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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장수군은 산좋고 물좋은 고을로 소문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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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던 것은 이제 옛말, 장수는 말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출장 중에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야, 어디냐. 오늘 성수랑 영택이랑 원당에서 만날건데”
“나 출장 중이야”
“어디야?”
“장수”
“뭐! 어디라고?”
“장수!”
“뭐? 말을 똑바로 해”
“장수라니까 장수, 전북 장수!”
“뭐… 하여튼 알았다. 잘 다녀와.”

장수는 그런 곳이다. 전주나 평창처럼 익숙하지 않다. 거기서 어딜 가냐, 뭐 먹고 와라, 물어보지도 조언하지도 않는다.
눈치를 보아하니 장수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분위기다. 기껏해야 장수만세 정도를 떠올릴 뿐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깨끗하다. 아직 때묻지 않았다. 장수에 가야하는 이유다. 늦여름 장수에는 탁족을 하며 늦피서를 즐기기 좋은 계곡도, 기세좋은 산도 있거니와 맛난 사과가 익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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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는 사과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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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없이 맑은 여러 계곡에서 흐르는 차가운 물은, 금강 발원지인 장수(長水)의 명성에 걸맞다.

◇땅이 좋아, 장수만세
전라북도 장수. 듣기에도 참 좋은 지명이다. 그도 그럴것이 머나먼 옛날 진시황(BC259~210)의 집착부터만 해도 인간의 꿈은 늘 무병장수의 기원이 아니었던가. 한자로는 장수(長水)를 쓴다. 천리(394.79㎞)에 이르는 기나긴 금강의 발원지가 이곳 장수 뜬봉샘이다. 산높고 물이 좋은 곳이다.

한반도의 대표적인 고원지대 중 장수가 속한다. 혹자는 남쪽의 개마고원이라 부른다. 해발 400~500m 고원 위에 분지 형태로 들어앉은 고원이 바로 장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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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사당에서 바라본 장수읍의 풍경.

그래서 예전에는 무진장이라 했다. 굳이 서울 기준이 아니래도 무진장 멀고 외졌대서 무주, 진안, 장수의 첫글자를 따 ‘무진장’이라 불렀다.
덕분에 잘 보관됐다. 앙코르와트가 정글에서 툭 튀어나왔듯 장수군도 고속도로가 뚫리며 그 진면목이 공개됐다.

싸리재를 넘었다. 산이 파도처럼 춤을 추고 있다. 태풍 덕(?)인지 구름이 아주 멋지다. 지대가 높은 장수에 와서 구름과 산이 함께 있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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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지역 장수는 한우와 말들이 잘 자라나는 고원지대다.

차를 몰고 돌아다녀보니 서울보다 너른 장수땅에는 이같은 고갯길이 한 둘이 아니다. 집재, 비행기재 등 구비구비 고갯길이 펼쳐진다.
전체 면적의 80%가 산인 이 높다란 땅에 소와 말이 잘 자라고 있다. 장수한우와 경주마들이 장수의 대표적인 특산품이다. 구미에서도 서늘한 산간고원 지대에 목장을 두는 것처럼 장수땅에도 소와 말을 사육하는 농가가 많다.
장수군이 해마다 추석을 앞두고 ‘한우랑 사과랑 축제’를 벌이는 것도 품질 좋은 한우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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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는 의로운 죽음을 통해 나라를 구한 논개의 고장이다. 논개를 모신 사당 의암사(義巖祠).

경우는 좀 다르지만 개(介)도 있다. ‘몸 바쳐서 떠내려 간~ 그 푸른 물결 위해~’ 문득 노랫말이 떠오르는 의기(義妓) 논개(論介). 진주 촉석루에서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안고 뛰어든 논개가 바로 장수 장계 사람이다. 성이 주씨인 논개는 알려진대로 기생이 아니었다고 한다.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경회의 후처였던 주논개는 남편이 전사한 후, 나라를 위해 소중한 목숨을 내던져 그같은 의거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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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상상으로 그려냈지만 결연하고 의연한 절개가 드러나는 논개의 영정.

대곡리 주촌마을은 주씨의 집성촌으로 논개의 생가가 있던 곳이다. 지금 이곳에 논개생가마을이 있는데 이곳의 정취가 아주 좋다.
돌기와로 올린 예쁜 집들이 언덕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앉은 마을. 옆에는 작은 개울에 물레방아가 빙빙 돌고 정원에는 색색의 여름꽃들이 한들한들 반기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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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읍의 너른 들이 가장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논개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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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자기한 집들이 언덕을 따라 늘어선 동화 속 그림같은 논개생가마을.

장수읍 두산리에는 논개사당 ‘의암사’가 마련되어 있다. 논개를 실제 본 적은 없지만 영정을 보니 그 위엄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굳은 기개가 느껴지는 듯 꽉 다문 입술,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는 단아한 눈. 아마도 논개는 이 얼굴을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사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역시 실제 본 이들은 아무도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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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세상사를 잠시나마 모두 잊을 수 있는 조용한 청정고을 장수.

◇물이 좋아 장수(長水)
토옥동 계곡을 갔다. 예전에 만난 전주 사람 하나가 자신이 꽁꽁 숨겨놓고 아무에게도 안알려주는 곳이 하나 있는데 그곳이 바로 토옥동 계곡이라 했다.
너무도 궁금했던 나머지 내가 이번 여름에 장수에 꼭 가야겠다고 생각한데는 바로 이 ‘토옥동 계곡’이 있기도 했다. 차를 몰고 양악호를 올라갈 때부터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조그만 다리를 지나자 드디어 토옥동 계곡이 등장했다.

허나 웬걸. 입구부터 차들로 꽉 막혀있다. 뭐? 아무도 몰래 꽁꽁 숨겨놔? 원래 유명한 계곡이었다. 토옥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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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파크가 따로 필요없을 정도로 시원한 토옥동 계곡.

남덕유산(1507m) 자락 토옥동 계곡은 삿갓봉(1410m)을 옆에 끼고 깊숙히 들어간 계곡으로 무려 7㎞ 길이에 이른다. 언제나 수량이 많아 크고 작은 지류와 만났다 헤어지면서 작은 폭포와 소(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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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에는 늦더위 물놀이로 더위를 깨끗히 씻어버릴 수 있는 계곡이 수두룩하다.

어른 예닐곱이 동시에 서도 될 만한 너럭바위부터 뾰죽한 놈, 둥글한 놈 등 기암들이 작은 풀장 규모의 소를 에워싸 시원한 계곡에서 늦더위를 씻어가기에 딱이다. 커다란 가마소(각시소)와 열길 높이에서 시원한 물보라를 일으키는 지추골 폭포 등이 유명하다.

한창 휴가 때라 그런지 수영이 금지된 곳이지만 물에서 풍덩 뛰어노는 피서객들이 제법 많다. 워터파크에서처럼 스릴만점의 다이빙을 할 정도로 깊다. 물은 차고 맑다. 하지만 가장 부러운 것은 물놀이객이 아니라 산그늘 너른 바위에서 낮잠을 청하는 이들이다. 탁족 정도 만 즐기다 낮잠을 자는 것은 합법적이면서도 시원하니 더위를 까맣게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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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한 장수의 계곡은 세인들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인근 지역에서는 명품 계곡으로 소문날 만큼 시원하고 수려하다.

녹음 속 신선한 공기를 만끽하며 깊게 잠든 이들과, 배낭에다 긴 바지에 양말까지 챙겨 신은 내 모습을 번갈아 보고있자니 이게 대체 뭐하는 일인가 싶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아무튼 부러워 죽을 지경이라 일부러 커다란 헛기침 괴성을 내 단잠을 깨우고는 냉큼 도망쳤다.

토옥동 계곡은 1986년 댐 건설로 양악호가 생겨난 이래 하류는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턱’이 없다(비단 양악호란 이름 때문은 아닐테다). 다만 상류는 등반로를 오랫동안 통제한 덕에 수려한 경관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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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는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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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는 사과와 한우, 말 그리고 의로운 논개의 고장이다.

사실 장수에서 가장 유명한 계곡은 장안산군립공원 내 덕산계곡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예전엔 참 좋았는데…”하고 말끝을 흐린다.
덕산계곡은 용림저수지가 들어서며 예전에 비해 물이 많이 탁해졌다. 대신에 나무데크 탐방로를 따라 걷는 숲길 산책은 여전히 괜찮다. 울창한 숲은 말 그대로 청량하고 신선한 공기가 가득해 이곳에서 숨을 쉬는 것만으로 뭔가 대접받는 기분이다.

인근 방화동 계곡 오토캠핑장도 좋다. 오토캠핑 문화가 이처럼 엄청난 인기를 끌기 훨씬 전인 10여년 전 국내 최초로 조성된 오토캠핑장이다.
오토캠핑장 인근에는 계곡을 따라 텐트촌이 이어지고 산림문화휴양관, 롯지, 자연학습장, 삼림욕장, 전망대 등이 있어 이곳에서만 며칠을 보내도 심심하지 않다. 계곡 상류에는 영화 ‘남부군’에 등장한 용림제가 있다. 발가벗고 뛰어들던 장면이 인상깊었는데 누구나 이곳에 오면 똑같이 따라하고 싶을 정도로 흡인력이 강하다.
장수 | 글·사진 이우석기자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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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읍내에 위치한 논개 사당 아래에는 시민들이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여행정보
●둘러볼만한 곳=양악마을에는 한글학자 건재 정인승(1897~1986) 선생을 기린 기념관이 있다. 장수향교 대성전(보물 272호). 1986년 수몰 후 옮겨 복원한 논개생가마을(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 타루공원 타루비(천천면 장판리), 정상윤 가옥(산서면 사계리), 권희문 가옥(오산리 오메마을), 장재영 가옥(번암면 노단리) 등 고택도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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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예쁜 여름꽃들이 정원을 이룬 섶밭들산촌생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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섶밭들산촌생태마을에서는 전통 술 빚기를 체험할 수 있다.

장수군의 대표적인 산촌체험마을인 섶밭들산촌생태마을(천천면 연평리)에서는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산촌 생활을 즐기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배워볼 수 있다. 이곳에선 장수향토음식 체험 등을 통해 풋풋한 고향의 맛을 느껴볼 수 있으며 전통 술 담그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도시로부터 이 마을로 귀향한 이장님이 다양한 전통주 제조법을 직접 전수해 준다. 섶밭들산촌생태마을 (063)351-8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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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고장 장수에서 체험하는 승마.

말의 고장 답게 장수승마체험장에서 체험 승마를 즐기는 것도 좋다. 장수군청 문화체육관광사업소 (063)350-5557, 장수문화원 (063)353-5301, 장수승마체험장 (063)350-2579

●장안산 등반=백두대간 줄기의 국내 8대 종산 중 호남 종산으로 꼽히는 장안산 산행은 무령고개~정상~남서릉~범연동의 무룡고개 코스(3시간 소요)와 계남면 장안리 괴목 기점코스(3시간30분 소요), 장수읍 덕산리 범연동 ~남서릉 능선, 연주동~덕산계곡 남서릉 코스(4시간 30분 소요) 등을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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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지대에서 자라난 무항생제 장수한우를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

●먹거리=장수군은 ‘무항생제’ 한우로 유명하다. 장수군청 앞 농특축산물 로컬푸드직매장 ‘장수한우명품관’에선 저렴한 가격으로 한우를 구입해서 맛볼 수 있다. (063)352-8088
장수군에서 반드시 즐겨야 할 식도락은 바로 ‘장수밥상’이다. 산서면 신창리 이장댁에서 맛볼 수 있는 ‘장수밥상’은 장수군이 농가맛집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구축한 로컬 식재료를 이용한 메뉴로 입소문을 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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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한 고향의 맛을 제대로 즐겨볼 수 있는 장수밥상.

토박이인 이장댁 두 내외가 직접 말린 시래기와 각종 산채나물, 장아찌 등으로 차려낸 장수밥상은 도시민들은 실로 접하기 드문 토속적인 맛을 선보인다. 반찬 하나하나가 신선하고 맛깔난다. 어느 하나 손이 가지 않는 게 없다. 화려하기보다는 감격스러울 정도로 정성이 깃든 음식이다.
한우와 버섯를 넣고 전골식으로 끓여낸 불고기를 메인으로 한 4인 상이 기준이며 반드시 사전에 예약해야 한다. (063)351-3724
이우석기자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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