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이렇게 완성돼서 개봉까지 온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로 관객을 찾아가게 된 조현진 감독은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나 연신 “행복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시나리오를 쓴 지 7년, 제작사도 두 번을 거치며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온 작품이다.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 4일 개봉한 ‘매드 댄스 오피스’는 24시간 완벽하게 살아온 공무원 국희(염혜란 분)가 인생의 균열 앞에서 플라멩코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조현진 감독은 “처음에는 30대가 공감할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막상 극장에서 중년 관객들이 울면서 좋았다고 말해줄 때 놀랐다”며 “세대를 넘어 닿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된 것 같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작품의 출발점은 의외로 단순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영화를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그 중심에는 플라멩코가 있었다. 조 감독은 “스페인에서 플라멩코를 처음 봤을 때 예쁘다기보다 기세로 몰아붙이는 에너지가 너무 강렬했다”며 “저런 춤을 가장 안 어울리는 사람이 추면 더 강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그렇게 탄생한 인물이 바로 ‘공무원 국희’다. 규율과 품위를 중시하는 직업일수록 자유로운 춤과의 대비가 극대화된다고 판단했다. 조 감독은 “공무원이라는 설정 자체가 코미디적인 지점이 될 수 있다고 봤다”며 “누구보다 성실하고 규칙적으로 사는 사람이 무너질 때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국희라는 캐릭터에는 한국 사회 특유의 정서도 녹아 있다. 조 감독은 “한국 사람들은 각자 열심히 살면서도 그 기준을 타인에게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족, 특히 엄마와 딸 사이에서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 같은 것을 담고 싶었다. 좋은 말인데도 밉고, 싫은데도 결국 이해하게 되는 감정이 있다”고 덧붙였다.

캐스팅에 대한 고민은 짧았다. 조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국희 역으로 염혜란을 떠올렸다. 조 감독은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역할을 맡아도 결국 정을 느끼게 만드는 배우라고 생각했다”며 “관객이 끝까지 따라가고 싶어지는 힘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연경 역의 최성은은 이전 작품을 통해 눈여겨본 배우였다. 조 감독은 “생활 연기가 인상적이어서 꼭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다”며 “처음에는 낯설어했지만 대화를 나누며 캐릭터의 새로운 면을 열어줬다”고 회상했다. 국희의 딸 혜리 역의 아린에 대해선 “평소의 해맑은 이미지와 달리 중요한 순간 눈빛이 바뀌는 지점이 인상적이었다”며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조 감독에게 국희는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작품 속 캐릭터들은 알게 모르게 창작자의 모습을 닮기 마련이다. 조 감독 역시 “겉으로 보이는 제 모습이 국희와 비슷하다”며 “루틴을 지키고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사실 그게 의지가 강해서라기보다 무너질까 봐 두려워서인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이어 “국희와 연경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한다”며 “둘 다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극 중 플라멩코는 단순한 소재를 넘어 영화의 핵심 장치다. 조 감독은 무려 7년간 직접 플라멩코를 배웠다. 그는 “이 춤은 기술보다 에너지가 중요하다”며 “국희에게는 기존 삶의 리듬을 깨뜨리는 ‘다른 박자’로 작용했으면 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낯설고 괴로운 리듬이지만, 점점 몸에 스며들어 일상에서도 튀어나오는 순간을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에서 플라멩코는 결국 ‘자기 자신을 흔드는 힘’으로 작동한다. 조 감독은 “완벽하게 살아온 사람이 다른 리듬을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이 중요했다”며 “그 과정이 웃기기도 하고 동시에 위로가 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 영화에는 조 감독이 20대를 지나며 느낀 고민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살면서 ‘틀렸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듣는데 그걸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열심히 살다 보면 번아웃이 오기도 하는데 꼭 정답은 하나가 아닐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조현진 감독에게 ‘플라멩코’는 무엇일까. 그는 “저에게는 출구 같은 존재”라며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는데 플라멩코가 그 바깥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답했다.
이와 함께 관객들을 위한 응원의 메시지도 전했다. 조 감독은 “꼭 플라멩코가 아니어도 된다”며 “각자에게 그런 출구가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힘든 시기에 ‘감사 일기’를 쓰며 버텼다고. 조 감독은 “플라멩코, 친구들, 가족. 결국 반복되는 것들이 내가 붙잡고 사는 이유더라”며 “우리가 좌절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이야기였으면 했다”고 전했다.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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