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그는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말끔한 셔츠 차림이었지만, 어딘가 수척해 보였다. 눈빛은 무거웠다. 표정엔 조심스러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넷플릭스 예능 ‘데블스 플랜: 데스룸’의 최종 우승자 정현규의 이야기다.

충분히 명예로운 서바이벌 예능 우승자였다. 하지만 사과가 앞섰다. 지난 27일 스포츠서울과 만난 정현규는 “죄송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방송 이후 반응을 보면서 스스로 되묻게 되더라고요. 저는 우승을 위해 정말 진심으로 임했고, 그 과정에서 불편함을 드린 것도 사실입니다. 그 감정들 역시 제 책임이고요.”

정현규는 ‘데블스 플랜: 데스룸’에서 가장 치열하게 움직인 플레이어였다. 적극적인 연합, 빠른 판단, 때론 날 선 말. 그의 플레이는 분명 강했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더 강했다. 방송이 끝난 뒤 그는 “이기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사람”이라는 비난과 함께 인격을 향한 날 선 공격을 견뎌야 했다.

“사람들이 저를 플레이어로 보는 게 아니라, 그 모습 그대로 저라고 단정지을 때 솔직히 당황스럽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느끼셨다면 그 역시 제 몫이겠죠.”

정현규가 비난을 받는 이유는 시청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를 이겼고, 게임을 이기기 위해 때론 거침없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이후 규현, 윤소희와 연합을 맺고 결승에 올랐다. 결과적으로 윤소희의 탈락과 맞물려 “승리를 양보받았다”는 오해도 생겼다. 하지만 그는 그조차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

“규현 형, 소희 누나는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제가 전략적으로 부탁을 드렸고, 두 분이 제 편이 되어줬죠. 덕분에 결승까지 올 수 있었어요. 그래서 더 죄송했어요. 그게 두 분에게 상처가 됐을까 봐. 두 분은 괜찮다고 하셨지만, 저는 끝까지 미안한 마음이 남더라고요.”

일부 시청자들은 그를 향해 도를 넘은 감정을 쏟아냈다. 열애설, 인성 논란, 악성 DM까지. 그 가운데서도 그는 쉽게 자신을 방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조심했고, 더 자주 고개를 숙였다. 조심스럽게 꺼낸 그 사과의 반복 속에서, 진심이 묻어났다.

“진심이 어떻게 전달되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말투 하나, 눈빛 하나가 얼마나 다른 느낌을 주는지 깨달았고 반성하고 있어요.”

인터뷰 내내 말을 아끼던 그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조용히, 아무 말 없이 흘리는 눈물이었다. 침묵 속에서 진심은 더 깊게 전해졌다. 그 순간만큼은 그를 향해 던져졌던 모든 말들이 과했음을 부정하기 어려웠다.

정종연 PD 역시 “현규는 이야기 만드는 능력이 있는 친구다. 몰입도가 높은 플레이어였고, 그만큼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다. 그런데 그걸로 사람 전체를 평가하는 건 조금 무섭다고 느껴졌다”고 말했다.

‘데블스 플랜’은 승자를 가리는 프로그램이지만, 그 방식은 치열하다. 누군가를 밀어야 누군가가 살아남는다. 연합을 맺고, 배신하고, 전략을 짜야 한다. 그 안에서 인간적인 고뇌와 계산 사이를 오가야 하는 구조. 그리고 정현규는 그 구조 안에서 움직였다. 과몰입한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그 ‘틀’ 안에서.

“당분간 방송 활동은 쉬려고 합니다. 어떤 활동을 다시 하게 될지, 아직은 모르지만 그 전엔 스스로를 더 정리하고 싶어요. 제가 겪은 이 시간이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든 것 같아요. 물론 좋은 시간이었다고 쉽게 말하진 못하겠지만 배운 게 많았고, 그걸 앞으로 살아가면서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khd9987@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