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어린 나이에 겪을 수 있는 풍파는 다 겪었다. 국민 신드롬을 일으킨 오디션에서 ‘매력적인 빌런’으로 시작했다. 큰 인기를 얻어 IBI를 결성했지만, 특별한 성취는 얻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새 오디션에서는 완전히 사기를 당했다. 시도하는 일마다 꼬였다. 방년 27세, 아이돌로는 이미 다 지나간 나이까지 데뷔에 실패했다. 새롭게 주목받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해인이 거쳐온 삶이다.

대운을 맞이한 것일까, 30세 무렵부터 확 바뀌었다. 플레이어가 아닌 디렉터로서 역할이 바뀌었다. 사람을 모았고, 처음부터 하나씩 만들어갔다. 손에 꼽히는 ‘중소돌의 기적’ 키스 오브 라이프가 그 결과물이다. 이전에는 없던 엄청난 성취다. 그리고 이해인은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올마이애닉도츠라는 새 회사에서 버추얼 아이돌 OWIS 출시를 앞두고 있다. 풍파를 이겨낸 힘엔 초긍정 마인드가 있었다.

이해인은 최근 서울 중구 한 커피숍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20대 때 성공했으면, 저는 패가망신 했을 거다. 오히려 실패를 많이 해서 더 단단해졌다. 제가 힘든 일은 잘 잊어먹는다. 좋았던 기억만 가지려 한다. 인생의 파도가 있다 해도,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더 많다. 센 언니로 보였는데, 성격 좋다고 좋아하는 분들이 더 많다. 오히려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해인이 겪은 풍파에 웬만하면 무너질만도 하다. 이만하면 엔터테인먼트는 지겨울 법도 한데 멈추지 않았다. 데뷔를 위해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기도 하고, 배우도 준비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프로젝트는 번번이 어그러졌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슬픈 얘기지만, 저는 지칠 시간이 없었어요. 집이 마산이에요. 쉬고 싶어도 부모님 눈치가 보여서 쉴 수가 없었어요. 17세 때 상경해서 혼자 살았거든요. 인생은 결국 스스로 해내야 하잖아요. 그래서 별 걸 다 했어요. 막판에는 재앙이 오더라고요. 너무 일을 벌려놔서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하하.”

실패가 실패가 아닌 건 그 과정을 진심으로 거쳐 왔기 때문이다. 피와 땀을 흘려가며 얻은 기쁨과 상흔이 온 몸에 공존한다. 그 자양분이 디렉터로서는 엄청난 무기가 됐다.

“제가 서브를 많이 해봐서 주인공이 되고 싶은 심리를 잘 알아요. 모두가 내 삶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야 돼요. 아티스트는 물론이고 스태프들도 자신의 인생에는 주인공이어야 해요. ‘너 아니면 다른 사람 갈면 돼’라고 하면 열정이 사라지잖아요.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려주려고 해요. 모두를 마이크로 매니징 할 수도 없고, 통제하려고만 하는 건 바보 같아요. 서로의 자발성을 믿어야죠.”

아이돌 때는 시야가 좁다. 연습실을 나와 디렉터를 맡으면서 아이돌의 탄생에 얼마나 많은 인력이 노력하는지 알게 됐다.

“기획안 하나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심이 있는지 아티스트는 몰라요. 저도 연습실에만 있을 땐 아무것도 몰랐어요. 나오고 나니까 연습실 밖이 얼마나 치열한 전쟁터인지 알게 됐어요. 챗지피티도 잘 써먹으려면 인사이트가 있어야 하잖아요. 저는 어린 친구들한테 질문 많이 하라고 해요. 질문을 잘해야 얻는 게 많으니까요. 좋은 어른들은 대답을 정말 잘해주세요.”

걸그룹과 보이그룹, 버추얼 아이돌까지 일이 많다.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성공보다 중요한 건 관계다.

“저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맛있는 거 먹고 여행 다니고 하고 싶어요. 제가 챙겨야 할 사람이 많아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게 살고 싶어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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