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부터 입소문 난 대작…초고속 흥행 질주
회전문 욕구 불러일으키는 연출·넘버·안무·배우들의 매력
마지막 무대까지 단 2주…5월10일까지 샤롯데씨어터 공연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은 매의 날개는 달빛을 품은 아름다움에 힘을 잃고 사라진다. 어둠 속 그림자 너머의 찬란한 빛은 두려움을 거둬낸다. 하지만 이는 그저 한낱 꿈일 뿐. 내 것이 아닌 것을 탐낸 자에게는 천벌이 따르리니, 미몽(迷夢)에 갇힌 자의 가슴에는 불화살이 꽂힌다.
2025년 초연부터 대작(大作)의 기운을 뿜어낸 뮤지컬 ‘몽유도원’이 약 한 달 만에 리마인드 공연으로 돌아왔다. 작품의 위대한 여정은 한국 창작 뮤지컬의 새 이정표를 제시했다.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서 그런지, 이미 여러 시즌을 거듭한 공연처럼 느껴진다.
배경 설명 없이도 그대로 스며드는 것이 바로 ‘몽유도원’이다. 강약중강약으로 밀고 당기며 관객을 홀리는 것이 ‘몽유도원’만의 힘이다. 달이 비추는 강물 따라 흘러가다 보면, 땅과 땅이 이어지듯 어느덧 도원에 도달할 것이다.
작품의 미장센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모든 시선과 감정을 담았다. 황홀함에 사로잡혔던 마음은 차가운 숨결에 광기로 변한다. 잔잔한 물결은 거칠게 몰아치는 폭풍우에 부서져도, 결국 다다른 곳은 사랑하는 이가 있는 곳이다.
초연 당시 ‘어이해 이러십니까’가 대표 넘버로 떠오르며 대부분의 영상 콘텐츠 플랫폼을 점령했다. 하지만 ‘몽유도원’은 단 한 곡도 놓칠 수 없는 주옥같은 넘버들의 매력에 매료된다. 한국의 전통 가락과 서양 음악의 크로스오버를 넘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복합체를 모두 녹여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심리전으로 ‘미친 연출’로 통하는 ‘흑과 백’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게 다일까? ‘몽유도원’은 보면 볼수록 숨 죽이게 하는 매혹적인 감각을 깨운다.

◇ 새로운 장르를 추가한 느낌적 느낌…이것이 바로 ‘볼수록 매력일세!’
시작부터 리마인드 공연의 확장적 면모를 드러낸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샤롯데씨어터로 무대를 옮겨 시야가 좁혀진 대신 가까워져 몰입도는 더욱 높아졌다. 1막 장면 전환마다 박 소리로 반전의 공기를 불어 넣는다.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연출을 비롯해 대사·가사와 배우들의 움직임, 장치적인 요소들까지 ‘몽유도원’만의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첫 등장신부터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평생 왕위의 위협을 받아온 ‘여경’이 사경을 헤매며 고통스러워하는 순간을 단번에 지우는 ‘아랑’의 등장은 더욱 찬란한 희망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닿고 싶어도 닿을 수 없는 잔인한 도원을 그려 ‘여경’의 광기를 가여운 손길로 어루만지게 한다.
‘여경’과 ‘도미’의 숨 막히는 대국신은 흰 돌(왕)과 흑돌(도미)의 수 싸움으로 치러진다. 계략의 덫을 놓은 이와 그 늪에 빠지는 두 세계이지만, 유일하게 대등한 위치에 서는 첫 번째 순간이다. 거칠어지는 삭고와 심장을 찢는 듯한 꽹과리와 태평소, 세 운명을 가르는 징 등이 뒤섞인다. 무협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무술과 상모돌리기를 현대화한 아크로바틱 등의 장르가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린다.
이 밖에도 강물로 변한 바닥에 비친 ‘아랑’의 얼굴, 관객석 맨 뒤에서부터 무대 위까지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 ‘여경’의 가슴에 꽂히는 화살 등은 숨통을 조이는 통증을 유발한다. 대신 층별, 구역별, 좌석별 구분 없이 쫄깃한 긴장감과 애절한 울림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 강물 흐르듯 스며드는 감동…시선의 움직임에 다른 여운으로 감싸
‘여경’ ‘아랑’ ‘도미’ ‘비아’ ‘향실’ 등 각각의 시선에서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몽유도원’이 회전문(여러 번 관람)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각각의 심리를 파고든다면 매회 다른 해석으로 여운을 얻을 수 있다.
작품에서는 해와 달이 교차한다. 과거 왕과 그의 여인을 의미하는 존재로, 둘은 공존한다. 하지만 하늘이 허락하지 않은 인연이라면 헛된 꿈으로 물거품이 된다. 한 사람은 사랑에 눈이 멀어 포악한 피의 군주가 되고, 또 한 사람은 아름다움을 재앙으로 여겨 이를 망가뜨린다. 두 인물의 끝이 달랐기에, 그 슬픔마저도 다른 결말을 맺는다.
넘버 ‘아, 달님이시여’는 ‘도미’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두 여인의 간절한 염원을 노래한다. 목지국의 수장이자 한 여인의 아비인 ‘도미’의 안위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구슬프다. ‘향실’의 ‘꿈에서 깨어나소서’에서는 어릴 적부터의 보호자이자 하늘의 뜻을 받드는 충신의 진심이 교차해 눈물샘을 자극한다.
목지국 주민들이 부르는 ‘아리랑’에는 한(恨)과 인내, 재회의 의미를 담아 작품의 서사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 숨죽이고 빠져든 황홀한 기억…미몽 또한 아름다웠으니
목지국은 억새로 둘러싸여 험한 세상으로 보호(울타리)받는다. ‘아랑’과 ‘도미’가 재회한 땅에도 억새가 존재한다. ‘아랑’의 아름다움을 거둬간 억새지만, 강인한 이끌림으로 사랑의 생명력에 다시 불을 붙인다. 목지국의 또 하나의 상징 복사꽃은 변치 않을 사랑과 희망, 행복(행운)의 기운으로 감싸 재회의 불씨가 된다.
이들의 수호신처럼 등장하는 원앙은 수컷 원(鴛)과 암컷 앙(鴦)의 진정한 의미를 제시한다. 예로부터 암수 한 쌍이 함께 다니는 모습에서 ‘금실이 좋은 부부’를 상징한다. ‘도미’와 ‘아랑’의 혼례부터 다시 도원에서 만난 그날까지 원앙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비아’가 기도하는 부채를 장식한 꿩의 화려한 깃털은 상서롭고 귀한 것으로, 위기 속에서도 하늘이 도울 것이라는 믿음으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다. 이 숨결은 바람을 타고 ‘도미’의 피리에 소리를 불러내어, 마침내 악몽을 거두고 아름다운 꿈을 실현한다.
‘아랑’이 등장할 때마다 달은 밝고 영롱한 빛을 발현해 강물은 별처럼 빛난다. 하지만 ‘여경’을 만난 후 핏빛으로 차갑게 식는다. 강물은 ‘도미’와 ‘아랑’을 나룻배에 태워, 이들의 사랑이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을 곳으로 인도한다. 비바람과 거센 물살이 도와, 마침내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때에서야 다시 잔잔해진 강물 위로 달이 빛난다. 목지국 주민들과 재회한 이들의 새 아침을 여는 붉은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떠오른다.

천년을 품은 아름답고 찬란했던 한낱의 꿈 ‘몽유도원’은 초연에 이어 ‘여경(개로왕)’ 역 민우혁·김주택, ‘아랑’ 역 유리아·하윤주, ‘도미’ 역 이충주·김성식, ‘향실’ 역 서영주·전재홍, ‘비아’ 역 홍륜희·정은혜, ‘해수’ 역 김진수, ‘진림’ 역 유성재 등이 같은 역할의 다른 매력을 연출한다.
황홀한 꿈으로 시작된 엇갈린 운명을 그린 ‘몽유도원’은 5월10일까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된다. 단 2주만 허락된 시간, 서두르지 않으면 미국 브로드웨이로 넘어가서 도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지만, 물이 절정으로 오른 신들린 배우들의 무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이다.

gioi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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