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조선경 기자] ‘착한 기업’의 대명사로 불리던 오뚜기의 성장세에 급제동이 걸렸다. ‘갓뚜기’라는 국민적 호감도와 별개로, 실제 경영 성과는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오뚜기의 2025년 상반기 영업이익은 1026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9% 급감했다. 2분기 영업이익 역시 20% 이상 하락했으며, 3분기 영업이익은 604억 원에 그치며 부진을 면치 못했다.
◇ ‘불닭’·‘신라면’ 세계로 뻗을 때…‘진라면’은 우물 안 신세 못 면해

부진의 핵심 원인으로 ‘K-푸드 열풍에서의 소외’가 지목된다. ‘착한 기업’ 이미지가 강력한 방패막이 되어준 내수 시장과 달리, 글로벌 시장 공략에 실패하며 성장 동력을 잃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K-푸드라는 전례 없는 기회를 맞은 경쟁사들의 성과는 눈부시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 신드롬을 글로벌 바이럴로 연결시키며 2024년 2분기 기준 해외 매출 비중이 78%에 육박,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신라면’을 앞세운 농심 역시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성공적인 프리미엄 전략을 펼쳐 해외 매출 비중을 40% 이상으로 끌어올리며 글로벌 식품 기업으로 도약했다.
반면 오뚜기의 전체 매출 대비 해외 비중은 2023년 9.6%, 2024년 10.2%, 2025년 상반기 10.8%로 수년째 10% 안팎에 머무르고 있다. 전 세계가 K-라면에 열광하는 동안, 오뚜기는 사실상 ‘안방’에서 구경만 한 셈이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오뚜기는 ‘착한 기업’이라는 명성과 케첩, 마요네즈 등 내수 1위 품목들에 안주한 경향이 짙었다”라며 “K-푸드가 프리미엄 경험재로 소비되는 글로벌 트렌드와 달리, ‘가성비’ 이미지를 고수하다 보니 K-라면 열풍의 주도권을 완전히 놓쳤다”고 꼬집었다.
◇ “가성비만 고수” 보수적 경영…M&A·킬러 콘텐츠 부재가 ‘독’ 됐다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업계는 오뚜기가 ‘보수적 경영’ 기조에서 벗어나 과감한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내수용 ‘가성비’ 이미지를 탈피하고, 해외 시장을 겨냥한 프리미엄 라인업과 ‘제2의 불닭’ 같은 킬러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다. 또한 ‘무차입 경영’ 기조를 고수하며 쌓아둔 현금성 자산을 해외 생산기지 확보나 현지 유통망 M&A 등 공격적인 투자에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지 식문화에 맞춘 공격적인 마케팅과 브랜드 리빌딩(re-building)을 통해 ‘오뚜기’라는 브랜드 자체의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는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내부에서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오뚜기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정규직 고용이라는 ‘갓뚜기’의 상징 이면에는 동종 업계 대비 현저히 낮은 연봉과 성과급이라는 현실이 있다”며 “‘업무 강도 대비 보상이 짜다’, ‘과도한 원가 절감 압박이 심하다’는 내부 불만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 ‘갓뚜기’ 이미지의 균열…낮은 보상·반복된 품질 논란에 ‘내부도 부글’

반복되는 품질 논란도 뼈아픈 대목이다. 2021년 ‘옛날미역’의 중국산 혼입 사태나 ‘저가 와사비’ 논란, 즉석밥 첨가물 논란 등은 오랜 기간 쌓아온 소비자 신뢰에 흠집을 낸 것 역시 ‘착한’ 이미지에 걸맞지 않은 내부 품질 관리의 허점을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결국 대한민국에서만 통용되는 ‘착한 기업’ 이미지는 포화 상태의 내수 시장과 고물가, 경기 침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힘을 잃고 있다. 오뚜기의 실적 부진은 단순한 경기 침체 탓이 아니라, 글로벌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안방 챔피언’에 머무른 전략적 실패의 결과물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갓뚜기’의 후광이 사라진 자리에 ‘성장 정체’라는 냉혹한 성적표만 남게 된 것이다. eterna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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