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로
스즈키 이치로가 21일 일본 도쿄돔 호텔에서 연 현역 은퇴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도쿄 | 김용일기자

[도쿄=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오늘 경기 후 이치로가 은퇴 발표를 할 것 같다.”

2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메이저리그(ML) 개막 시리즈 2차전 시애틀-오클랜드전 플레이볼 1시간여를 앞두고 만난 ML 측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같이 귀띔했다. 그리고 경기 7회에 들어섰을 때 현지 홍보팀 관계자가 이치로의 은퇴 기자회견을 안내 자료를 취재진에 전달했다. ‘도쿄돔 프레스 컨퍼런스 장소가 협소할 것으로 예상돼 인근 도쿄돔 호텔 지하 1층 오로라홀에서 이치로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4-4 동점이던 8회 말 2사 2루에서 이치로가 현역 마지막 타석에 들어섰다. 이치로는 6구째에 유격수 땅볼을 치고 1루까지 전력 질주했다. 간발의 차이로 아웃됐다. 도쿄돔을 가득메운 4만여 관중은 물론, 미디어석 일본 기자도 이례적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이치로가 9회 수비에서 교체 사인을 받고 더그아웃을 향했다. 스캇 서비스 감독이 이치로가 일본 팬들에게 마지막 기립박수를 받으면서 현역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게 배려했다. 이때 만큼은 개막전이 아닌 ML 살아있는 전설 이치로의 마지막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시애틀은 물론 오클랜드 선수들도 일제히 더그아웃에서 나와 도열했다. 아낌없이 손뼉을 쳤다. 미디어석 주변의 관중은 눈물을 보였다. 일부 일본 베테랑 기자들은 “아리가또~ 이치로!”를 외쳐댔다. 메이저리그 19년, 2653경기에서 타율 0.311, 3089안타, 117홈런, 780타점, 1420득점, 509도루를 기록한 전설의 플레이어가 모자를 벗고 팬들에게 인사, 동료 한 명, 한명과 뜨겁게 포옹했다. 최근 몇년사이 기량이 쇠퇴했으나 ML 사무국과 시애틀 배려 속에서 최근 다시 1군 계약을 맺고 사실상 도쿄돔 개막 은퇴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이치로다. 비록 이날 역시 4타수 무안타에 그쳤으나 기록은 더는 의미가 없었다.

이날 경기는 시애틀이 연장 12회 접전 끝에 5-4로 승리하면서 개막 2연승을 기록했다. 취재진이 대부분 이치로가 교체로 물러난 뒤 일찌감치 기자회견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연장 승부로 경기가 밤 11가 다 돼서야 끝났고, 이치로가 등장한 건 11시50분께다. 거의 2시간 가까이 기자회견장 입구에서 200여 명 취재진이 대기했으나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마침내 이치로가 장내에 들어서자 엄청난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전날 1차전 선발로 뛴 뒤 4회 교체로 물러날 때 눈시울을 붉힌 그는 “이렇게나 많이 계시다니, 와우 놀랍다”며 “늦은 시간에 모여줘서 감사하다”고 웃었다.

애초 기자회견 공지 사항을 보면 15분여 질의응답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자정을 넘겨서 진행된 기자회견은 새벽 1시20분 돼서야 끝났다. 80분까지 진행됐다. 그는 “오늘 경기를 마지막으로 일본에서 9년, 미국에서 19년 현역 생활을 마치게 됐다”며 “시애틀 유니폼을 입고 이날을 맞이한 것을 행복하게 생각한다. 28년은 정말 긴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응원해준 구단 관계자와 동료, 가족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의 질문을 가능한 모두 대답하고 싶다”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는 ‘현역 은퇴 선언 시점’을 묻는 말에 “이번 스프링캠프 막바지다. 사실 도쿄돔에서 플레이하는 것까지 (1군)계약이 돼 있었다. 스스로 캠프에서 원하는 수준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에 이를 뒤집을 수 없다고 느꼈다”고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또 “오늘도 경기에 나갔다. 감격스러운 순간을 느꼈기에 (은퇴 결정에) 후회는 남지 않을 것 같다”면서 “평소 일본 팬은 표현하는 것에 서툴다고 느꼈는데 그 고정관념이 깨졌다”면서 자신을 향한 진심 어린 박수에 감격해했다.

‘자신을 지금까지 지탱해온 게 무엇이냐’는 말에도 한참 생각하더니 “그저 야구를 사랑했다. 변한 적이 없다”면서 자신의 야구 선수로의 삶을 돌아봤다. 여러 얘기를 늘어놓다가 “지금 나 이상하게 말하고 있는것이냐, 나 괜찮느냐”며 얼떨떨한 자신의 상태를 취재진에 되물어 웃음을 주기도 했다. ‘일본에 복귀할 생각은 없었느냐’는 말에 “그럴 생각이 없다”면서 “최소한 50세까지 할 생각도 했지만 지금 여기까지 오는 과정 역시 말로 표현하지 못할 여러 어려움도 있었다. 비록 (50세 선수를)실현하진 못했지만 후회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인생은 아직 잘 모르겠다. 아마 내일도 훈련을 할 것 같다.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않느냐”면서 작더라도 자신이 필요로한 곳에서 소중하게 쓰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새벽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서는 이치로를 향해 일본 취재진은 다시 한 번 “아리가또~ 이치로!”을 외치면서 손뼉을 쳤다. 그렇게 전설은 심야의 기자회견을 끝으로 선수 인생의 마침표를 찍었다.

◇[SS영상]자정넘긴 이치로 심야의 기자회견…日취재진 “아리가또~ 이치로”(https://www.youtube.com/watch?v=6MWQrIUyPSs&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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