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서 이창까지 국내선을 갈아 타야한다. 이창의 산샤국제공항은 청량리 역만하다. “아, 시골이군” 이창의 첫 인상이다. 그런데 인구가 무려 450만 명이란다. 부산보다 많다. 인근엔 삼국지의 주무대인 ‘형주’ 징저우(荊州)가 있는데 이곳 인구는 600만명이 넘고, 성도인 우한(武漢)은 1100만명에 달한다. 실제 이창 도심을 갔더니 거대한 도시였다. 괜스레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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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하늘길과 쓰촨 분지에서 화중을 잇는 육로, 장강의 물길이 도시를 관통하는 요지다. 장강 중상류 이창이 관광지로 유명하게 된 것은 오로지 산샤댐 덕분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산샤(삼협)댐이 어마어마한 저수량에 걸맞게 엄청난 관광객을 불러모은다. 산샤댐은 만리장성 이후 최대 토목공사로 꼽힐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오죽했으면 ‘산샤댐으로 인해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졌다’는 설까지 나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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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강(양쯔강) 중·상류 후베이성 이창의 세 협곡을 잇는 산샤댐은 알려진대로 세계에서 가장 크다. 높이 185m에 길이 2.3㎞, 최대저수량이 약 390억톤으로 규모도 크지만 발전 용량이 대단하다. 발전설비용량 2250만㎾로 미국 후버댐(208만㎾)의 열배가 넘고 일반 원자력 발전소의 스무 배가 넘는다. 워낙 저수량이 워낙 많아 ‘황해 염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까지 품은 곳이다.
중국 정부가 공항에서 탑승객으로부터 뺏은 엄청난 양의 ‘가스라이터’가 있을테니 그걸로 화력발전을 하면 될텐데 뭐 하러 이만한 댐을 지었을까. 생각해보니 관광산업으로서의 매력도 크다.
이곳은 산샤(삼협) 크루즈를 타거나 버스투어를 이용해 둘러볼 수 있다. 최근 댐에 변형이 생겼다는 말도 있지만 여전히 수많은 내외국인 관광객이 찾고 있다. 중국인들은 자국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 곳을 찾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장강 크루즈를 이용하거나 ‘세계 최대’란 수식어에 반해 꼭 들르는 곳이다. 우리가 ‘세계 최대’, ‘세계 최초’, ‘세계 유일’에 약한 것처럼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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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짙은 물안개를 피우는 댐은 실로 거대하다. 위용당당한 자연을 가로막아 에너지를 분출하는 산샤댐을 요모조모 즐기기 위해 전망대를 오르고 주변을 걷는다. 전용버스를 이용하면 들러보는데 반나절 정도 걸리고 크루즈를 타고 댐을 거슬러 지나볼 수도 있다. 댐 옆에 선박용 갑문 엘리베이터와 동력 엘리베이터가 있어 대부분의 대형 선박도 장강 수운을 이용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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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을 거스르다
양쯔강으로도 불리는 장강은 아시아에서 가장 긴 강(6300㎞)이다. 원래 중국 육조시대 이전에 강(江)이란 글자가 장강을 부르기 위해 생겨났다고 한다.(‘하河’는 황허를 이르는 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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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단한 강의 중상류는 기암괴석의 협곡을 꿴다. 호반도시 이창에서 선눙자로 이어지는 고평협호의 짧은 크루즈 일정을 이용하면 좋다. 장판을 깔아놓은 듯 잔잔한 비취색 물위를 썰매처럼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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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이 채 안걸리지만 간단한 다과를 즐기며 주변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국내에선 볼 수 없는 거대한 봉우리 아래로 예쁜 집들이 물가에 뚝뚝 서있다. 마치 노르웨이 피오르 크루즈에서 본 느낌이다. 거대한 산봉우리가 하늘까지 치솟아 있고 그 아래로 물은 유유히 흐른다. 이런 산수가 있으니 인자(仁者)가 나고 지자(智者)가 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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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함께 꿈같은 시간도 함께 흐른다. 도착하니 선눙자다. 항에 닿아 신농의 땅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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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의 신이 함께한 청정의 땅
중국에서 유일한 임구(林區)가 선눙자다. 행정구역이 아예 임구다. 신농씨가 약초를 캐고 농사일을 가르쳤다는 곳. 최저 해발 2000m의 고산지대로 다양한 동식물이 사는 곳이다. 최근에야 관광지로 개방됐을 정도니 그 때묻지 않은 자연이야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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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눙정(神農頂)에 가기 위해 계속 산을 넘는다. 천길 낭떠러지 옆으로 난 구불구불 산길을 버스를 타고 지난다. 길은 고산의 허리를 가르고 멀리 근육질 산세가 첩첩 겹쳐 보인다. 바위는 그야말로 집채만하고 장자제(張家界)에서나 볼 법한 바늘 모양 추암들이 계곡을 메운다. 기내에서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고 오느라 무척 졸렸지만 버스에선 눈을 잠시라도 감을 수가 없다. 이리저리 휘어 감기는 길은 진정한 경관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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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농씨는 중국 삼황오제 중 가장 칭송받는 신화 속 인물이다. 삼황오제에서 황제란 말이 나왔으니 그 위엄이야 더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신농‘씨’라 부르니 이상하다.
희한하게도 염제(炎帝) 신농 열산씨(神農 烈山氏)는 까마득한 옛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생년월일이 정확하게 전해진다. 기원전 3218년 4월26일생이다. 제위기간을 놓고 유추해보자면 단군왕검이나 이집트 쿠푸보다 선배(?)가 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씨(천수 강)의 시조이며 천수 강씨에서 갈라져 나온 한국 진주 강씨, 온양 방씨 역시 신농을 선조로 모신다. ‘진주강씨 대동보’에 따르면 천수(天水·감숙성 위천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해마다 음력 4월26일이면 중국에선 ‘신농대제탄신(神農大帝誕辰)’ 제를 지낸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칩 이후 풍년을 기원하며 선농단 제사를 지낼 때 신농을 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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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화 속 농업, 의학, 약초의 신이며 불을 관장하는 신, 태양을 상징하는 신이 바로 신농이다. 희랍신화로 따지면 아폴로와 제우스, 데메테르, 헤파이스토스, 히포크라테스 등을 모두 합친 인물이다. 쇠뿔을 단 머리를 지녔으며 각종 약재와 풀, 곡식, 열매를 직접 먹어보며 인간에게 이로운지 해로운지를 알아냈다고 한다. 온몸이 썩고 몇 번을 죽을 뻔하며 체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에게 농사를 가르쳤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신농을 모시는 신농단이 있다. ‘조커’가 서있을 것 같은 수많은 계단 위 좌우 뿔이 난 신농의 두상이 우뚝 서있는데 그 모습이 위풍당당하다. 빙글빙글 수백번 굽이치는 고갯길을 따라갈 때 양쪽에 펼쳐지는 험준한 고산준령을 보면 신농이 이곳에서 약초를 캤다는 전설은 정녕 거짓이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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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리산 높이 쯤인 해발 1700~1800m 쯤엔 대구호(大九湖) 생태습지가 있다. 이름처럼 아홉개의 호수가 드넓게 펼쳐진 곳이다. 습지 사이로 데크길이 놓여있어 산책과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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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면 선눙자는 유네스코 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람사르습지 등에 지정된 대자연을 품은 세계적으로도 몇 안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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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귀한 풍경 속 희귀한 동식물
중국의 3대 희귀동물 중 판다와 황금원숭이(금빛원숭이)도 이곳에 산다. 이 두 희귀동물은 매운 것을 좋아하는지 쓰촨(四川)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동물에게 주민등록이 아무 의미가 없듯 쓰촨 인근의 선눙자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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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전 서유기의 주인공 손오공의 모델인 황금원숭이(金絲猿) 서식지를 찾았다. 깊은 산중 보호구역에 약 1000여 마리 정도가 살고 있는데 황금원숭이에 대한 생태적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이중 40~50마리 정도를 탐방객과 만날 수 있도록 개방했다.
황금원숭이는 화려한 금빛털과 들창코가 특징이다. 마침 동면에 들어가기 전 짝짓기 기간이라 가이드는 특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예민해진 탓이다. 얼룩무늬 보호의를 입고 다리 입구에서 원숭이떼를 만날 수 있다. “갹갹갹” 소리가 들리더니 정말 금색 털망토를 두른 원숭이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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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난간을 타고 기어오더니 나뭇가지에 풀쩍 뛰어오른다. 연신 두리번 경계를 하는 놈, 새끼를 배에 매단 놈(?), 땅콩이 탐나 손만 바라보는 놈 등별놈이 다 있다. 대나무 이파리를 손에 들고 우걱우걱 씹는 모습이 영락없이 사람이다. 길게 드리운 털가죽이 너무도 아름다운 탓에 밀렵이 횡행, 세계적으로도 1만여 마리 밖에 남지 않은 희귀종이다. 탐방객도 직접 접촉해서는 안된다. 생태연구종 임대를 통해 국내 에버랜드에서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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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아치의 관을 닮았다는 관먼산(官門山) 아래에는 판다도 있다. 중국의 상징이기도 한 자이언트판다(大熊猫)는 쓰촨 등 일부 지역에만 살고있는데 이웃 동네인 이곳 선눙지에도 두 마리가 터를 잡았다. 중국 어디든지 판다를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서 이곳으로 판다를 보러오는 중국인들도 많다.
야생 상태 그대로인(‘설인’격이다) 원시인 야인(野人)이 최근까지도 살았다는 이야기가 남아있는 선눙지, 관먼산에선 다양한 시설을 통해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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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 경관 수려하고 미인 많은 곳, 선눙자
(돌아올 때까지 끝내 못봤지만) 선눙자는 미인이 많은 지역이라고 한다. 중국 4대 미인 왕소군의 고향 마을도 선눙자 소군고리(昭君古里)다. 낡았음에도 꽤 화려한 분위기의 왕가고택과 그 부속 건물들, 왕소군 동상, 정원 등이 남아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왕소군(王昭君)은 양귀비, 서시, 초선과 함께 중국 4대미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절세미인이다. BC 1세기 경 인물로 이들 중 서시(BC 5세기)에 이어 두번째 ‘언니’이며(?) 흉노의 호한야 선우(呼韓邪單于)의 아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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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한나라 원제의 궁녀였지만 국가의 멸망을 부른 다른 경국지색 미인들과는 달리 ‘나라를 위해’ 기꺼이 적대국 원수의 아내로 희생적(?) 결혼을 한 까닭에 중국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자발적 희생이었는지는 기록에 나오지 않는다.) 문헌에 따르면 후궁을 워낙 많이 뒀던 한 원제는 늘 궁녀 초상화를 본 후에 동침을 했는데 궁녀들은 화공에게 예쁘게 그려 달라며 뇌물을 줬다. 뇌물을 주지 않았던 왕소군은 못생긴 초상화 탓에 궁녀를 요구한 흉노에 강제로 보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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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절색 미녀를 얻은 흉노의 호한야 선우는 기뻐한 나머지 왕소군과 결혼하고 한나라와 화친을 유지했다. 왕소군은 흉노에서 살며 한족 문화를 전파하는데 기여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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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소군은 중국의 각종 문헌에 등장한다. 흉노의 옷을 입고 비파를 든 모습으로 남아있는데 정작 실제 전신상을 보면 목이 길죽하고 무덤덤하고 차가운 표정이 그리 예뻐 보이진 않는다. 시인 이백, 동방규 등의 작품 중에는 왕소군의 아름다움과 슬픈 처지를 노래한 것이 꽤 많다. 당대 시인 동방규가 지은 ‘소군원(昭君怨)’에는 그 유명한 ‘春來不似春(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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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맛좋은 청정산골
깜짝 놀랐다. 채소 일색의 찬을 중국에서 맛보다니. 해발 2000~3000m 고랭지에서 신선한 채소과 과일, 차 등을 유기농 재배하며 살아가는 선눙자 사람들의 식탁은 중국 다른 지역과는 사뭇 다른 요리를 내온다.
해바라기씨유나 유채기름으로 채소를 볶아낸 음식이 많다. 고기 종류라고 해봤자 토종 흑돼지를 훈제한 것이나 오리, 닭 등 가금류에 특산 민물생선이 전부다. 채식주의자가 이곳을 찾는다면 홀딱 반할 맛이다. 느끼한 맛과 향을 즐기않는 한국인의 입맛에도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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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감자 맛의 기준이 된다는 선눙자 감자를 비롯해 산마와 옥수수 등 강원도 심심산골 음식처럼 투박해보이지만 정말 맛이 좋다. 아삭하고 달콤한 양파, 쌉쌀하고 청량한 맛을 내는 고구마, 여주, 오이, 무도 여태껏 볼 수 없었던 맛을 낸다. 척박한 고산지대다보니 콩을 사용한 두부 요리도 발달했다. 튀겼던 삶았던 간에 콩 자체가 고소하고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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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와 귤, 대추 등 고랭지 재배 과일도 정말 달다. 전혀 다른 종류처럼 느껴진다. 싸오고 싶을 정도였다(검역상 동식물은 절대 가져오면 안된다). 앞으로는 ‘중국산 식재료’에 대한 편견이 사라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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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론 장쾌한 풍광, 귀로는 맑은 물소리와 산새소리(안전벨트 알람도 들린다)를 즐기고 코에는 신선한 공기가 밀려든다. 여기에 입까지 즐거우니 오감만족 여행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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