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전통 민화 속 호랑이와 까치가 물 위를 달린다. 걸그룹이 마이크 대신 부적을 들고 악귀와 맞선다.

무대는 현실이 아닌 애니메이션 속 세상이다. 그럼에도 전 세계가 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이야기다.

지난달 20일 공개된 이 작품은 단숨에 전 세계를 휩쓸며 흥행 신드롬을 만들고 있다. 공개 하루 만에 미국, 일본, 프랑스, 영국 등 22개국에서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를 기록했다. 공개 이후 4주차인 지금까지 글로벌 시청자 수 2,420만 명을 넘기며 정상을 지키고 있다.

‘케데헌’은 악령 세계에서 탄생한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와 인간 세계를 지키는 걸그룹 ‘헌트릭스’의 대결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무당의 노래’가 현대에 와서는 ‘K팝’이 되었다는 독창적인 설정을 바탕으로, 한국 설화의 세계관과 글로벌 팝 문화의 문법을 과감하게 결합했다.

상상력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작품에 등장하는 가상의 K팝 그룹들이 실제 아티스트처럼 팬덤을 만들었고, 음악 차트를 점령하는 이례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실제로 지난 15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에는 ‘케데헌’ OST 수록곡 8곡이 동시에 진입했다. 걸그룹 헌트릭스가 부른 ‘골든’은 6위,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의 ‘유어 아이돌’은 16위, 듀엣곡 ‘프리’는 41위를 기록했다.

트와이스 정연·지효·채영이 참여한 또 다른 버전의 ‘테이크다운’도 86위에 이름을 올렸다. OST 앨범 역시 ‘빌보드 200’ 차트 2위를 기록하며 K팝 애니메이션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에 매료된 것은 대중만이 아니다. 스타들의 반응도 잇따랐다. 방탄소년단 정국은 지난 14일 팬들과의 라이브 방송 중 ‘케데헌’을 함께 시청하다 눈물을 흘려 화제를 모았다.

극 중 진우가 헌트릭스 리더 루미를 지키기 위해 악귀의 기운을 온몸으로 막고 사라지는 장면에서 그는 “같이 살아야지, 바보야”라며 울컥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배우 고현정 역시 작품 공개 일주일도 안 돼 자신의 SNS에 ‘헌트릭스X사자보이즈’의 첫 만남 장면을 공유하며 팬심을 인증했다.

굿즈 시장 역시 발 빠르게 반응했다. 작품 속 까치 ‘수씨’와 호랑이 ‘더피’는 한국 민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캐릭터다. 이들의 인기에 힘입어 국립중앙박물관 온라인숍의 관련 상품은 연일 품절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왜 지금, 왜 이 작품일까. 단순히 ‘K팝이니까’, ‘넷플릭스니까’라고 설명하기엔 이 신드롬은 입체적이다.

이 놀라운 인기의 중심에는 지금의 한국 대중문화를 정교하게 해석하고 재구성한 서사가 있다. 또 작품이 보여주는 정교한 ‘현실 고증’에서 비롯된다.

헌트릭스 멤버들이 신라면을 닮은 ‘신(神)라면’을 먹고, 설렁탕에 수저를 얹을 때 냅킨이 깔려 있는가 하면, 지하철의 임산부 배려석, 목욕탕의 때타월, 한옥과 남산타워, 팬사인회와 콘서트 응원봉 등 현실의 한국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세팅이 곳곳에 녹아 있다.

감독 메기 강은 이 장면들을 위해 실제로 10명의 제작진과 함께 한국을 직접 찾아 수개월간 자료를 기록했다. 그 디테일은 지금 해외 팬들로부터 “한국에 다녀온 것 같다”는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결국 ‘케데헌’은 K팝이라는 익숙한 틀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와 오늘날의 생활문화를 전 세계와 연결한 콘텐츠다. 여기에 장르적 상상력, 중독성 강한 OST, 시각적 매력까지 어우러지며 지금 가장 뜨거운 ‘글로벌 K-애니메이션’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셈이다. khd998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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