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히어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마약중독자 이사라 역을 연기한 배우 김히어라. 제공|넷플릭스

[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 ‘희고 깨끗하게’ 살라는 아버지의 뜻이 담긴 이름.

이름처럼 동공이 맑은 눈을 지닌 14년차 배우 김히어라(34)가 데뷔 이후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지난 10일 파트2를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학교폭력 가해자이자 마약중독자인 화가 이사라 역을 실감나게 표현해 지난 14년간 겪었던 무명의 설움을 동시에 날렸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사적 복수를 다룬 ‘더 글로리’는 ‘파트2’ 공개 사흘만에 전세계 넷플릭스 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전 세계 화제의 중심에 선 작품이다. 김히어라가 연기한 이사라는 극 중 가해자 박연진(임지연 분) 무리의 일원으로, 대형교회 목사의 딸이자 화가로 마약에 의존하고 탈세를 일삼는 인물이다.

온라인에서는 마약 수사를 피하기 위해 마약이 합법인 네덜란드로 보내달라는 사라의 앙탈 장면이 ‘오은영 박사도 포기한 금쪽이’라는 밈으로 떠돌아 누리꾼들에게 웃음을 안겼다. 14일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히어라는 “집에서는 ‘약쟁이 이화백’이라고 불리곤 하는데 이제 ‘금쪽이 이화백’이 됐다”고 웃었다.

김히어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마약중독자 이사라 역을 연기한 배우 김히어라. 제공|넷플릭스

◇‘맑은 눈’과 그림 전시 이력에 사라 역 낙점

‘더 글로리’ 촬영 전 김히어라의 필모그래피에는 JTBC 드라마 ‘괴물’(2021)의 조·단역 한줄 뿐이었다. 그에게 ‘더 글로리’ 오디션은 기회였다. 김은숙 작가와 안길호 PD 등 내로라하는 스태프들이 참여한 작품의 오디션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첫 오디션에서 동은, 연진, 사라 등 다양한 인물의 대본을 받았다. 연진이 기상캐스터 후배에게 “너는 이 회사에서 한달에 200만원을 받지만 나는 2억원을 준다”는 대사가 입에 착착 붙었다. 하지만 사라의 대사도 귀엽게 느껴졌다. 당시만 해도 김히어라는 “내게 어떤 역할이 주어질지 몰랐다”고 했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도 했던 김히어라는 2차 오디션 뒤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안길호 PD에게 “지금 전시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안 PD는 김히어라의 그림을 살펴본 뒤 “잘 그리네”라고 칭찬했다.

이후 김히어라는 최종 합격전화를 받았다. 안길호PD는 “네 눈빛이 좋다”고 칭찬했다. 광인처럼 빛나던 맑은 눈과 사라처럼 그림을 그렸던 이력이 그를 사라 역으로 이끈 셈이다.

더글로리파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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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의 한 장면. 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부터 유튜브까지 마약 중독자 연구, 지나친 표현은 자제

김히어라는 마약 중독자 사라 역을 연기하기 위해 넷플릭스는 물론 유튜브에서 다양한 약물 중독자의 사례를 참고하고 연구했다. 마약 중독자가 단약 시기에 그린 그림체도 살펴봤다.

실제로 ‘더 글로리’에는 김히어라가 직접 그린 그림 3점이 나온다. 다만 지나치게 중독자의 그림과 비슷해 결국 제작진이 밑바탕을 하고 김히어라가 덧칠하는 식으로 협업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작품을 위해 그린 그림들은 조만간 전시계획이다.

김히어라가 표현한 사라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약과 신에 의존하는 인물이다. 극중 사라는 피해자 동은(송혜교 분)에게 “너는 천국 못 가, 나는 회개하고 구원받았다”고 한다. 김히어라는 “사라가 믿고 사는 세계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대사인데 기가 찼다”고 혀를 끌끌 찼다.

파격적인 장면을 연기해야 했지만 김히어라가 그보다 더 신경 쓴건 마약에 찌든 사라의 모습이 너무 깊이 각인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것이었다.

김히어라는 “중독자 이사라의 이야기가 주된 스토리가 아니다보니 연기 절제가 필요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메이크업을 거의 안 하고 다크서클만 표현했다. 중독자들은 뇌가 굳어져 단어가 생각이 안나 말을 천천히, 더듬대며 한다고 해서 그런 점들을 중점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더 글로리’ 이전보다 이후가 중요…소외된 계층에 용기줄 수 있는 기회

‘더 글로리’를 통해 만난 송혜교, 임지연, 차주영, 박성훈, 김건우 등은 그에게 소중한 동료로 남았다. 김히어라는 “파트1 공개 뒤 갑작스러운 세간의 관심에 어쩔 줄 몰라 했던 내게 혜교 언니는 ‘너를 믿어, 뭘 해도 잘 해낼 거야’라고 했고 지연이는 ‘언니 너무 조급해 하지 마라, 체할 만큼 안 해도 된다’고 조언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모든 출연진이 쟁쟁했지만 가장 ‘기가 빨렸던’ 연기 파트너는 의외로 혜정 역의 차주영이었다. 김히어라는 “극중에서 사라를 망친 게 혜정이다 보니 차주영과 연기할 때 기가 빨리는 느낌이었다”며 웃었다.

사라는 극 후반부에 자위와 구강성교 동영상이 퍼지며 ‘리벤지 포르노’의 주인공이 된다. 결국 그는 친구인 혜정에게 상해를 입혀 실형을 살게 된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사라에 대한 형벌이 너무 약하다는 반응과 사라도 피해자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김히어라는 “사라는 친구는 물론 부모에게도 손절당한 상태이기 때문에 출소 뒤에도 혼자 남는다”며 “신과 약물도 없이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는 점에서 사라에게 최고의 복수다”라고 설명했다.

‘더 글로리’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학교폭력 사태를 환기하며 글로벌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김히어라는 “처음 제작진과 약속한 게 가해를 정당화하지 말자는 것이었다”며 “과거의 폭력사태를 환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시점을 살고 있는 아동, 청소년들에게 드라마가 용기를 줬으면 한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mulga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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