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터플레이2

[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나이 오십이 넘은 국내 정상급 트럼펫 연주가가 젊은이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랩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끊임없이 새로워지려는 시도, 일종의 ‘무한도전’이다.

트럼펫 연주가 이주한은 가요계의 ‘황금기’라 불리는 90년대에 약 10년에 걸쳐 최정상급 세션맨으로 활약했다. 색소폰에 이정식이 있었다면 트럼펫엔 그가 있었다. 故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한동준의 ‘사랑의 서약’, 카니발의 ‘거위의 꿈’, 이소라의 ‘난 행복해’ 등 수많은 명곡에서 로맨틱한 연주를 선보였다.

2000년대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팝재즈 밴드 ‘윈터플레이’를 결성, ‘재즈 한류’를 일으키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뚜렷한 성과물이 나왔다. 2008년 1집으로 국내 재즈차트 1위는 물론 일본 아이튠즈와 홍콩 재즈차트 1위, 홍콩 HMV 음반 매장 차트 1위를 차지하며 골든디스크를 달성했다. ‘해피버블’, ‘집시걸’ 등 국내외에서 히트곡을 남겼고, 일본, 홍콩, 마카오, 태국 등지에서 공연을 하며 K-재즈 열풍을 일으켰다.

최근 이주한은 ‘윈터플레이’를 1인 체제로 재정비하고, 음악적 변신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3년 5개월여 만에 발표한 EP ‘올 어바웃 러브(All About Love)’에는 발라드, 재즈 랩, 블루스, 보사노바, 글리치 합, 부걸루 등 현대와 과거의 다양한 장르가 섞여 있다.

-최정상급 트럼펫 가요 세션 생활을 뒤로 하고 몇년간 고민의 시기를 거쳐 2007년 팝재즈 그룹 ‘윈터 플레이’를 결성했다.

사실 90년대만 해도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자존심이 셌다. 재즈로만 승부를 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한국말도 잘 못하고, 단어 사용도 제한적인 상태에서 어떻게든 트럼펫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데, 영어는 좀 되니 외국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2007년 3개월 정도 임시로 해볼 생각으로 만든 프로젝트 밴드가 ‘윈터플레이’였다. 기존 재즈처럼 길게 하지 말고, 트럼펫으로 멜로디를 불고, 보컬을 넣자는 게 초기 구상이었다. 재즈 클럽 공연에서 눈여겨 본, 가창력과 영어 실력을 겸비한 문혜원을 보컬로 영입했다.

이후 기획사 플럭서스뮤직에 속하게 됐다. 꿈은 어떻게 해서든 외국에 나가는 거였다. 노라 존스가 각광받을 때였다. ‘메이드 인 코리아’로 노라 존스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팝재즈’라는, 정통적이지 않은 재즈 장르를 선보일 때 부정적인 시선은 없었나.

그런 편견이 있었다. ‘쟤는 트럼펫을 못불어서 저런거 하나?’ 여기는 것 같은 분위기도 있었다. 평론가, 음악하는 사람들 중에선 분명한 기준을 중요시하는 이들이 많다. 얻은 성과에 비해 인정받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어떤 차별 같은 걸 느꼈다.

안좋은 얘기를 내게 직접적으로 하는 이는 없었지만 돌려서 하는 얘기를 전해들은 적은 있다. 그러나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건 ‘집시걸’이 나왔을 때 그건 새로운 스타일이었다는 거다. 이후 윈터플레이와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을 만드는 팀이 많이 생겼다. K-재즈 라는 단어도 내가 만들었는데 요새 많이 쓰이더라.

-사고방식이 유연하고, 끊임없이 도전한다. 어린 시절 다양한 나라에서 살았던게 영향을 미쳤나.

분명 영향을 미쳤다. 92년 군입대를 위해 입국하기 전까지 줄곧 외국에서 살다보니 현지에 적응하려면 먼저 다가가야 했다. 다양한 음식과 문화, 스타일을 익히고 즐기며 자란 게 커서도 내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3년 5개월여 만에 공개한 윈터플레이의 새 앨범 ‘올 어바웃 러브’에 대해 소개해 달라.

많은 생각과 스타일을 담았다. 요즘 시대에 음악을 맞춰보고 싶었다. 재즈 팬도 소중하지만 대중과 소통에 조금 더 무게 중심을 뒀다.

예전 윈터플레이의 음악은 한때 큰 사랑을 받았지만 그 스타일도 이제 지나간 것 같다. 변화를 좋아하는데 내가 하면서 어느 순간 윈터플레이가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느꼈다. 나이가 드디어 나를 정신차리게 했다. 친한 동년배 뮤지션들을 보면 변화를 주고 싶어도 주저하며 기존 것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뮤지션은 매너리즘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음악이 대중과 소통하기엔 뒤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 있어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서 이번 앨범에선 60~80년대 다양한 음악을 접목했고, 내가 직접 재즈랩까지 했다. 뷔페처럼 한 앨범에 다양한 요소를 아담하게 담아보았다.

-팀을 1인 체제로 정비한 이유는.

혼자 남았다기 보다 원래 혼자 시작했던 팀이다. 다른 멤버들은 각자 더 해보고 싶은 음악이 있었다. 1인 체제는 다양한 음악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연히 혼자 하게 됐지만 디스코, 재즈힙합, 보사노바 등 다양한 걸 할 수 있어 오히려 지금 시대에 잘 맞는 것 같다.

ALL ABOUT LOVE - COVER

-새 앨범에선 다양한 음악 장르와 새로운 시도가 인상적이다. 특히 ’에스 투 비다’에선 직접 재즈랩까지 선보였다.

3~4년전 작곡한 노래인데 원래 다이나믹 듀오에게 랩을 부탁했었다. 그걸 들어보니 너무 잘하더라. 좋긴 한데 그 노래 안에서 내가 뭘 할지 답을 내릴 수 없어서 묵혀뒀었다.

나이가 50대도 됐으니 ‘내가 끌고 가자’고 생각해서 자신감 있게 재즈랩에 도전해 봤다. 재즈랩이란 게 새로운 건 아니다. 시낭송하듯 비트 위에 말을 얹는 방식이 예전에도 있었고, 이주한 만의 양념을 거기에 집어 넣었다. 기회가 되면 계속 해보고 싶다.

-50대에 ‘래퍼’에 도전한다는 게 의미있어 보인다.

꼭 내가 해야 되나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나와 동년배인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을 보면 불안해하는 분이 많더라. 그 분들에게 ‘괜찮다. 내가 먼저 지팡이 집고 앞장서 나가볼테니 따라와달라. 어리게 사는 것에 두려워 하지 말자’는 힐링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랩을 했다고 ‘래퍼’라는 호칭을 붙이고 싶진 않다. 그런데 재즈 랩을 잘하고 싶긴 하다. 이 나이에 안 해온 걸 하자니 힘들지만 따지고 보면 카니예 웨스트, 제이 지와 내 나이 차이가 크지 않다. 내년 쯤 되면 다른 곡에서 더 리듬감 있는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있다.

-이주한의 음악 인생은 90년대 가요계 최정상급 트럼펫 세션이었던 때, 2000년대 ‘윈터플레이’로 K-재즈를 널리 알렸던 때, 그리고 윈터플레이 1인체제로 정비된 지금 이후로 음악 인생을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90년대는 내가 우리나라 음악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가요 세션을 많이 하며 뮤지션들과 친해지고, 내가 알고 있는 재즈를 후배들에게 알려주기도 했으며 나 스스로 한국을 알게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윈터 플레이’로는 작곡자, 프로듀서로서 외국에서 인정받고, 활동하고 싶었다. 이제부터는 훨씬 다양한 시도를 하며 요즘 시대와 함께 호흡하고 경쟁하는 음악을 선보이고 싶다. 재즈힙합이 됐든, 글리치 합이 됐든, 가요가 됐든 대중과의 끈을 놓지 않겠다.

monami153@sportsseoul.com

사진 | 라우드피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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