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귀신이 되어서 끝까지 쫓아 가겠다”...극단적 선택 ‘시도’

“ 대기업 카르텔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한화 포레나 대표님 들어주세요

“ 잘못 된 시정 바로 잡아 달라”...피 맺힌 절규

“아빠,엄마 못난 딸 먼저 갑니다...애들아 엄마 먼저 간다”...다행히 목숨 건져

[스포츠서울 l 전주=고봉석 기자] 지난 10일 전주시청 노송광장에는 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전주시청 앞 노송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은 조용하지 않았다.

비를 맞으며 서 있는 사람들,젖은 종이를 움켜쥔 채 고개를 떨군 사람들,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부모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아이들까지 그곳에는 분노보다 더 깊은 감정이 있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버텨온 사람들의 무너짐,그리고 끝내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었다.

▲ “미안합니다”… 유서의 첫 문장

그가 남긴 글의 시작은 길지 않았다.“미안합니다.” 짧은 한 문장이었지만,그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무게가 담겨 있었다. 누구에게 미안했을까.

함께 싸워온 사람들,자신을 믿고 따라준 수분양자들,가족, 그리고 끝까지 버티지 못한 스스로에게그는 유서에서 반복해서 “버티려고 했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그 말 뒤에는 항상 같은 문장이 따라왔다.“더는 버틸 수 없었습니다.”

▲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웠던 시간

전주 포레나 상가 분양 문제는 단순한 부동산 분쟁이 아니었다.누군가에게는 평생 모은 돈이었고,누군가에게는

노후를 지탱할 마지막 희망이었으며,누군가에게는 가족의 삶 전체가 걸린 선택이었다.

이 경 포레나상가분양대책위 위원장은 그 모든 사람들의 앞에 서 있었다.

유서에는 이런 문장이 남아 있었다.

“제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무너지면 다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을 ‘개인’으로 보지 않았다. 늘 ‘대표’였고,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살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멈추고 싶었습니다”유서의 중간에는 조금 더 솔직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보다,이 상황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

그 문장은 단순한 절망이 아니었다.그것은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에 대한 피로,계속되는 싸움에 대한 소진,

그리고 아무도 대신 들어주지 않는 책임에 대한 고백이었다.

“하루하루가 너무 길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싸우려 했다. 그러나 시간은 그를 먼저 무너뜨렸다.

유서를 쓰던 밤 그는 유서를 한 번에 쓰지 못했다고 했다. 문장을 쓰다가 멈추고,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이게 맞는 건지 계속 고민했습니다.”

유서에는 단정적인 결심보다 흔들림이 더 많이 남아 있었다.

“혹시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없습니다.”

그 문장은 살고 싶다는 마음과 더는 버틸 수 없다는 현실 사이에서 끝내 갈라진 사람의 기록이었다.

▲ 병원에서 깨어난 뒤 그는 살아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회복’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눈을 떴을 때,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고통이 아니라 “미안함”이었다고 했다. “왜 살아났을까”가 아니라 “다시 버텨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었다.

몸은 회복을 시작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날에 머물러 있었다.

▲지금도 끝나지 않은 후유증

퇴원은 했지만 그는 아직 그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기억이 끊긴 시간들이 있다.어떤 장면은 흐릿하고, 어떤 순간은 사라져 있다.

밤이 되면 생각이 몰려온다. 잠은 쉽게 오지 않고,작은 소리에도 몸이 긴장한다.

“다시 그때처럼 될까 봐… 그게 제일 무섭습니다.”

그의 말은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 있었다.

▲ 비를 맞으며 서 있던 사람들

그가 병원에 있을 때,사람들은 거리로 나왔다. 비를 맞으며 두 시간 넘게 자리를 지켰다.

누군가는 울었고,누군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그날의 집회는 외침이 아니라 버티고 있다는 증거였다.그의 유서에는 이들을 향한 문장이 있었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 행정, 그리고 남겨진 질문

이 위원장은 “전주시는 법과 절차에 따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으나 소극행정을 뛰어 넘어 시민을 위한 적극행정의 시정을 펼쳐야 한다” 며 “ 전주시는 단순히 절차 준수에 그치지 말고 갈등 해결을 위한 실무적인 대안이 필요 하다”고 강조했다.

유서의 마지막에는 이런 문장이 남아 있었다.

“누가 옳은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감당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많이 무거웠습니다” 유서에는 이 고통이 지치고 힘들다는것을 직접 표현했다.

▲ 남겨진 사람들

그는 살아 돌아왔다. 하지만 그가 남긴 글은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 남아 있다.

그 문장들은 단순한 개인의 기록이 아니다.그것은 한 공동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언제 누군가를 놓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 마지막 문장

그의 유서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부디… 이 일은 끝나기를 바랍니다.”

비는 그날도 내렸고,사람들은 그날도 버텼다.그리고 지금도,그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 경 대책위 위원장은 지난 14일 익산의 한 커피숍에서 인터뷰 내내 힘든 모습으로 진지하게 답하며 핏기 없는 얼굴로 힘겹게 버텼다.

막내딸은 이 위원장이 지난 4일 오후 4시경 전화를 해도 전원이 꺼져 있어 불길한 생각에 112로 신고해 전북 김제시 백구면 백구리에서 발견했다.막내딸은 급히 익산 원광대 병원으로 후송해 위세척을 했으며 다음날 오전 11시쯤 깨어났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고 ‘극단적 선택’ 당시를 회상했다.

이 위원장은 “이틀간 기억이 가물가물하며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며 “ 입마름증세와 무기력증세 식욕이 없고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지근거린다” 고 말했다.

이어 그는 “ 전주시가 해당 사안에 대해 마땅히 내려야 할 ‘시정명령’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관하고 있다” 면서 “ 시는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즉각적인 행정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끝까지 대응을 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 위원장은 “아무리 외쳐도 바뀌지 않는 현실 앞에 지금도 ‘나 한사람의 희생’으로 끝내고 싶지만 그래도 실날같은 심정으로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고 밝혔다.

이 기사는 한 사람의 선택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우리가 어디까지 누군가를 버티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kobs@sportsseoul.co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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