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 동일면 숨은 명소, 베이커리와 예술의 만남…셰프이자 화가 이종화씨, “유자향 가득한 빵에 정성 담았다”

[스포츠서울 글·사진 | 고흥군 = 이주상 기자] 전남 고흥군 동일면 한적한 시골길, 검은색 외관의 카페 한 채가 눈길을 끈다. ‘유자제빵소’라는 금색 간판 아래로 들어서면 갓 구운 빵 냄새와 함께 벽면 가득 걸린 유화 작품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은 단순한 베이커리가 아닌, 셰프이자 화가인 이종화씨가 만들어낸 예술과 미식이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올해 환갑을 넘긴 이종화 셰프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젊은 시절부터 그림을 그려온 화가였던 그는, 40대 중반 제과제빵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그림 그리는 것과 빵 만드는 것은 닮았어요. 둘 다 손으로 빚어내는 창작이죠”라고 말하는 이씨는, 베이커리 주방 벽면을 자신의 작품으로 채웠다.
주방 한쪽에 걸린 두 점의 유화는 그의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한 작품은 한복을 입은 여인이 전통 화덕 앞에서 고구마를 굽는 정겨운 풍경을, 다른 작품은 푸른 산을 배경으로 소와 함께 논밭을 가는 농부의 모습을 담았다. 따뜻한 색감과 섬세한 붓 터치로 완성된 그림들은 한국 농촌의 정취를 고스란히 전한다.
“고흥의 아름다운 자연과 우리 전통 문화를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마음을 빵에도 담고 싶었죠.” 이종화 셰프의 말처럼, 그의 베이커리에는 화가의 섬세함과 셰프의 정성이 함께 녹아있다.
유자제빵소의 시그니처 메뉴는 단연 유자빵이다. 고흥은 전국 유자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유자의 본고장이다. 이종화 셰프는 이 지역 특산물을 활용해 독창적인 베이커리를 만들어냈다.
황금빛 둥근 유자빵은 마치 작은 유자처럼 생겼다. 겉은 고소하고 속은 촉촉한 빵 안에 유자청이 가득 들어있어, 한입 베어 물면 상큼한 유자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빵 위에 올린 녹색 유자잎 장식은 시각적 완성도를 높인다. “유자의 새콤달콤한 맛과 빵의 고소함이 만나 조화를 이루도록 수십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어요”라고 이씨는 설명했다.
유자빵 외에도 다양한 메뉴가 눈길을 끈다. 바삭하게 구운 마늘빵에는 허브와 치즈가 듬뿍 들어가 풍미가 깊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식감의 대비가 일품이다. 특히 갓 구워낸 마늘빵은 주변에 은은한 마늘과 허브 향을 퍼뜨리며 식욕을 자극한다.
전통 디저트도 빠질 수 없다. 네 가지 색상의 양갱 세트는 녹차, 딸기, 초콜릿, 유자 맛으로 구성됐다. 각각 금분과 코코넛 가루로 장식한 양갱은 시각적으로도 아름답지만, 쫀득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과 은은한 단맛이 조화를 이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기 좋다. “전통 한과의 멋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어요. 달콤하지만 과하지 않은 맛이 특징입니다”라고 이씨는 자신한다.
유자제빵소의 음료 메뉴도 특별하다.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음료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 같다. 로즈마리 가지를 장식으로 올린 음료들은 붉은색 석류 에이드, 노란색 유자 에이드, 하얀색 밀크티 등 다채로운 색상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모두 유자 원액을 기반으로 만들었다.
특히 석류와 오렌지를 조합한 에이드는 상단의 붉은 석류와 하단의 오렌지가 그라데이션을 이루며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로즈마리 향이 은은하게 퍼지며 청량감을 더한다. “음료도 그림처럼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색의 조화와 향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죠”라고 이씨는 말한다.
유자제빵소는 이종화 셰프와 부인이 함께 운영한다. 사진 속 두 사람은 주방에서 활짝 웃으며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이다.
“아내가 없었다면 이 가게를 운영할 수 없었을 거예요. 제가 주방에서 빵을 만들면, 아내는 손님을 맞이하고 매장을 정리합니다. 완벽한 팀워크죠.” 이종화 셰프의 말처럼, 부부의 호흡은 유자제빵소를 더욱 따뜻한 공간으로 만든다.
손님들은 “단순히 빵을 사러 오는 게 아니라, 주인 부부의 따뜻한 미소와 정성을 느끼러 온다”고 입을 모은다. 주문을 받을 때마다 진심 어린 인사와 함께 빵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는 모습에서, 이들의 진정성이 묻어난다.
유자제빵소의 내부는 단순한 베이커리 매장이 아닌, 작은 갤러리 같다. 높은 천장과 밝은 조명, 그리고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들이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방 한쪽에는 이종화 셰프가 수집한 작은 피규어들과 미니어처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방문객들에게 소소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진열대에는 다양한 베이커리 제품들이 정갈하게 놓여있다. 각종 빵과 케이크, 쿠키들이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으며, 유자청과 유자 관련 제품들도 함께 판매된다. 특히 고흥 지역 특산물인 유자를 활용한 제품들은 관광객들에게 인기 선물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매장 곳곳에 놓인 작은 식물들과 인테리어 소품들은 이종화 셰프의 섬세한 미적 감각을 보여준다. “빵집도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손님들이 이곳에서 편안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길 바랍니다”라고 그는 전했다.
이종화 셰프는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제품 개발에 열정을 쏟고 있다. “고흥은 청정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곳이에요. 여기서 나는 유자, 석류 같은 농산물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맛있는 빵을 파는 것을 넘어, 고흥의 농산물을 알리고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것이다.
실제로 유자제빵소는 지역 농가와 직거래를 통해 신선한 유자와 과일을 공급받는다. 이는 농가에도 안정적인 판로를 제공하고, 소비자에게는 더 신선하고 품질 좋은 제품을 선보일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서로 돕고 함께 성장하는 것, 그게 진짜 지역 경제 활성화라고 믿어요”라고 이씨는 강조했다.
유자제빵소는 화려한 광고나 마케팅 없이도 입소문만으로 고객들이 찾아오는 숨은 명소가 됐다. 고흥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물론, 인근 순천, 여수에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단골들이 많다. 주말이면 주차장이 가득 찰 정도로 인기다.
한 고객은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다 들렀는데, 유자빵 맛이 너무 특별해서 이제는 한 달에 한 번씩 꼭 들른다”며 “주인 셰프님의 그림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서 매번 올 때마다 새롭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문객은 “빵 하나에도 정성이 느껴지고, 매장 분위기도 아늑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물게 된다”고 전했다.
SNS에서도 유자제빵소는 자주 언급된다. 특히 노란 유자빵과 알록달록한 양갱 세트는 ‘인증샷 필수 아이템’으로 통한다. 방문객들이 올린 사진과 후기는 다시 새로운 고객을 불러모으는 선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종화 셰프는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 빵 반죽을 시작한다. “빵은 생명이 있는 것 같아요. 온도, 습도, 반죽 시간에 따라 매번 다른 결과가 나오죠. 그래서 더 재미있고, 더 신경 써야 합니다.” 그의 손에서 태어난 빵들은 단순한 식품이 아닌, 정성과 시간이 빚어낸 작품이다.
화가로서의 예술적 감각과 셰프로서의 전문성이 결합된 이종화 셰프의 작업 방식은 독특하다. 그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때 먼저 스케치를 한다. “어떤 색감으로, 어떤 모양으로 표현할지 그림으로 그려본 후 실제 레시피를 만들어요. 그러면 훨씬 더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나옵니다.”
그의 철학은 명확하다. “유자제빵소에 오는 모든 분들이 맛있는 빵과 함께 예술을 느끼고, 고흥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길 바랍니다. 그게 제가 이 일을 하는 이유입니다.”
고흥군은 나로우주센터로 유명한 관광지다. 하지만 이제 유자제빵소도 고흥 여행 코스에서 빠질 수 없는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우주센터를 관람하고 돌아가는 길에 들러 유자빵과 커피 한 잔을 즐기는 것이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떠올랐다.
고흥군 관계자는 “유자제빵소 같은 특색 있는 가게들이 지역 관광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된다”며 “앞으로도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우수 업체들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화가에서 셰프로, 두 개의 꿈을 동시에 이룬 이종화씨. 그의 손에서 빚어진 빵 한 조각에는 예술가의 혼과 장인의 정성, 그리고 고흥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다. 전남 고흥을 방문한다면, 유자제빵소에서 황금빛 유자빵과 함께 따뜻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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