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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의 배터리 코치가 누구입니까?”
각 팀 사령탑을 포함해 해설위원 등 몇몇 야구인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공교롭게도 곧바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다들 “어려운 질문”이라면서도 생각에 잠기는 표정을 지었다. SBS스포츠 이순철 해설위원은 “배터리, 즉 포수파트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워낙 세분화 돼 있다보니 특정 코치를 꼽기 어렵다”고 말했다. NC 김경문 감독, KIA 선동열 감독, 넥센 염경엽 감독, LG 조계현 2군감독 등도 “난해한 질문이다. 좋은 배터리 코치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반대로 “두산 수석코치로 있던 이토 스쓰무 지바롯데 감독은 최고의 배터리 코치였다”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각 팀 사령탑의 골머리를 아프게 하는 ‘타고투저 현상’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포수 문제도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제구가 좋지 않은 투수들과 좁은 스트라이크존이 타고투저 현상을 부채질한다면, 같은 조건 하에서 이를 풀어가는 역할 중 상당부분을 포수가 해야하기 때문이다.
고양원더스 김성근 감독은 “국내 포수들의 성장이 무척 더디다. 공부를 안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그대로 받는 역할에 충실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한 예를 들어보자. 김 감독은 “맞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에 낮은 코스만 요구한다. 스트라이크존은 좁은데, 낮은 코스로만 공을 요구하면 타자입장에서는 노림수를 더 단순하게 가져갈 수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ID 야구’의 창시자인 일본프로야구 노무라 가쓰야 감독은 그의 저서 ‘노무라 노트’에서 “볼배합에 원칙은 없지만, 타자의 시선과 타이밍을 흐트러뜨리는 것을 첫 번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같은 코스로 직구 3개를 연속으로 던지는 것만큼 멍청한 볼배합은 없다. 다만 코스를 달리해 직구를 ‘분배’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밝혔다. 몸쪽 낮은 직구 두 개를 연구퍼 던졌다면, 바깥쪽이나 몸쪽 높은 코스로 하나 던져놓고 다시 몸쪽 낮은 직구를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 감독이 “요즘 포수들은 받기만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감독은 “낮은 코스에서 떨어지는 구종이 없는 투수가 서 있는데, 계속 낮은코스만 고집하면 얻어 맞을 수밖에 없다. 바깥쪽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삼았다면, 높은 코스를 활용해 타자의 시선을 분산시켜야 하는 볼배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기본적인 사항부터 준비가 안되기 때문에 포수들의 성장이 더디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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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출신인 NC 김경문 감독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그는 “투수들이 포수에게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상대 타자의 성향, 타석에서 위치, 배트 각도, 구종과 코스에 따른 반응 등을 면밀히 살펴 볼배합을 하는 게 포수의 기본 임무. 하지만 마운드에 선 투수가 자기 식대로 경기를 풀어가려고 계속 고개를 흔든다면, 정상적으로 경기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투수보다는 포수가 훨씬 더 많은 것을 준비한다. 경기 전체를 관통하는 볼배합을 준비해 상황에 따라 조금씩 바꿔가며 경기를 풀어가는데, 투수가 이를 믿지 않으면 아무 생각없이 사인을 내게 된다”고 설명했다. 가령 톱타자를 상대로 바깥쪽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정해 놓았다면, 이를 역산해 초구를 선택한다. 확신에 차 사인을 냈는데 투수가 고개를 흔들어버리면, 포수도 ‘내 책임 아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 구종별로 하나씩 사인을 내다가 투수가 고개를 끄덕이면 받기만 한다는 것이다. 경기 복기가 될 수도 없고, 타자와 어떻게 승부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어떻게 매타자를 막아낼 수 있겠는가. 경기를 하다보면 맞을 수도 있다. 투수들은 맞기 싫겠지만, 무실점 경기를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젊은 포수와 호흡을 맞추는 투수는, 포수가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줄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SK 박경완 2군 감독도 “좋은 포수가 되려면 경험이 필요하다. 경험을 쌓으려면 세밀하고 절실하게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가령 슬라이더가 주무기인 투수가 경기 당일 컨디션이 나빠 평소보다 각이 큰 슬라이더를 던진다고 가정하자. 바깥쪽 슬라이더를 던져야 결정구로 쓸 수 있는데, 평소와 같은 위치에 앉아 있으면 각이 커 계속 볼이 된다. 이럴 때 홈플레이트 바깥으로 완전히 빠져 앉아 투수가 스스로 릴리스포인트를 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거나, 바깥쪽 슬라이더를 요구한 뒤 한가운데 미트를 대는 등의 응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평소 투수의 투구궤적과 릴리스포인트, 투구폼을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당일 심판의 성향과 타자의 컨디션 등을 면밀히 파악해 실시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엄청난 준비가 필요한데, 박 감독은 “요즘 젊은 선수들은 시키는 것만 한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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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년 대 지도자들은 포수란 그저 투수들의 공을 잘 받는 선수 정도로 여겼다. 타격에 소질이 있으면 최고로 꼽힐 정도였다. 배터리코치 없이 시즌을 꾸리는 팀이 수두룩했을 정도다. 포수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육성 노하우를 쌓을 시간이 다른 파트에 비해 짧았던 이유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요즘 전력분석 시스템은 상상을 초월한다. 각 팀마다 쓸만한 포수를 찾는데, 그 안에는 단순히 포구와 송구, 블로킹만 잘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게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을 갖춘 포수를 원하는 것이다. 투수들의 마음도 편안하게 해줘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확신을 갖고 투수들을 이끌줄도 알아야 한다. 김동수 박경완 진갑용 같은 포수가 40대에도 현역생활을 유지한 것은 후배들이 이들의 기량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타고투저 타개책으로 외부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매일 진화하는 타격능력을 인위적으로 막아버리면 프로야구 수준 전체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투수들의 제구향상, 구종개발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체계적인 포수 육성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각 팀 배터리코치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강훈기자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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