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성 ‘페이커’, KT 반란을 잠재우다

이동통신사 대전서 T1이 승리

‘페비록’의 첫 장은 이상혁이 주인공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페비록’

[스포츠서울 | 청두=김민규 기자] 청두의 밤, 붉은 깃발은 다시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전장 한가운데, 검 한 자루를 든 사내가 서 있다. 사내의 이름은 ‘페이커’ 이상혁. 검성이라 불리는 그의 독문무공 ‘갈리오행신검’이 하늘을 가르며 반란을 종식시켰다.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강호의 역사에서 이미 ‘제왕(帝王)’이라 불렸던 그가 이날 또 한 번 전설의 첫 장을 자신의 손으로 써내렸다.

SK텔레콤 검문(劍門)을 계승한 T1은 9일 중국 청두 동안호 다목적체육관에서 열린 천하제일대회 ‘2025 LoL 월드챔피언십(롤드컵)’ 결승에서 KT의 창문(槍門)을 꺾고, 사상 첫 3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T1의 통산 6번째 우승, 그 중심에는 언제나 검성 이상혁이 있었다.

그리고 전장 위에는 검성과 신(神)창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 대결을 ‘페비록(페이커·비디디)’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 페비록 제1장 ‘다시 칼을 들다’

2013년 혜성처럼 등장한 최고 후기지수 이상혁. 2015·2016년 천하제일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사람들은 ‘세상을 속이는 신룡’이라 칭송했다. 그러나 2017년 베이징, 신룡은 승천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다시 일어서겠다”고 말이다. 패배를 잊지 않고, 수련을 거듭했다. ‘오리아나반야신공’, ‘갈리오행신검’ 그의 무공은 더욱 단단해졌다. 그때의 어둠은 다시 칼을 갈기 위한 침묵이었다. 폐관 수련 후 맞이할 ‘검성의 탄생’이었다.

◇ 페비록 제2장 ‘검을 바로 세우다’

시간은 흘러 2023년, 2024년, 그리고 2025년. 검성 이상혁은 3년 연속 가장 높은 곳에 올랐고, 가장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전장에서 다시 한번 최강자의 검을 뽑아 들었다.

“오늘은 승패보다 경기를 즐겼던 것이 가장 큰 의미였다.” 그의 말은 언제나처럼 담담했다. 그러나 그 담담함이야말로 가장 높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 페비록 제3장 ‘왕조의 한타’

KT가 도전했다. 그 중심에는 신창(神槍) ‘비디디’ 곽보성이 있다. 곽보성의 창끝은 날카로웠고, 기세는 거셌다. 그러나 강호가 크게 흔들렸다. KT는 4세트를 내줬고, 승부는 원점이 됐다. 마지막 한 수로 승부가 결정 나는 상황.

5세트, T1은 한타의 심법(心法)을 완성형으로 펼쳐냈다. 시야를 감추고, 각을 보고, 한순간에 이상혁의 ‘갈리오행신검’이 폭발했다. 그 순간, 전장은 이미 T1의 것이었다. 왕조를 이룬 자는 이길 순간을 아는 법이다.

◇ 페비록 제4장 ‘전설은 계속된다’

검성 이상혁은 천하제일대회 통산 6회 우승을 이뤘다. 누적 기록으로도, 존재의 무게로도 ‘천하제일인’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강호는 그를 이렇게 부른다. “살아있는 전설”

그는 여전히 검을 놓지 않았다. 2029년까지 수련에 전념한다는 각오다. 이상혁은 “계속하는 이유는 열정이다. 나는 더 배우고 성장하고 싶다”고 했다.

‘페비록’의 첫 장은 이렇게 쓰였다. 승패의 기록이 아니라, 한 사내가 패배와 성장, 왕조와 현재를 꿰뚫어낸 이야기다. 강호는 알고 있다. 이 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kmg@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