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 인터뷰 사진 (8)

[스포츠서울 정하은기자]매 작품 새로운 연기 변신을 선보이는 배우 이준혁이 ‘역대급 악역’으로 돌아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지난달 20일 종영한 tvN 월화극 ‘60일, 지정생존자’(이하 지정생존자)는 국회의사당이 갑작스러운 폭탄 테러 공격을 받아 붕괴되고 국무위원 중 유일하게 생존한 환경부장관 박무진(지진희 분)이 60일 간의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지정되면서 테러의 배후를 찾아내고 가족과 나라를 지키며 성장하는 이야기.

‘지정생존자’는 마지막회 시청률 평균 6.2%, 최고 7.9%(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에 대해 이준혁은 “다행이다”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환하게 웃었다.

극중 이준혁은 타고난 군인이자 리더 오영석 역을 맡았다. 전우를 잃은 슬픔으로 국가에 대한 원망을 키워 온 그는 극 초반 테러 속 극적인 생존자처럼 비춰졌지만 왜곡한 야망을 가진 테러 공모자였고, 아끼던 부하의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이해 충격을 안겼다.

오영석의 결말이 아쉽지는 않았냐고 묻자 “전 오히려 더 빨리 죽길 원했다”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캐릭터의 비중보단 작품의 템포가 더 중요하다 생각했다. 할 얘기가 없는 캐릭터나 더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캐릭터는 극의 재미를 떨어뜨린다. 오영석은 그 기능을 다했기 때문에 적절한 때에 죽은 거 같다. 14회면 충분하다”고 돌아봤다.

짧은 분량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그러기엔 이거저거 오래 다 해봐서”라고 웃은 이준혁은 “그런 것보단 내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게 더 중요한 거 같다. 나 역시도 하나의 소비자고 시청자이지 않나. ‘내 안의 유행’에 따라 하고 싶은 역할과 장르가 바뀐다. 완전 가벼운 얘기를 하고 싶거나 따뜻한 얘기 하고 싶거나”라고 이야기했다.

‘내 안의 유행’의 의미에 대해 묻자 “항상 비슷한 캐릭터를 만나다 보면 지친다. 망가진 모습을 하고 싶을 때가 있고, 이번처럼 멀끔한 오영석 캐릭터 만나고 싶을 때도 있다. 그게 내 안에서 하고 싶다 느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며 “다음 작품도 또 오영석 같으면 힘들 거 같다. 작품과 배역의 크기에 상관없이 다양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다”라고 털어놨다.

‘지정생존자’는 국내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미국드라마 ‘지정생존자(Designated Survivor)’가 원작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준혁은 자신만의 오영석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최대한 원작을 멀리 하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오영석의 대부분의 상황 자체가 원작과 많이 달라서 최대한 멀어지려 했다. 감독님과 이야기하며 캐릭터를 맞춰 나간 거 같다”는 그는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혹시 스포가 될까 그게 제일 우려된 부분이었다. 불필요한 정보를 얻게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특히 오영석은 반전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스포를 줄일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원작과 많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전했다.

이런 고민 덕분이었을까. 이준혁이 연기한 오영석은 차가운 목소리부터 싸늘하게 변하는 눈빛까지 선악을 구분하기 어려운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극의 긴장감을 높였다. 이준혁의 열연이 오영석의 무게를 더했다는 평이다.

이준혁 인터뷰 사진 (10)

이준혁은 배역의 비중에 관계 없이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깊이 연구하는 배우였다. “오영석이란 인물에서 굉장히 오묘한 느낌을 받았다”는 이준혁은 “캐릭터의 리얼한 서사보단 주인공 박무진을 성장시키는 동력의 기능을 하는 인물이지 않나. 난 그거만 잘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부분들을 연기할 때 가장 많이 생각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면서 “그런 면에서 ‘지정생존자’가 정치 드라마에만 국한된 건 아니라 생각한다. 한 사람 안에서 밝은 면이 박무진이면 어두운 면이 오영석이란 내적 갈등의 시각으로 접근했다. 접점이 있을 때도 있고, 밝은 부분이 많아지면 오영석은 없어지는 거다. 추상적인 느낌으로 캐릭터에 접근했다”고 연기에 대한 철학을 전하기도 했다.

지진희와의 호흡에 대해선 “지진희 선배는 대본을 읽었을 때부터 박무진 그 자체였다”며 “제가 혼자 영향을 주려고 많이 했다. 박무진이란 캐릭터는 그런데 영향을 받지 않은 절대적인 선함이 있어야 해서 제가 옆에서 (악마의) 속삭임을 많이 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준혁의 연기뿐만 아니라 완벽한 제복핏도 매회 화제를 모았다. 시청자들은 훈훈한 그의 모습에 ‘외모 성수기’라고 입을 모으기도. 이를 언급하자 “에이 그건 아니다”라고 부끄러워하던 이준혁은 “전 늘 노안이었다. 20대 때도 30, 40대 배우들과 동갑으로 나왔다. 이제야 내 나이를 찾은 거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jayee212@sportsseoul.com

사진 | 에이스팩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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