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지가 혼자 기계에 낀 걸로 해. 119 오면 기록 남으니까 죽고 나면 회사 차로 싣고 병원에 가.”(MBC ‘노무사 노무진’)

“119? 너 파키스탄 핫싼 사고 났을 때 기억 안 나? 사장님이 우리 더러 판단하지 말랬잖아.” (디즈니+ ‘나인 퍼즐’)

최근 드라마에서 공장 노동자의 산업 재해를 다룬 장면이 눈길을 끌고 있다. 거대한 공장 프레스 기계에 끼어 목숨을 잃게 된 상황을 현실감 있게 묘사했다. 특히 신고를 하지 않고 사고를 은폐하는 모습에는 사회고발적 성격까지 있다. 공교롭게도 소년공 출신 이재명 대통령도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공장에서 왼쪽 팔이 눌리는 사고를 당한 뒤 초기 조치 미흡으로 장애 6급 판정을 받았다. 사고 발생 후 사후 조치가 미흡한 구조적 원인을 날카롭게 파고든 것이다.

정경호 주연의 MBC 금토드라마 ‘노무사 노무진’의 첫 에피소드는 공장 현장 실습을 하다가 기계 끼임 사고로 죽은 고등학생 민욱(박수오 분)의 사연을 담았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성실히 일했던 민욱은 제대로 된 안전 조치 없이 일을 시작했다. 기계에 빨려 들어갈 수 있다는 주의만 받고 일을 시작했고 결국 기계에 몸이 끼었다. 문제는 사고 이후 벌금 등을 우려한 공장 대표는 신고를 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게 지시했다는 점이다.

공장과 유족 간 합의로 사건을 무마했다. 학교는 취업률을 핑계로 손사래쳤다. 훗날 악덕 공장주 및 관리자의 은폐와 조작을 밝혀내는 노무진 팀이 출동하면서 내막이 밝혀지게 된다.

지난 4일 종영한 디즈니+ ‘나인 퍼즐’ 5회에는 공장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죽는 장면이 나왔다. 극중 공장 노동자인 영한(최영일 분)은 자신이 일하는 공장에 아들이 아르바이트하러 왔다가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영한의 동료 3명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일과 중에 막걸리를 마시다 ‘우당탕탕’ 소리에 뛰어나가보지만, 이미 사고 현장을 놓친 뒤였다.

119에 신고하려다 이내 그만뒀다. 사고 당한 이를 살리면, 자신들의 밥줄이 끊길 것이라고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살인이다. 이를 뒤늦게 안 영한은 공장 컨테이너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사고를 은폐한 3명을 차마 죽이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미스터리 스릴러인 이 작품에서 노동 문제를 끌고 왔다. 용의자로 특정된 3명이 아닌 사건 사망자가 곧 가해자였던 추리를 해내야 했기 때문이다. 작품의 특성과 사회적 이슈를 잘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 작품은 산재를 드라마로 만들어 사회적 메시지로 환기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50대 근로자의 끼임 사망 사고가 발생하는 등 해마다 피로 얼룩진 공장 사망사고가 나온다. 드라마적 재미를 주기 위해 ‘노무사 노무진’은 무진(정경호 분)에게 귀신이 된 죽은 노동자를 보는 설정을, ‘나인 퍼즐’은 프로파일러 이나(김다미 분)가 추리를 통해 사건을 파헤치도록 했다.

‘노무사 노무진’의 연출을 맡은 임순례 감독은 “산업재해는 생생한 일상이고, 유령을 본다는 것은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상과 판타지, 무거움과 가벼움 그 경계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강조했다.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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