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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박현진기자] ‘역주행 신화’는 비단 가요계에서만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 경마에도 ‘역주행의 아이콘’이 있다.
최근 가요계에서는 걸그룹 ‘브레이브걸스’가 예상치 못한 ‘역주행’으로 주목받고 있다. ‘롤린’(Rollin’)이란 곡으로 군부대 위문 공연을 했던 유튜브 영상이 핫이슈로 떠오르면서 순식간에 음원 차트 1위를 꿰차는 등 기적같은 역주행 신화를 만들어냈다.
한국 경마에도 ‘역주행’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주인공들이 있다. 연차가 찰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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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성이면 감천’ … 직접 풀까지 뜯어먹이는 박종곤 조교사
1997년 데뷔한 박종곤 조교사는 지난 2015년부터 물이 오른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매년 두 자리 수의 승률과 10억 원이 넘는 순위상금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 경마공원 조교사들 중 열손가락 안에 가뿐히 든다. 상위권에 합류하기까지 약 20년이 걸린 ‘역주행’이다.
1997년 데뷔 후 첫 2~3개월 동안 박종곤 조교사는 빈 마방을 지켜야 했다. 우연치 않게 선배 조교사의 말 12두를 받아 조교사 생활을 시작했으나 처음부터 성적이 좋을 수는 없었다. 입증된 결과물이 없다보니 마주들도 선뜻 말을 맡기지 않았다. 그러나 2013년 7월 경주마 ‘마리대물’을 만나며 조교사 생활에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박 조교사는 정체기에 있던 ‘마리대물’을 살뜰히 돌봤다. ‘마리대물’은 그해 ‘KRA컵 클래식’(GⅢ, 2000m) 우승 트로피를 안겨줬다. 박 조교사 특유의 ‘지극정성’ 관리법이 빛을 발하자 차츰 다른 마주들도 박 조교사를 찾기 시작했다. 그것이 2015년부터 시작된 승승가도의 발판이 됐다. 2016년 명마 ‘청담도끼’를 만난 뒤 더욱 속도가 붙었다. ‘청담도끼’가 안겨준 대상경주 트로피만 자그마치 8개다.
박 조교사는 ‘손수 풀 뜯어 먹이는 조교사’로도 유명하다. 민들레는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할 뿐 아니라 경주마들이 좋아해 경마공원 주변에서 직접 채취해 먹이곤 한다. 바쁜 하루 일과 속에도 짬을 내 비가 와도, 벌레에 물려도 민들레를 캔다. 자식 같은 경주마들이 맛있게 먹으면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맑고 예쁜 경주마들의 눈을 보면 절로 힘이 난다고 한다.
박 조교사는 “심청사달, 마음이 깨끗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말이 좌우명이다. 욕심을 버리고 그저 열심히 정성을 다하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고 생각한다”며 “훈련시키는 경주마들을 정성을 다해 가꾸다 보면 혈통이 좋지 않은 경주마일지라도 성적을 내준다. 그런 보람으로 조교사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조교사는 지금까지의 길을 돌이켜 “후회 없이 왔다”고 평한다. 그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며 묵묵히 걸어온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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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년 만에 ‘커리어하이’ 달성한 이준철 기수
1999년에 데뷔해 올해로 23년차인 베테랑 이준철 기수는 코로나19로 경마가 온전히 시행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지난해 승률 22.6%, 복승률 35.8%라는 기수 생활 중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며 말 그대로 ‘역주행 신화’를 썼다. 다승 또한 2019년 23위에서 13계단이 오른 다승 10위, 24승을 달성하며 톱 10에 올랐다. 출전 경주수가 10위권 내에서 가장 적었음(106회)에도 불구하고 문세영 기수 다음의 승률을 이뤄냈다. 그의 선전에 더욱 눈길이 가는 이유다.
이렇게 기량이 무르익어 가는 것에 대해 이 기수는 모든 주변 사람들의 덕이라며 공을 돌렸다. 그는 “십년이 넘는 기간 동안 호흡을 맞춰오고 있는 김대근 조교사(48조)와 말도 보러 다니면서 안목을 길렀고 마주, 조교사, 관리사들과의 좋은 팀워크가 한몫했다”며 “힘든 시기에 자신을 믿어준 조교사와 함께 일하다보니 차곡차곡 신뢰가 쌓여 버틸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이 기수가 지난해 기승했던 경주마들도 한국 경마계의 떠오르는 샛별들로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다섯 번의 출전에 4번 우승을 기록하며 남다른 성적을 내고 있는 ‘흥바라기’는 이 기수와의 호흡과 함께 3세마 다크호스로 큰 기대를 받고 있다. 그는 “코리안더비(GⅠ, 1800m) 3위, 농림축산식품부장관배(GⅡ, 2000m) 3위를 이룬 ‘흥행질주’도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말이다. 지난해 탔던 말 중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기승 능력을 기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도 호성적의 비결이었다. 그는 승마 선수 출신인 아내에게 말을 세심히 다루는 법, 굴레나 재갈을 왜 써야 하는 지 등 기본 마술에 대해 세심히 조언을 받았다. 학창시절 레슬링을 했던 경험으로 지금까지 꾸준한 체력관리를 하고 있다는 점도 ‘비상’(飛上)의 원동력이다. 그는 지금도 매일 하루 1시간 이상씩 꾸준히 체력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이 기수는 “정상경마가 돌아왔을 때 경마 팬들께 더 좋은 모습으로 보답하겠다. 올해 다시 정점을 찍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j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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