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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리패키지 미니 앨범 ‘사랑을 끊었어’로 활동 중인 가수 태원은 ‘무명’이란 단어에 익숙하다. 얼마 전 생방송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하려고 마이크를 착용한 채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한 스태프로부터 “씨엔블루 매니저냐?”는 말을 들었지만 그냥 웃고 넘겼다.
2003년 데뷔한 그는 어엿한 11년차 가수다. 지난해 KBS2 ‘불후의 명곡’에서 3연승을 기록하고, 그해 12월 ‘불후의 명곡-한국인이 사랑한 번안 가요’ 특집 2탄에서 서울패밀리의 ‘이제는’으로 준우승을 차지한 후 알아보는 사람이 부쩍 늘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그는 “가수를 그만둘까도 아주 많이 고민했었죠.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더라고요”라며 오랫동안 이 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태원에게 ‘가수’와 ‘노래’는 절박함을 넘어 대체 불가능한 삶과 같다.
◇“가게 차리면 망하고, 노래 선생님도 적성에 안 맞고…”
그는 “10년 넘게 하는 일마다 꼬였어요”라며 웃었다. ‘무명’이란 꼬리표가 지긋지긋해서, 경제적 어려움이 참기 힘들어서 가수를 그만두려고 한 적이 수도 없다.
“가수로는 한 달에 100만원 벌기도 힘드니까 다른 부업을 많이 했죠. 그게 잘 되면 가수를 그만둘까 했죠. 식당을 한 번, 노래방을 세 번 차렸는데 다 망했어요. 장사는 적성에 안 맞는 게 확실해요.”
세 번째 차렸던 건물 지하 노래방은 오픈한 지 얼마 안 돼 비가 오고 물이 차서 망하기도 했다. 노래방을 운영하면서 아침부터 밤까지, 밤부터 새벽까지 손님이 없어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며 가수에 대한 갈망만 확인했다. 음악 학원 보컬 선생님으로 전업도 고려했지만 성격상 그 일도 맞지 않았다.
“입시생들을 1년 가르쳤어요. 그런데 소질이 안 보이는 학생도, 눈 딱 감고 지도해야 하는데 저는 ‘너는 소질이 없다. 가수가 될 수 없으니 포기하고 다른 길을 택해라’라고 솔직히 말해 학생을 쫓아내기 일쑤였죠. 1년간 가장 보람됐던 순간은 ‘너는 가수 자질이 없으니 차라리 자격증을 따라’고 조언했던 한 학생이 중장비 자격증을 땄다며 고맙다는 연락이 온 거였어요.”
가수보다 예능에서 이름과 얼굴을 알릴 생각을 안 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도 적성에 안 맞았다. 2003년 가수 데뷔 전 출연했던 인기 프로그램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에서는 ‘학력 위조 논란’에 시달렸다. 고졸이었던 그는 아무 학교 이름이나 대라는 주위의 조언에 생각나는 학교 이름을 댔다가 그 학교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그 학교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했던 태원은 이듬해 ‘오기’로 그 학교에 입학해 졸업장을 받았다. 2006년 한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했지만, 출연 분량이 거의 통편집됐고, 그나마 한두 장면에서 ‘싸가지 없어’ 보이는 모습으로 오해를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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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가수, 노래를 포기할 수 없어요.”
태원은 2006년 앨범을 내고 배 축제, 고추 축제 등 전국 각지를 돌았고, 한때 트로트 가수로 전업을 꿈꾸며 전국의 어머니 노래 교실을 돌았다. 하지만, 목소리가 발라드에 적합한 것 같다는 주위의 조언을 받아들여 다시 발라드 가수로 도전하고 있다. “내가 노래를 부를 때 누가 신나 하는 것보다 슬퍼하는 게 기분이 좋아요. 그게 슬픈 노래의 매력인 것 같아요. 내 목소리로 누군가를 울릴 수 있는 게 좋아요.”
그의 주위에는 그보다 절박한 무명 가수가 많다. 노력한다고 반드시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그는 이제 가수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태원은 “노래를 잘하니까 꾸준히 하면 언젠가 된다는 말을 10년 넘게 들었어요. 이제는 독기가 생겨요.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는 생각, 그게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라며 “태어나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린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하다못해 학교 다닐 때 상장 하나 탄 적이 없거든요. 가수로 성공해서 용돈도 드리고, 좋은 데도 모시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지석기자 monami153@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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