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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인풋볼’은 축구에 ‘푹’ 빠진 축구 산업 종사자들을 만나는 코너입니다. 축구에 매료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이용수기자] ‘축구 여신’이라는 수식어는 그동안 많은 아나운서들의 이름 앞을 장식했다. 그들은 그라운드 위를 누비는 선수들의 마음 속 깊은 이야기부터 생동감있는 인터뷰까지 많은 이야기를 전했다. 하지만 올해로 4년째 축구 이야기를 전하는 정순주 아나운서만큼 강한 임팩트와 연속성을 보여준 이는 드물다.
정순주 아나운서는 지난 2016년부터 현재까지 여러 방송사로 둥지를 옮기면서 꾸준히 축구 이야기를 전하며 축구 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정 아나운서의 입에서 전해지는 K리그 소식은 축구팬들의 눈과 귀를 집중하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그만큼 ‘축구 여신’으로서 축구 콘텐츠를 재밌게 전달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축구 여신’이라는 별명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정순주 아나운서를 만났다.
◇축구에 ‘축’자도 몰랐던 정순주, 스포츠 아나운서 포기 못하는 이유정 아나운서의 전공은 무용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바라던대로 무용을 했고, 무용교사로 3년간 일하기도 했다. 지난 2012년 스포츠 아나운서를 시작하기 전까지만해도 축구에 관심이라고는 없었다. 심지어 전국을 축구 열기로 가득 덮었던 2002 한일월드컵 당시에도 공부에만 열중했다. 그랬던 정 아나운서가 무용을 포기하고 스포츠 아나운서를 택한 이유는 뭘까.
“우연히 TV 속 박선영 SBS 아나운서를 봤는데 여러 소식과 스포츠 뉴스를 전하는 박 아나운서의 모습이 정말 단정하고 예뻐보였다. 그래서 교육대학교 석사를 일찍 끝내 남는 시간동안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다녔고, 3개월 만에 XTM에 입사하게 됐다. 얼떨결에 처음 야구를 맡았다. 준비가 덜 된 상태로 들어왔기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매년 아나운서를 그만 둬야지 생각했을 정도였다.”
정규직도 아닌 계약직이었던터라 일상은 늘 살얼음판같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실수 하나에 기회가 사라지는 동료들을 지켜보면서 성장한 정 아나운서는 매년 비 시즌이면 고민의 시간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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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가 내 삶에 맞을까 정말 많이 고민했다. 특히 아나운서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비교 대상이 되고 평가되는 직업이다 보니 자괴감이 너무 많이 들었다. 아나운서가 되기 전까지 순탄한 삶을 살았기에 더욱 그랬다. 지금 돌아보면 어쩌다 보니 내가 무용을 하고 있었고 선생님을 잘 만나 교육자의 길을 접어든 것이었다. 아나운서라는 건 내가 처음 선택하고 엄마를 설득했던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첫 결정이었던 탓에 정 아나운서는 포기할 수 없었다. 또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도 지금까지 직업을 유지할 수 있던 원동력이었다.
“부모님은 내게 지원을 해주시고 지켜봐주시는 편이다. 축구아나운서를 시작하기 전 소속도 없을 때 힘들어서 그만 둬야하나 고민이 많았다. 비시즌에는 매일 눈물을 흘렸다. 그럴 때 어머니가 항상 지지해줬다. 힘들 땐 긍정적인 말로 격려해주셨고 바쁜 요즘은 ‘감사한 줄 알라’며 독려해주신다. XTM 때는 노출 많은 의상을 입을 수밖에 없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때도 어머니께서 ‘무용할 때 무대 위에 오른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조언해주셨다. 그렇게 어머니는 내 버팀목이 돼 주셨다.”
◇K리그에 빠진 정순주의 고민그렇게 버틴 후 2016년 초여름 MBC 스포츠 플러스로 옮긴 정순주 아나운서에게 ‘축구’라는 기회가 운명같이 다가왔다. 다양한 기회를 받은 정 아나운서는 이전 아나운서들과 다른 ‘살신성인’하는 모습으로 축구팬들에게 다가갔다. 그 덕분에 K리그 현장을 돌아다니며 4년째 ‘축구 여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었다. 정 아나운서는 “(회사에서) ‘네 마음대로 해 봐’라며 웬만하면 지지 해줬다. 그 덕분에 연기, 콩트 등을 하면서 일이 재밌어졌다. 축구 팬들 역시 지지를 보내줘서 너무 감사했다. 그 덕분에 많은 것을 보여드릴 수 있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많은 사랑을 받는 만큼 정 아나운서의 고민도 깊다. “받은 사랑을 돌려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나만의 콘텐츠를 찾으려 한다. 잘하는 것만이 이 바닥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실력을 키운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기에 어떻게 해야할지 항상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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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더 다양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할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인터뷰를 자연스럽게 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FC서울의 박동진이 수비수에서 공격수로 전환한 뒤 첫 골을 넣었다. 벤치에서 웃는 장면이 잡혔길래 나는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 인터뷰 받는 사람이 잘 받아주면 좋은 인터뷰가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가벼운 인터뷰가 된다. 그런 간극을 찾는 게 가장 어렵다. 해결법을 찾는 게 내 숙제다.”
인터뷰에 앞서 가장 최우선적으로 신경쓰는 건 현장에서 선수나 지도자에게 이야기를 담아 묻는 것이었다. 정 아나운서는 지난해 K리그 최종 라운드에서 극적인 역전골로 승강 플레이오프를 피한 인천의 이정빈과 수원 삼성과 이별한 서정원 전 감독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스토리가 있는 사람들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스토리를 전하는 일을 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경기에 대한 희열, 극적인 장면에는 드라마가 있다. 기승전결이 있다. 2018 러시아월드컵도 우리나라가 본선 조별리그 3차전에서 독일을 이기지 못했으면 국민들에게 그런 감동을 전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런 스토리가 녹아있는 K리그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라고 소망을 밝혔다.
마지막 고민은 일의 연속성이다. 정 아나운서는 프리랜서로 일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기약이 없다. 오죽하면 “하루, 하루 현재만 보고 일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K리그를 사랑하는 만큼 오래도록 일하고 싶은 바람을 남겼다. 그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끝까지 하고 싶다”며 K리그를 향한 애정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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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주가 말하는 스포츠 아나운서에 대한 오해
스포츠 아나운서란 매우 험난한 길이다. 끊임없이 외모가 비교되고 큰 사랑을 받다가도 한 순간에 인기가 없어지기도 한다. 또 스포츠가 아닌 다른 영역으로 떠난 이들에게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어 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스포츠가 주는 감동의 매력 탓에 많은 이들은 스포츠 아나운서를 선망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야기는 이렇다. 하지만 한 가지 오해를 바로 잡아야 한다. ‘배신자’라는 낙인이다. 스포츠를 통해 인기를 얻은 많은 이들이 스포츠를 떠났거나 들락날락 한다. 이에 대해 정 아나운서는 “다들 모르는 게 있다. 스포츠 아나운서를 했던 사람들은 지금도 스포츠라는 끈을 잡고 싶어 한다”며 “하고 싶은 데 기회가 안 주어질 뿐이다. 이것만 잡고 있으면 미래가 없으니까 다른 방송 영역을 두드리는 것일 뿐”이라며 “분명히 스포츠 아나운서를 거친 사람들은 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다. 그들은 매번 ‘스포츠는 적은 보수를 받더라도 항상 하고 싶다’고 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말한다”고 강조했다.
스포츠 아나운서로서 축구에 푹 빠진 정 아나운서는 “나는 전술을 비롯해 선수의 이야기 등을 보고 인터뷰 때 다섯 가지 질문으로 녹여내야 하는 사람”이라며 “축구는 아직도 내게 스포츠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종목이다. 전술도 많고 선수에게 다가서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K리그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까면 깔수록 양파같은 매력이 있는 축구 콘텐츠를 보여드릴 수 있어 행복하다”며 웃었다.
pur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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