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 감독
[스포츠서울] 제주 유나이티드 박경훈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13일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4 K리그 클래식 성남과 경기에서 경기장에 들어서고 있다. 2014. 7. 13. 탄천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악상이 떠오르다 막힌 거지. 그러니 제대로 지휘가 되지 않았던 것이고….”

3일 감독직을 사임한 박경훈(53) 제주 감독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5년간의 제주 생활을 마무리했다. 단명하는 지도자들이 많은 프로축구계에서 지난 2010년부터 5시즌 동안 팀을 이끈 것은 흔치 않은 롱런이었지만 그도 끝내 남은 임기를 다 채우지는 못했다. 제주와 계약은 내년 시즌까지 남아있지만 지금이 내려 놓을 때라고 판단했다. 박 감독은 “이 시점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지고 초심을 잃었다. 몸도 많이 상했다.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일 K리그 대상 시상식이 끝난 후 장석수 제주 사장과 면담을 하며 사임을 결정했다. 벌써부터 박 감독의 후임으로 제주의 전신이었던 유공과 부천SK에서 뛰었던 선수 출신 지도자들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박 감독은 5년 동안 숨돌릴 틈 없이 이어진 승부의 세계, 성적의 압박에 심신이 지쳤다. “나를 뒤돌아보게 됐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뭔가 이뤄야 한다는 강박에 같은 축구인인데도 경쟁자들을 시기하게 되고, 선수들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다려주는 미덕도 사라지고, 긍정적인 시각이 예민한 짜증으로 변해갔다. 이러다가는 나도, 팀도 발전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는 것이 박 감독의 말이었다.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하는 등 건강은 점점 안좋아졌다. “요즘 얼굴이 검게 변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거울 보기도 싫을 정도”라며 “한의원에 갔더니 속에 화가 많이 쌓였다고 하더라. 면역력도 떨어지고 때로 숨이 가빠질 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감독으로서 감내해야 했던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박경훈 감독
박경훈 제주 감독이 4일 일본 오키나와에서 훈련을 진행하며 선수들에게 훈련 강조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오키나와(일본) | 이정수기자 polaris@sportsseoul.com 2014.2.4

제주 사령탑으로 보낸 5년 동안 2010년 K리그 준우승에 이어 2011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무대를 밟은 후 그에 준하는 좋은 성적을 얻지 못했다. 박 감독이 팀을 떠나며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감독으로서 역량이 부족해 아쉽다. 팀을 명문구단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그는 “지난해 하위스플릿으로 떨어졌을 때 그만 두고 싶었다. 그런데 자존심이 상해 놓지 못하겠더라. 올해는 수원과 경기에서 패해 ACL 진출이 멀어진 후 물러나야겠다고 느꼈다. 팀을 ACL에 진출시켜놓지 못하고 물러나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제주를 일사불란하고 조화로운 오케스트라처럼 바꾸고자 했던 박 감독은 “악상이 떠오르다 막혔다. 재충전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제주 감독 부임 전 몸담았던 전주대로 돌아가 후배들을 키우면서 자신도 함께 견문을 넓히고 새 지식을 채울 예정이다. 박 감독은 “전주대 시절은 축구와 축구인들을 사랑했던 시기였다. 학교로 돌아가 후배들을 위해 공부하고 부족함을 메우며 마음의 수양도 할 생각이다.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렸다”고 말했다. 리그가 진행중인 해외축구에 대한 견문도 넓힐 계획이다. “김호곤 감독님이 최근 독일에 다녀오셔서 ‘우리와 아주 다른 축구를 하고 있더라’는 말씀을 하셨다. 영국과 독일 등지에서 2~3개월 머리도 식히면서 흐름을 살펴볼까 한다. 새로운 지식을 충전하는 것이 결국은 축구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축구팬들에게 인사를 남겼다. “제주 서포터스 여러분들께는 조만간 제주에서 인사를 드리겠다. K리그를 사랑하시는 많은 팬들께는 일일이 인사를 드릴 수 없어 지면으로라도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동안 보내주신 응원과 격려에 감사한다. 팬 여러분들 덕분에 행복했다.”
이정수기자 polaris@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