. 인원은 줄었지만, 오히려 우리끼리의 시너지는 더 끈끈해졌다”고 힘주어 말했다.

헤어질 걸 알면서도 달려야 했던 시간이 있었다. 계약 연장을 두고 오가던 피로한 조율 속에서도 이들은 월드투어를 완주했다. 마지막 콘서트의 닫히는 문 너머로 사라지던 순간을 회상할 때, 석매튜의 눈가에는 순간적으로 아련함이 스쳤다.

석매튜는 “결과를 알고 있었기에 마지막 콘서트만큼은 우리 색깔을 가장 예쁘게 보여주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무대를 끝내고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순간, 그제야 진짜 이별이 실감 나 눈물이 쏟아졌다”며 “비록 몸은 떨어졌지만, 여전히 단톡방에서 서로를 뜨겁게 응원하고 있다”고 덤덤히 전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은 20대 청춘을 조금 더 일찍 어른으로 만들었다. 9인조에서 5인조로 변모하며 생겨난 ‘난 자리’의 허전함을, 결핍이 아닌 각자의 밀도를 높이는 계기로 삼았다. 영리한 말장난이나 포장이 아닌 온전한 진심이 엿보였다. 오디션이라는 생존 경쟁부터 시한부 그룹의 이별까지, 지난 3년간 겪은 가요계의 산전수전이 만들어낸 묵직한 굳은살처럼 보였다.

박건욱은 “네 명이 다른 팀으로 가게 되어 허전하지 않을까 걱정하셨지만, 생각보다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라며 “개개인의 매력과 보컬, 퍼포먼스 역량을 키우기 위해 연습실에서 밤을 새웠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고 강조했다. 김지웅 역시 “이제는 멤버들의 눈빛만 봐도 어떤 감정인지 다 똑같이 느낀다”며 5인 체제의 결속력을 자신했다.

이들의 달라진 마음가짐과 단단해진 내공은 이번 신곡에 고스란히 투영됐다. 9명의 화려함을 덜어낸 자리에 미니멀리즘과 세련된 감각을 채워 넣었다. 타이틀곡 ‘TOP 5’는 2000년대 댄스 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다섯 멤버의 오감과 성숙한 매력을 꽉 담아냈다.

특히 멤버 박건욱이 직접 작곡한 수록곡 ‘커스터마이즈(Customize)’는 5인조 제로베이스원의 현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곡이다. 박건욱은 “멤버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맞춤 정장을 입혀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곡을 썼다. 멤버들의 능력치가 워낙 뛰어나서 난이도를 고려하지 않고 상상하는 대로 멜로디를 짰는데, 멤버들이 완벽하게 그 이상의 결과물을 출력해 줬다”며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이제는 가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헤어진 동료들이 새롭게 결성한 앤더블과 고작 일주일 차이로 컴백 대전을 벌여야 한다. 당사자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대중과 팬덤은 두 그룹을 링 위에 올리고 비교와 우열의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다. 원치 않는 동족상잔의 비극 앞에서도 다섯 청춘은 의연하게 버티고 있었다.

성한빈은 “9인 체제일 때도 우리끼리 경쟁하지 말고 ‘나 자신과 싸워서 이기자’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면서 “사실 컴백 시기가 겹칠 줄은 몰랐다. 하지만 K팝 신에서 우리들의 이야기가 함께 거론되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시너지를 내는 좋은 바이럴이 될 거라 믿는다. 각자 준비한 멋진 무대를 보여주면 된다”고 어른스러운 답변을 내놓았다.

부담감은 어쩔 수 없이 자욱한 해무처럼 무겁게 내려앉아 있겠지만, 새롭게 출발하는 제로베이스원은 이겨낼 준비를 마쳤다. 거칠었던 종착지를 지나 다시 새로운 연속성의 선 위에 선 제로베이스원의 도약은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지난 콘서트가 끝나고 무대가 암전될 때 화면의 숫자가 0에서 1로 바뀌었어요. 이전까지의 여정이 무(0)에서 유(1)를 만드는 과정이었다면, 이번 ‘어센드’ 앨범은 1이라는 단단한 기반 위에서 시작하는 도약입니다. 1에 도착한 제로베이스원이 앞으로 써 내려갈 진짜 스토리를 지켜봐 주세요.”(박건욱)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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