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파주=장강훈기자]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 플레이하는 것,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것, 한국에서 대회하는 걸 기다린 이유죠!”

세계 골프 여제들이 한국에 모였다. 최장수 세계랭킹 1위였던 고진영(28·솔레어)과 한·미·일 통산 64승을 따낸 신지애(35),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전 세계랭킹 1위 넬리 코다(25·한화큐셀) 등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를 주름잡는 스타들이 경기도 파주에 있는 서원밸리 컨트리클럽 서원힐스 코스(파72·6647야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원힐스 코스는 17일 LPGA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총상금 220만달러) 개막을 앞두고 막바지 대회 준비로 분주했다. 코스 세팅은 일찌감치 끝내고 홍보부스와 갤러리프라자 설치작업이 한창이다. 국내 유일의 LPGA투어 정규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 모든 관계자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클럽하우스에 마련한 미디어센터에서는 이날 고진영과 신지애, 넬리 코다를 비롯해 2주 연속 한국인 우승자로 이름을 새긴 유해란(22·다올금융그룹)과 김효주(28·롯데), 디펜딩챔피언 리디아 고(26·하나금융그룹) 등이 대회에 임하는 각오 등을 밝혔다.

특히 한국인 선수들은 “가족, 친구 앞에서 플레이한다는 점에 설렌다”며 밝게 웃었다. 2019년 이후 4년 만에 내한한 코다는 “열정적인 한국 팬들의 응원을 다시 볼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고 지난달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 이후 한 달여 만에 LPGA투어로 모국 팬을 만나는 리디아 고는 “맛있는 음식을 또 먹게 돼 즐겁다”며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모처럼 고국 팬 앞에 서는 신지애는 “18년가량 선수생활을 했는데 대회 전 긴장감이 크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며 “모처럼 국내에서 플레이한다는 생각에 엄청 설렜다. 기분 좋은 긴장감과 설렘으로 대회를 준비하다 보니 기분이 좋아지더라. 후배들을 만날 수 있어서, 얘기할 수 있어서 더 좋다”며 웃었다.

낯선 타국 땅에서 선수생활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따뜻한 밥 한 끼가 그리울 때도 있고,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투정 부리는 것으로 위로받고 싶을 때도 있다. LPGA투어에서 정상급 기량을 뽐내지만, 아직 20대 어린 선수들이 많아서 국내에서 열린 LPGA투어는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시즌 2승을 따냈지만 메이저대회에서 입상에 실패하는 등 부침 심한 시즌을 치른 고진영은 “일찌감치 귀국해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골프에 내가 가진 신경을 80~90% 쏟아붓지만, 골프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많았다. 여전히 골프 할 때가 가장 행복하지만, 쉬는 법도 알아야 인간 고진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요즘”이라고 말했다.

후배의 고민에 누구보다 귀를 기울인 건 ‘맏언니’ 신지애. 그 역시 지난한 세월을 버티며 30대 중반에도 경쟁력 있는 선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온·오프를 확실히 구분하는 게 선수생활에 크게 도움이 된다. 80~90% 에너지를 골프에 쏟아붓는 건 당연한 일인데, 나머지 10~20%를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게 지치지 않은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힘만 주고 있으면 너무 힘들다. 힘을 뺄 때 어떻게 빼야 하는지, 버릴 땐 확실히 버릴 수 있는 이른바 강약조절을 어떻게 할지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나’를 파악하는 게 골프를 잘하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후배들보다 먼저 걸었던 길이어서 “안 좋은 건 안 좋은대로 인정하고, 내 몸과 감정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데 많은 신경을 쓴다. LPGA투어에서 활동할 때는 선배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열심히 뛰고 있는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되려고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나도 배우는 게 있으니, 고민이 있다면 언제든 얘기해주면 충분히 들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우승도 물론 빼놓을 수 없는 행복이지만, 한국말로 마음속 얘기를 꺼낼 수 있는 건 선수생활을 이어갈 동력이 된다.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은 한국 선수들에게 일종의 에어포켓 역할을 하는 셈이다.

심리적 안정은 빼어난 경기력으로 발현할 때가 많다. 2019년부터 LPGA투어로 치른 이 대회는 장하나가 초대 우승을, 고진영(2021년)이 2회 대회 우승을 각각 따냈다. 지난해는 리디아 고가 트로피를 들어 올렸으니, 올해도 한국인 선수가 우승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어로 대화하며 활짝 웃는 선수들의 표정에 ‘고향의 힘’이 묻어났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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