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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대구=김동영기자] 은퇴 후 25년이 지났다. 39세에 은퇴해 현재 64세다. 어느새 할아버지도 됐다. 그런데 지금 체중이 현역 마지막 시즌과 같단다. 무시무시한 자기관리다. 이유가 있다. 결국 야구를 위해서다. 자신의 손자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고 싶었다는 ‘레전드’, 이만수(64) 전 SK 감독 이야기다.
이 전 감독은 30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2 KBO리그 롯데전 현장을 찾았다. KBO리그 40주년을 기념해 선정한 레전드 40인 중 ‘원년을 빛낸 스타’로 선정됐다. 전 소속 구단 홈 경기에서 시상식을 진행하기로 했고, 이날 라이온즈파크에서 시상식이 열렸다. 시상식 후 시구도 했다.
많은 팬들이 라이온즈파크를 찾았다. 삼성을 응원하는 것도 있지만, 이 전 감독을 보기 위해 온 팬들도 적지 않았다. 현역 시절 등번호 22번과 ‘이만수’가 새겨진 유니폼을 들고 온 팬도 보였다. 이날 이 전 감독은 오후 5시경 라이온즈파크에 도착했고, 시구 후 경기도 지켜봤다.
바쁜 일정이다. 현재 베트남에서 야구의 씨를 뿌리고 있다. 앞서 라오스 야구 보급에 앞장섰고, 이제 베트남이다. 이 전 감독의 노력 속에 28일 베트남 최초로 전국 단위 야구대회인 ‘제1회 내셔널컵 야구클럽 챔피언십 대회’가 열렸다. 대회 개막전 시구를 했고, 경기도 지켜봤다.
이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29일 밤에 도착했다. 다시 30일 대구로 내려왔다. 차가 밀려 6시간 이상 걸렸단다. 강행군이다. 그래도 팬들을 보기 위해 기꺼이 라이온즈파크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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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감독은 “내가 삼성의 창단 멤버인데, 삼성에서만 16년을 뛰었다. 원년을 빛낸 스타로 꼽혀 감회가 새롭다. 제일 먼저 손자한테 자랑하고 싶었다. 사실 손자가 야구를 잘 몰랐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요즘은 야구에 푹 빠져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며 너털웃음을 보였다.
이어 “야구장 한쪽에 (영구결번 된) 내 등번호가 걸려 있다. 손자에게 보여줬다. 나를 보고 환호하는 관중들을 보고는 손자가 놀랐는지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손 흔들어줘야 해’라고 해줬다. 야구를 52년 했는데 오늘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닌가 싶다. 오늘 날이 흐리길래 제발 비가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빌었다”며 껄껄 웃었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거포이자 포수로 활약했던 이 전 감독은 지난 1997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리그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지만, 변변한 은퇴식조차 없이 방출을 당했다. 이후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고, 국내로 돌아와 SK에서 수석코치-2군 감독-1군 감독을 지냈다.
이후 2014년 홀연히 라오스로 건너갔다. 야구 전파를 위해서다. 야구 불모지에 씨앗을 뿌리는 일.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비용도 이 전 감독이 전적으로 부담했다. 지극정성을 기울인 끝에 라오스에도 야구협회가 생겼다. 지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도 참가했다. 라오스 야구의 국제무대 데뷔전. 이 전 감독은 라오스 야구협회 부회장 자격으로 유니폼을 입고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라오스에 그렇게 씨를 뿌렸고, 어느 정도 싹도 텄다. 그리고 눈을 베트남으로 돌렸다. 직접 날아가 현장에서 발로 뛰었고, 지난해 4월 베트남 야구협회가 창설됐다. 이 전 감독의 지원이 있었음은 불문가지다. 다시 1년여가 흘러 최초로 베트남 전역으로 생중계되는 전국야구대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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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감독은 “베트남에서 울퉁불퉁한 야구장을 보다가 오늘 라이온즈파크에 와서 보니 야구장이 참 좋다. 라오스는 이제 야구장이 잘 지어졌지만, 베트남은 아직 없다. 이번 대회도 축구장을 개조해서 진행했다. 정부에서 땅을 제공해주기로 했다. 그라운드 4면이 있는 야구장을 만들고자 한다. 그러면 국제대회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라오스-베트남에 국내도 오가고 있다. 환갑을 넘긴 나이임을 감안하면 만만치 않은 행군이다. 건강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자 이 전 감독은 “안 그래도 살을 뺐다. 감독을 그만두고 나온 후에 살이 자꾸 찌더라. 94㎏까지 갔다. 살을 뺐다. 지금 80~81㎏다. 딱 현역 마지막 시즌 몸무게다. 덕분에 건강도 좋아졌다.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1997년까지 뛰고 은퇴했다. 그때 몸무게와 64세인 지금 체중이 같다. 그만큼 관리를 잘하고 있다.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이 전 감독은 “인도차이나 5개 나라에 야구를 보급하는 것이 내 꿈이다. 어차피 내가 다 할 수는 없다. 다 이루지 못하고 갈 것이다. 후배들이 해줄 것이라 믿는다. 나는 주춧돌을 쌓고 있다. 후배들이 이 돌다리를 밟고 왔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도움도 많이 필요하다. 초창기에는 다 내 돈으로 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더라. 그래서 헐크 파운데이션이라는 재단을 만들었다. 십시일반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 어렵다.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베트남은 10년 만에 프로농구리그가 생긴다고 한다. 야구도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곳에 무언가를 전파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야구라고 다를 리 없다. 무모한 도전이라는 말도 나왔지만, 뚝심으로 밀어붙인 덕분에 성과를 내고 있다. ‘헐크’는 환갑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현역에서 뛰고 있다.
raining99@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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